(한번 철학자가 되어 보자)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산책을 못해본 사람같다. 그런 내가 감히 고매한 활동 중 하나인 산책에 대해 나름 견해를 펴는것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진다. 기껏해야 근래에 여기저기 대자연을 보러 발걸음을 하는 단계이다. 이상하게 자연경관을 보면 무엇보다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
아마 절에 계시는 스님들이 자연과 함께하기 때문에 마음의 침잠을 얻는 것이 아닐까 뜬금없는 생각도 해 본다. 오랜동안 자연과 호흡했던 일부 고승들의 선문답은 그래서 나온 결과가 아닐까. 나는 여행 목적지를 선택하는 지향도 인공의 지역을 찾기보다 자연환경을 본다는 의도가 주된 방향 설정이 되었다. 대자연을 보며 인공이 최소화된 자연환경이 우리에게 어떤 마음의 위로를 주는지 알게 되었다.
자연과 함께 있을 때는 친구와 카페에서 나누던 별 의미 없던 말이 중지된다. 자연과 교감하는 데 꼭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산책자는 가능하다면 말을 안 하면 더욱 좋다. 대신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한다. 또한 속세적인 생각들은 다른 시간대에 끄집어내야 한다. 직설적인 표현을 하면, 경외심을 주는 위대한 자연 속에서 속세의 사업 구상을 하거나 누구와 하던 말다툼을 생각해 낸다면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산책파(소요학파)로 알려졌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산책하며 배우는 학풍을 받아 이후 유럽의 지성과 철학자들이 이 활동에 가담하게 된다. 유명한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이 생겨났다. 그만큼 산책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의미이다.
산책은 고독과 함께하는 행위라 본다. 진정한 산책을 한다면 소란스러운 길이나 많은 군중이 모이는 곳은 이상적인 산책로로서 합당지 않다. 인간이 하는 고상한 행위 중 하나로서 산책이 등장하게 되었다. 운동하러 짐(GYM)에 가는 마음과 상당히 달라야 하는 이유이다.
인간이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자명한 진리로 공유된 이론이다. 그 이유 중 하나를 대라면 쉽게 산책을 말하는 철학자들이 있다. 동물들이 산책을 즐긴다는 증거를 고명한 동물학자들도 아직 대지 못하고 있다. 동물들이 자연 속에서 배회하는 것은 먹잇감을 사냥하거나 그의 주위에 침입자가 있는지를 경계하는 행위로 보인다. 동물 대비 사람만이 가지는 사회적 우월성으로 본다.
요즘 같이 차가운 날씨에는 산책이 안 맞다고 해야 하나.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겨울의 산책은 최고의 산책이 될 수 있다. 왜일까. 우선 마주치는 사람도 적다. 또한 다른 계절에는 만발한 꽃을 보고 또 가장 세력이 커져 잎을 최대로 불린 수목을 보면, 자연을 경관 하는 마음이 다른 쪽으로 흩어질 수도 있다. 겨울은 다른 계절에 우리를 미혹하는 요소들이 대부분 사라져 오히려 더 편안한 산책이 된다. 온전히 산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이점이 생긴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특히 내가 아침저녁으로 통과하는 보라매공원에서 자주 목도하는 광경이다. 이런 산책은 다른 활동과 연합하는 시튜에이션이 된다. 강아지와 함께 하는 것은 산책의 중심이 강아지에게로 이전된다. 절반의 산책 행위처럼 보인다. 산책이 우리 마음의 위치 에너지를 최대한 낮은 상태로 유지한다는 기본 취지에도 안 맞는 행위이다. 사람이 산책을 하는 것보다 개들이 산책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조금 더 민망한 사실은 강아지들이 군데군데 배출하는 분비물도 기분 좋은 산책을 저해하는 행위가 된다.
전자기기를 가지고 산책하는 사람도 있다. 스마트폰이 꼭 몸에 있어야 안심이 되는 사람이 많다. 만보기도 차고 간다. 산책은 자기 내면의 성찰이나 사유를 하는 시간이 되면 어떨까 한다. 전자기기는 산책과는 안 어울리는 물건이라 생각하자. 과감히 산책 나올때 집에 던져두고 나와보자. 산책은 통해 가끔은 중세 철학자가 되는 시간이 되면 재미있지 않을까. 산책이 본연의 취지를 벗어나면 산책이라는 진정한 의미가 줄어든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경우도 매 마찬가지이다. 이것도 없으면 더욱 의미 있는 산책이 된다. 이것들 내려놓으면 진짜 산책처럼 된다. 우리가 때로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는 있는데, 무엇이 주(主)이고 무엇이 從(종)인지 확신이 안 설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즐기는 산책을 위한 조건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고 본다. 아무나 다 할 수는 없다. 산책을 쉽게 생각한다면 아무나,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오직 소수만 가능하다 본다. 먼저 신체적으로 건강한 조건을 보유해야 한다. 튼튼한 다리가 가장 주요한 피지컬 조건이 된다. 신체적으로, 기능상 조금 미진하여 예를 들어 지팡이를 이용해도 그 정도는 수용 가능한 부분이라 본다.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야 한다. 정신이 혼미한 사람이 산책을 한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산책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단지 걸어만 가는 사람이다. 산책이 아니다. 그들을 폄하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니 이해하기 바란다. 산책은 정신과 육체가 마치 항공기의 양 날개처럼 함께 구동되는 것이다. 두 개의 날개 중 하나가 기능이 안 되면 비상 운항을 하여 가장 가까운 공항으로 긴급 착륙을 해야 한다. 영과 육이 올바로 갖춰진 조건이 되면 산책자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산책은 여럿이 단체로 모여서 해도 될까. 추천하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산책은 소수가 좋다. 혼자 거나 또는 친구 한 명과 같이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 숫자이다. 온전히 산책에 집중하고 싶다면 철학자나 고승처럼 혼자 하는 것이 좋다. 친구와 같이 한다면 이성보다는 가급적 동성으로 하는 것을 추천한다.
산책을 하면서 견지해야 할 마음 가짐으로는 그 시간 동안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잠시 그 시간 동안 속(俗)에서 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잠시 현실과 유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철학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나마 속을 벗어나 영(靈)과 근접하는 사유에 빠져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