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운전역사 vs. 근래 접촉사고

(세월 앞에 장사 없는지)

by evan shim

이번에는 나의 자동차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나는 차를 운전한 지가 상당히 오래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 해외에서 운전을 했으니 아마도 약 45년 정도일 듯하다. 사고가 나면 우선 당해 운전자를 탓하는 현실에 다음 이야기를 하면 죄스러울 따름이지만 먼저 고해를 해야 하겠다.


과거 당연히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었다. 승무원 선배들이 해외에서 그들 명의로 차를 렌트하여 몰고 다니다가 나에게 무면허지만 운전을 가르쳐 주었다. 운전을 하기에는 하와이가 제격이었다. 진주만에 있는 히캄 해군기지에 가면 너른 운동장 같은 공터가 제법 있었다. 여기서 운전을 가르치고 배우는 연습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국내 차량과는 달리 미국의 모든 자동차는 요즘 차와 같은 기어 시프트가 불필요한 오토차량이라 운전을 배우는데 최상의 조건이었다.


승무원 선배들은 기본기만 가르쳐 주고 진주만을 산책하고 있을 때 나는 혼자서 열심히 운전을 익히고 있었다. 그리 운전을 한 시간 정도 배우고 와이키키에 있는 체재 호텔로 도로에 차를 몰고 귀환을 하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쉽게 체험으로 운전을 배웠고 차를 몰고 다녔다. 무면허로. 차를 좀 이상하게 몰아도 어느 누구도 시비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문제는 호텔에 주차를 할 때 아주 애를 먹었다.


미국영화 자이언트에서 흔히 보는 풀 사이즈 차량이라 실내에서 차를 빼거나 주차할 때는 감이 와 닫지 않는 점이다. 당시 미국이 그러했다. 오일 쇼크가 불어닥치기 이전이니 차량들은 대부분이 풀 사이즈 세단이 주류였다. 그 큰 풀사이즈 차량에 비해 차폭의 회전반경이 몸에 잘 익혀지지 않을 때라서 자칫하면 회전하는 기둥에 차를 부딪치는 일이 자주 발생하였다. 물론 차량 보험이 되어 있어서 보험처리를 하면 되었지만 반납할 때 아주 죄스런 마음이 들었다.


이리 주먹구구식으로 배운 운전 실력으로 스위스, 이태리와 같은 여러 나라에서도 열심히 차를 몰고 다녔다. 그것도 무면허로 말이다. 그러다 앵커리지에서 처음 운전면허 시험을 보았다. 물론 차는 렌트한 차량으로 가능했다. 운전면허 발행기관 소속의 감독 경찰이 조수석에 앉아서 내가 하는 운전에 대해 차트에 평가를 하고 바로 합격, 불합격을 공지해 주었다.


나는 그때부터 무면허의 불법을 멀리하고 정식으로 운전을 하게 되었다. 마치 적토마에 날개를 단 형국이었다. 이제 정식으로 운전면허가 있으니 어느 나라던지 차를 모는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호주나 영국, 태국 등은 운전석이 반대쪽이라 시내에서 방향 전환할 때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별문제 없이 차를 잘 몰고 다녔다.


그 시대는 한국에서는 자동차 소유가 아주 이른 시기였다. 그런데 국제선 승무원 생활을 하다 보면 해외에서는 자동차가 생활의 필수품으로 인식되던 당시였다. 국내에서 처음 생산된 소형 포니 승용차와 미국에서 몰아보는 대형 풀사이즈 차량과는 애초에 크기 비교가 되지 않는 처지였다. 당시 나는 결혼 전 혼자 살면서 제일 먼저 차를 구입했다. 값싼 중고자를 샀다.


왜 차를 먼저 샀냐 하면 우습지만 다름 아니라 식사 문제를 해결하려고 차를 샀다. 그때 살고 있던 공항 근처 집이 식당과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다. 주위가 거의 다 논이었다. 그래서 저녁을 먹으려면 식당까지 먼 거리를 걸어서 가야 했다. 겨울에는 밥 먹으러 가기가 힘든 작업이 되었다. 그러나 차가 있으니 여러 가지 음식을 찾아서 이동하기가 쉬었다. 운 좋게도 근래까지 수십 년 동안 차사고가 한 번도 나지 않았다. 최저 차량 보험료를 지불하는 것이 당연시되어 버렸다.




그런데 잘 나가던 호시절이 이제 상황이 바뀐 듯하다. 나이가 들어 그런지 최근 몇 개월 동안 작은 사고가 몇 번 발생했다. 큰 사고는 아니고 슬쩍 부딪히는 경미한 사고가 주루였다. 주유소에서 다른 차량과 약간 긁히는 사고도 있었고 정차 중에 브레이크가 풀려 앞차의 후미를 콩하고 박은 사례 등이 대부분이었다.


한 번은 도로 어깨 편에서 막 출발하려 했는데 후방에서 오던 차량이 내 차를 앞지르고 정차하려다 내 차의 운전수 쪽 펜더를 들이받고 멈춘 일이 있었다. 분명 내 잘못 보다 무리하게 앞쪽에 차를 멈춘 다른 차의 잘못이 더 크게 보였는데 내가 70% 의 잘못으로 판결이 났다. 어쩠던 이것도 나이 운전 기록에 나쁜 평가로 남아 보험료가 올라가는 현상이 계속되었다.


급기야 이번 성탄절 밤에 성당에서 차를 후진하다가 벽에 접촉하여 후부에 작은 상처가 났다. 그냥 두기가 뭐해서 차량용 페인트를 차용품점에서 사서 칠했다. 최근에 비슷한 사례가 추가로 몇 건 있었다. 나이가 드니 보는 시야의 각도가 좁아지고 반사신경이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했다.


근래에는 TV 뉴스에 고령 운전자가 사고를 냈다는 기사가 자주 들렸다. 지자체별로 고령 운전자가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면 수십만 원의 인센티브를 준다는 소식도 나왔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이 혼자서 운전하다가 사고를 여러 차례 낸 뉴스도 나왔다.


사고로 차는 전복이 되었지만 다행히 그는 별로 다친 데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도대체 그의 나이가 얼마인지를 확인했더니 깜짝 놀랐다. 그의 나이가 90대 중반이었다. 그 나이가 되어서도 당당히 운전을 하는 그가 우리 기준으로서는 선뜻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전히 자동차는 나에게 주요한 이동수단이다. 아직 내 사업을 계속 수행하니 차는 어쩔 수 없이 가장 필수적 장비가 되었다. 요즈음은 모든 기업에서도 운전자를 따로 고용하는 일이 아주 줄어들었다. 과거 직장 생활할 때는 이사만 되어도 전용 운전자가 운전을 해 주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젠 옛 일이 되어 버렸다. 생업을 위해 운전을 하지만 향후에 매사에 더 조심하여 운전을 해야겠다고 운전을 돌입할 때마다 마음먹었다. 심지어 운전 시마다 나 혼자 외치는 만트라도 있다. “앞만 보라”이다.


솔직히 운전자가 운전 이외에 다른 일을 하다가 사고로 연결된 경우가 제법 많다고 한다. 근래 들어 통계에 의하면 그 가장 많은 사고 빈도는 스마트폰을 운전 중 사용하는 것 때문이라 한다. 오직 했으면 운전 중 문자를 보내는 것을 ‘라스트 메시지’라 했을까. 운전대를 놓을 때가 몇 년이 더 될지는 모르나 조심, 또 조심이 답이다.


PS. 이제 보니 하나를 빼 먹었다. 한국의 주민등록증을 운전면허라고 속인 일도 있었음을 부언한다. 나쁜짓 많이 했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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