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인류가 멸종하지 않은 이유)
움직이는 사유맨이 되어가는 것일까. 며칠 전 논산을 갔다. 근래에는 차 대신에 가끔 기차를 타고 간다. 원래 빠른 고속철로 갔었는데 시간은 더 걸리지만 저렴한 ITX를 탔다. 절반 이상의 빈좌석이 많은 것은 사유에 도움이 된다. 모처럼 잘한 결정으로 성공적이다. 살면서 여유를 갖는 슬로 라이프의 일환이다. 느린 고독 속에서 사유는 더욱 빛을 밝혀주는 것이다. 시간상으로 조금 더 걸리는 그 여유에 책도 보고 글감도 생각해 낸다.
가고 오는 과정 속 논산 여정은 나의 생각공장 같은 곳이다. 외부의 자연을 보고 삶의 통찰을 하며 사유하고 창의도 하는 공간이 된다. 다음 글은 혼자서 기차 바깥의 눈 쌓인 풍경을 보고 마음껏 떠오른 연상작용을 정리한 스토리이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생각하기에 따라 아주 많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원시시대부터 인간은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힘든 고행이다. 손발을 힘들게 휘저어야 먹을 것이 만들어진다. 인류에게 하루는 곧, 노동 그 자체였다. 뜨거운 햇빛 아래 산짐승을 쫓고, 단단한 흙을 파고 뿌리채소를 캐던 손발은 늘 상처투성이였다. 육체적 고통과 내일마저 불확실한 굶주림의 공포는 언제나 일어나는 루틴이다.
힘든 고행자는 여기저기서 쉽게 마주친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바로 수행자였다. 도를 닦으려 하는 수행이 아니다. 생존 자체가 투쟁이었던 시절, 인류는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건너 무언가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 내었을 것이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 자체가 힘든 고행의 자동 순환이 된다. 이것도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 나중에 아들과 그들 손자까지도 예외 없다. 부질없을듯한 이 상념은 인간을 발전시킨다.
열등한 인류는 그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대신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할 황홀한 도피처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인류는 힘든 삶의 과정을 조금이라도 풀어보려 다양한 노력을 하게 되었다. 힘든 생활을 풀어보려고 즐거움을 찾게 되었다. 일부 머리가 조금 더 개화된 사람들은 '나는 이제 안 힘들고 즐겁습니다'라고 즐거운 삶을 가장하기도 했다. 초기에는 그리 위장을 했을 것이다. 그리하다 보니 이상하게 정말처럼 쾌활을 찾게 되었다. 진짜처럼 위장한 의도는 실체처럼 점차 긍정적인 변화가 되었다.
먼저 찾은 것은 아마도 우연히 발견한 술이었을 것이다. 인류사에서 ‘불의 발견’에 버금가는 것 같다. 고대인들은 떨어진 과일에서 어찌하다 만들어진 술을 맛보게 되었다. ‘설마 죽겠어’ 하며 맛을 보았더니, 아니 이게 기분이 오르고 뭔가 이상했다. ‘현실의 무게’가 한층 가벼워지는 경험을 난생처음 하게 되었다. 특히 쎄빠지게 일한 다음에 마시는 술은 정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지금껏 못 느껴보던 기분이다. 무언가 흔들리고 붕 뜨는 느낌을 알게 되었다. 힘든 삶이 한순간 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잠도 잘 자게 되었다. 힘든 노동도 쉽게 행할 수 있었다. 마시다 보니 저절로 흥이 생겼다. 엔도르핀을 폭발시키는 천연마약 효과이다. 춤이 저절로 춰졌다. 아프리카 토인들이 추는 원시 춤도 아마 자연적 음주 행위의 일환으로 계속 진행이 되었을 성싶다.
다른 것도 찾게 되었다. 세상 동물 중 자유자재로 말을 배워서 하는 유일종으로 무리와의 대화는 발전되어 그들 만의 사회성을 갖추게 되었다. 적대적 감정을 가진 상대를 안심시키고 이제 그들을 무장 해제를 시키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바로 웃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웃으니 상대도 칼을 내려놓고 따라 웃었다. 잦게 싸우는 일이 과거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다른 동물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특이점이다.
초기에 웃음은 약자가 강자에게 보이는 무장해제의 표시였다.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오랫동안 같은 성향을 유지하게 되었다. 강자에게 보여주는 웃음은 다소 비굴함의 성격을 띤다고 느끼게 된 것은 처음서부터 의도적으로 연유된 것이다. 여성에게 웃음과 미소는 강자로부터 그들의 선택을 받는 과정에서 필수적 성향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웃음과 친구 되는 비슷한 것도 연결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상대를 즐겁게 만드는 대화 속에 이왕이면 그를 웃게 만드는 삶의 양념과 같은 것이다. 유머(humor)이다. 그때에는 유머가 지금보다 더 큰 의미를 가졌을 듯하다. 아마 생존을 위한 최고의 재능과 같은 요소이다. 단순히 상대에게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유머는 고도의 개인 능력이 빚은 결과물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승화해야 나오는 것이 유머이고 웃음이 아니던가.
고대 그리스인들도 유머를 통해 현실을 사는 것이 힘들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모든 것이 희극이라는 진리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 웃음과 유머 덕분에 힘듦과 추위를 이길 수 있었고 다음날 다시 동료들과 사냥을 하러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끝으로 다른 즐거움을 주는 마약도 알게 되었다. 바로 성행위이다. 성행위 또한 종족 번식이라는 본능을 넘어, 극심한 노동 뒤에 찾아오는 가장 강력한 보상이고 안식처가 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성행위는 힘든 삶의 청량제가 되는 것을 사람들은 인지했다. 현대의학으로 말을 하면 행위의 부산물인 도파민 효과이고 엔도르핀의 효과를 보는 것이다. 성행위 중에 나오는 옥시토신 호르몬은 상대와의 경계를 허물고 강력한 유대감을 주는 것이라 했다.
인류는 성행위에서 강력한 마약효과를 발견했고, 이것은 척박한 생활환경에서 엄청난 긍정적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인류가 가졌던 근원적인 생존 불안을 잠재우는 가장 평온한 안식처가 되었다. 내일을 위한 생존 에너지는 바로 여기에서 생성되었다.
결론이다. 인류의 성행위 본능은 단순한 욕구라고 보기보다는 눈물겨운 생존을 위한 치유책이었다는 것을 공감하게 되었다.
수만 년 전 우리의 조상들도 우리처럼 힘들었고, 우리처럼 버텼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갖는 작은 휴식도 정정당당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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