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다시 칭기스칸에 주목하나
휴머니즘 제국경영
by evan shim Aug 23. 2022
그의 휴머니즘 면모를 본다
나는 어쩌다 필이 꽂이면 한 인간에 대해 집중적 탐구를 즐긴다. 나폴레옹, 체 게바라. 사카모토 료마 등을 정해서 그들의 기록 중 많은 페이지를 독파하기도 했다. 적어도 그들 기록 수 십권 정도는 독파한다. 연구논문 발표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단지 더 자세히 그들을 알기 위함이다. 10년전에는 나폴레옹을 끈질기게 보았다면 지금은 칭기스칸이다. 칭기스칸은 알면 알수록 더욱 존경을 넘어 경외감이 드는 최초의 인물로 여겨졌다. 만일 그가 동양인이 아니고 서양인이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세계의 평가가 크게 달라 졌을 것 같은 생각도 한다. 나폴레옹에 대해 쓰여진 기록이 전세계적으로 65만권이 있는데 칭기스칸은 역사서 불과 수백가지에 불과하다. 그것도 최근에 나온 것을 포함해서 이다. 나름대로 그의 업적에 대해 부분적 정리를 해 보고 싶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그리 극명하게 갈린 적이 없다. 어떤 이는 그를 잔혹한 정복자나 악마화로 기록했고. 다른 이는 지혜자 또는 동서양 세계를 연결한 위대한 지도자로 인식하였다. 특히 원정으로 인해 큰 피해를 본 중동과 유럽은 그에 대해 한없이 인색한 평가를 주었다. 워싱톤 포스트는 근대 천년 기간 중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설정하기도 하였다. 그에 대한 평가는 이제 다시 시작되는 단계이다. 재평가 작업이 거세게 타 오른다.
전무후무한 세계제국 창조, 항상 이기는 전술전략, 출신을 안가리는 인재중시, 남녀 성평등 추구 등은 현대에서도 모든 정치지도자가 추구하려는 지고의 목표라 본다. 9세기전에 이런 철학을 추구한 것이 얼마나 시대를 앞선 것인지 상상을 하기 어렵다. 그가 한 휴머니즘 존중의 기록들은 마치 지혜로운 할아버지가 베푼 따뜻한 인간미로 볼 수 있다. (단, 그에 대한 부정적 일부 편견은 확대경을 들이대지 않으려 했다)
세계제국 경영을 펼친 위대한 지도자
그는 칸이 된 초기시절까지 글을 깨우치지 못했다. 배운 게 없어서 그의 이름자도 쓸지도 몰랐다. 노후에 기본적인 문자를 터득할 정도였다. 그러나 후에 몽골을 위해 고유문자를 제정하고 제국이 확장됨에 따라 외국어에 대한 포용정책도 실시하였다. 국가운영에 대한 지식을 윈할 때 점령한 지역의 학자들과 사제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지식과 경륜을 존중하려고 하였다. 원정전을 수행할 때마다 그 지역의 현자들을 널리 찾아보도록 했다. 정복전을 펼치던 초기부터 유능한 인재등용에 관심이 많았다.
정복한 국가에서 사람의 재능을 중시했다. 초기에는 무기전문가, 기술전문가 등을 찾는데 집중했다. 이후에는 의사, 직공, 학자, 도공, 목수, 금세공자, 토목기술자, 수공업자까지 확대하였다. 더 나아가 수도자. 사제. 점성술사, 마법사. 예언자. 연금술사 등도 필요하게 되었다. 다양한 세상의 종교를 존중하여 그들 지도자들과 사제. 승려 까지도 초청하여 온갖 색상의 종교 복식이 그 주위에서 항상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그의 가족들조차 무엇을 믿던 종교에 대한 차별이 없는 제국이었다.
칭기스칸은 그의 경호 조직처럼 지식인 집단을 두고 운영했다. 그는 여러차례 명예를 존중하는 언급을 하였고 실제로 명예를 중시하는 적들을 칭찬하기도 했다. 자기 아들들에게도 과거 금과 은을 비축했던 역사적 왕들을 무시해 버리라고 가르쳤다. 그들은 진짜 보물과 가짜 보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자라고 경멸했다. 후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호화스러움을 알면 그의 제국이 망할 때라고 경고했다.
자신이 승리하고 적들이 패배한 이유를 적들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당신의 미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그는 “별 것 아니다”고 항상 말했다. 또 그는 말했다. "나는 특별한 자질을 가진 게 아니다. 사치를 싫어하고 항상 절재를 실천한다. 나는 겉옷도 한 벌 뿐이다. 부하들과 똑같은 식사를 하고 똑같은 옷을 입는다." "나는 언제나 백성을 내 자식으로 생각하고 재주 많은 사람들을 내 친형제처럼 여긴다."
당대에 가장 유명한 현자인 도교의 구처기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을 찾아와 줄 것을 부탁했다. 이렇게 글을 썼다. "나의 소명은 막중합니다. 나는 현자가 필요합니다. 내게 연민을 가져 주십시요. 내게 당사의 지혜를 조금만 나누어 주십시요. 내게 한마디만 해주십시요. 그러면 나는 행복합니다." 그리고 칭기스칸은 오래동안 그의 철학적 논의를 경청했고 그에게 감복을 하였다. 이처럼 능력자들을 구할 때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다. 그는 다른 군주들에게 편지를 쓸 때 다른 군주들이 애용했던 화려한 직함을 쓰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이름만 썼다. 그는 부하들에게도 절대 군림하지 않았다. 그를 부를 때 그냥 이름을 부르면 되었다. 동내 아저씨같이 그냥 ‘테무진씨’ 하면 되었다.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 인생의 지혜를 한없이 추구한 현인이다. 왕과 천자에게 권력이 집중된 수직구조의 제국보다 모두에게 평등한 수평의 권력구조를 가진 나라를 그는 더 추구하였다. 그것이 인류역사상 유래가 없는 최대제국이 된 밑바탕이 되었다.
호라즘 정벌시 샤(무함마드2세)의 아들인 잘랄 앗딘은 유일하게 칭기스칸에게 패배를 준 적장이었다. 그는 칭기스칸에게 쫒겨 절벽아래에 말로 뛰어내려 거친 물결속을 헤엄쳐서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몽골군사들이 절벽 가장자리에서 활을 쏴서 그를 죽이려 하자 칭기스칸은 그들을 제지해서 그는 무사히 도망가게 되었다. 그리고 헤엄쳐가는 자랄 앗딘을 조용히 지켜 보기만 하였다. 그리고 후에 이런 찬사를 하였다. "모름지기 세상의 아버지는 저런 아들을 키워야 하느니"라고 했다.
무에서 만들어진 몽골제국의 위업을 보면서 하나 아쉬운 것은 그가 죽은 이후의 제국의 분열이다. 인류사에 처음 도래한 세계 최대 제국을 후손들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사분오열하게 된 것이다. 기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의 흥망성쇄는 절대 외부의 요인에 의한 게 아니고 그들 내부의 권력다툼과 안이한 현실 인식으로 제국이 소멸되는 것이다. 스케일을 축소하면 우리가 속한 가정, 회사, 사회, 국가 모두가 다 적용되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