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 씻으면 다 해결되나요

(부활절에 떠 오르는 연상)

by evan shim

어쩌다 보니 지난 부활절에 이어 이번에도 미사 시에 수난복음을 읽게 되었다. 신대방동성당의 독서단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처럼 특별한 미사에서 성경 봉독을 하는 정확한 이유는 분명코 소속 집단에서 남자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하간 주어진 부활절 복음을 이해하려 정독을 여러 차례 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복음 봉독의 대상은 주로 여러 사람 역을 맡아서 해야 한다. 그 유명한 빌라도 총독, 빌라도 아내, 병사들, 수석 사제들, 백인대장, 군중들 등이다.


수난복음의 페이지 유형에는 긴 것과 짧은 것이 있다. 다행히 이번에는 짧은 것을 선정되어 읽는 부담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러 대상을 같은 목소리와 톤으로 하는 것은 조금 어색하여 캐릭터에 합당한 유사한 톤으로 조정을 하여 말하기로 하였다. 총독의 언어는 조금 무게가 있는 방식을 취했고, 빈정거리는 병사들과 군중들은 조금 언어의 톤을 가볍게 처리해야 했다. 이런 것은 복음의 내용을 몇 차례 정독하며 읽어보면 그런대로 잘 조합이 되었다.


그런데 복음을 읽다 보니 내용과 관련된 어떤 특정한 장면이 계속 떠 올랐다. 바로 빌라도 총독이 손을 씻는 장면이다. 나는 이번에 군중을 앞에 두고 빌라도가 손을 씻는 장면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그가 개인적으로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행위를 한 것으로 인식해 왔었다. 그런데 성경에 적시된 바로는 군중을 앞에 두고 보여주기 식의 손 씻는 행위를 연출한 것이다. 아하. 그러하구나. 빌라도는 프로파갠다의 정도를 잘 아는 사람이고 총독 직함에 맞게 제법 경륜 있는 연출을 할 줄 아는 행정가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연상을 넓혀보고자 한다.


아침에 우연히 내가 쓴 메모를 보게 되었다. 폰티우스 필라투스의 손 씻는 이야기를 생각하여 쓴 작은 메모였다. 사물을 조금 다르게 보는 것을 오래 해온 나로서는 라틴어 Pontious Pilatus로 그를 불러왔다. 이유는 그의 이름을 그 나라 말로 부르는 것이 옳다고 여겨서이다. 이등박문보다 이토오 히로부미로 부르고 모택동 대신에 마오쩌뚱이라고 불러야 된다 생각했다.


손을 씻는 행위는 원래 손에 묻은 더러운 흔적을 없애는 행위를 의미했다. 가장 쉽게 물로 씻어 오물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보통 범죄조직에서 탈퇴하여 새사람이 되어 정상인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말로 더 자주 인용되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범죄 전력을 가진 자에게 새로운 한탕을 의뢰하면 그는 “나 손 씻었어”라고 흔히 말하곤 했다. 필라투스가 수많은 군중 앞에서 손을 씻는 행위는 그의 말대로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요”라고 말했다.


역사에 인식될 만한 짓을 한 사람의 행위는 역사에 기록이 된다. 한 나라에서 악마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아마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을 최고의 악인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봐야 약 5천만 명 정도이다. 그런데 반해 필라투스는 인구 스케일의 격이 다르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종교에서 그는 최고 악의 화신이 되었다. 미사 중 사도신경을 외울 때 그의 악명이 그대로 나온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라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오래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된 이름이 되었다. 필라투스는 로마의 총독으로서 生殺을 여탈 하는 강력한 지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비겁했다. 정의와 비겁 중에서 그는 비겁을 선택했다. 우매한 민중들과 제사장들의 요구를 이겨내지 못하고 정의 실현과 도덕적 책임을 포기한 결과 인류 최대의 비난을 받고 있다. 모든 인류가 종말 되는 그날까지 영원된다.






다면적 평가를 위해 여러 맥락에서 보자. 당시 유대지역은 정치적, 종교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 속에서 필라투스는 로마의 통치권을 확립하고 반란을 억제해야 했다. 그 와중에 예수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는 손쉽게 정치적 안정을 우선시했다. 즉 예수를 처형하는 것이 가장 쉬운 해결책이었다. 로마법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압력 사이에서 그가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죄가 없다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중의 압력에 굴복해 예수를 십자가에 목 박히도록 허용했다. 그리고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군중 앞에서 ‘손을 씻는’ 행위를 보여준다. 비겁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조금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필라투스를 평가할 때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지역적 복합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는 그의 행위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죄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개인의 양심과 권력 갈등의 희생물이라는 것이다. 즉 필라투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보는 견해이다. 성경에 쓰인 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필수적 역할을 한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본 책이 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라는 제목의 책이다. 러시아의 미하일 볼가코프가 쓴 소설이다. 조금 이상한 러시아 소설이다. 러시아 소설을 쓴 대문호들 작품과는 상당히 다른 소재의 줄거리이다. 처음 보기에 무게감에서 상당히 가볍게 느껴지고 황당하다 할 정도의 환타지성 전개도 맥락상 잘 연결이 어려울 정도이다.


반체제 작가여서 모스크바에서 벌어지는 희한한 말도 안 되는 소동을 통해 러시아 사회체제를 부정하는 의도가 보인다 하여 서슬 퍼른 당국에서 예의 주시했던 작가이다. 그래서 그의 사후 약 30년이 지난 다음 이 소설이 나왔다 한다.


소설 속 나의 관심을 끄는 등장인물은 폰티우스 필라투스이다. 전체 내용 중에서 작은 부분이다. 주로 그의 고뇌와 갈등을 그려냈다. 무죄임을 알고 처형이 정의에 어긋난다는 법과 정의 사이에 갈등, 유대인 지도자들과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는 권력과 양심 사이의 갈등, 그리고 끝으로 예수와의 대화를 통해 예수의 지혜와 온유함을 인지하며 인간적 연민과 냉혹함 사이의 갈등 등이 눈여겨볼 소재였다. 그 외 나머지 부분은 마냥 가벼운 갈대 정도로 바람에 슬슬 지나가도 되는 내용들이다.


부활시기를 맞아 일독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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