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회사 교육원에서 제공하는 언어교육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원래 교육을 받기를 즐겨서 조금이라도 흥미가 당기는 교육 과정에 잘 참여하는 직원이었다. 가르치는 분은 육군사관학교 교수하시던 분이 우리를 가르쳤다. 교육생은 약 12명 정도로 기억된다. 당시는 러시아는 적성국가이고 우리와 국교수립도 안되어 있을 때였다. 교재는 아주 두꺼운 책인데 이 책으로 약 9개월을 공부했다. 하나둘씩 포기한 사람이 늘더니 거의 막판에는 3명 정도로 줄어들었었다. 때때로 시험도 보고 교수님이 열심히 가르쳐서 인지 제법 실력이 늘어감을 느꼈다.
그리고 약간의 세월이 흘렀고 드디어 러시아와 국교 수립, 그리고 항공노선이 생겼다. 당시 항공사 승무원을 했던 나는 모스크바를 초기에 여러 차례 비행을 하였다. 기억나는 일이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군데군데에 매우 크게 만들어진 광고탑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광고탑의 문자를 거의 다 해석할 수준이 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을 타며 거기에서 들려오는 안내 멘트도 귀에 들어왔다. 깜작 놀랬다. 러시아와 국교 수립 전에는 나와 아무 관계도 없는 러시아 공부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말이다.
라보따찌, 사회주의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교육원에서 배운 두꺼운 러시아어 교재의 초두에 나온 것이 동사 ‘라보따지’는 ‘일하다’라는 의미다. 인칭 변화에 따라 어미변화를 익혀서 지금도 기억이 난다. 사회주의 국가는 일을 매우 소중한 자원으로 간주했다. 노동을 게을리하는 자는 사회주의 공동체에서 소외시킬 정도로 노동은 국가 발전에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역할이라고 국민들을 계몽하였다.
일(W)이란 물리학적으로 보면 힘(F)을 가해서 움직인 거리(D)로 정의된다. W=F.D일의 공식이다. 움직여서 거리의 변위가 생겨야 일이 발생한 것이다. 정의대로 보면 정신적인 활동이나 형이상학적 활동 개념은 일로 간주되지 않는 것이다. 하드 한 면에서 이루어지는 거리 운동이 있을 때 일이 행해진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종교적인 활동도 일이 아니고 소프트하게 진행되는 많은 정신적인 활동도 반대급부 비용을 지불되지 않아야 되는 것이다.
생활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물리학적 의미의 일보다 두뇌를 쓰거나 정신을 통한 일을 했으면 공식적으로는 일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임금도 지불되지 않아야 한다. 동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이 이야기는 말도 안 된다고 여길 것이다. 세상이 진화되면서 의외로 많은 이들이 이러한 일로 간주되지 않는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이들은 육체 노동자들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몸을 쓰지 않는 소프트 영역의 일을 훨씬 더 좋은 직업으로 존중한다. 복잡한 현대 세계에서는 점점 더 많은 직업군이 여기에서 발생하고 있다.
태초에 일에 대한 기독교의 기록이 있었다. 하느님도 힘들여 일하여 세상을 6일간 창조했다는 성경의 창조론이다. 원죄를 지은 아담에게는 평생 땀 흘려서 가족을 먹여 살리라는 노동형을 부과하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선택하는 것 중에 하나가 사람이 어떤 직업을 만나냐는 것이다. 배우자의 선택 및 인생관의 선택과도 맞먹는 중차대한 결정 영역으로 인식된다. 직업 선택은 그를 위대하게 만들기도 하고 비천한 사람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학교생활을 마친 사람들은 그가 최초로 어떤 직업을 찾아야 할지를 두고 촉각을 곤두서고 있다. 처음 출발이 이끄는 인생의 최종 결론이 아주 첨예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성공과 비 성공을 가름하는 척도로 인식된다. 일은 그의 한 생애를 종합 평가하는 잣대로 쓰인다.
사람은 사회적 유기체로서 서로가 연관을 맺고 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일은 인간생활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인간을 일로서 서로 맺어주는 중계자로서의 역할이다. 좋은 일, 보통 일, 미천한 일 등으로 나눌 수 있고 그들은 유사한 집단끼리 유기적 관계로 구분한다. 그게 집체화된 통상의 사회라고 부른다. 의도적이 아닐지라도 최후의 모집단은 동질성을 기반으로 하려는 속성에서 출발한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인간은 일에서 출발해서 일로 끝이 난다.
어떤 사람을 보려면 그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보면 쉽게 그의 의식 수준을 알 수 있다. 성당을 짓는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일에 대해 물어보았다. A석공이 돌을 절단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A가 답했다. “ 아니 보면서도 몰라요, 먹고살기 위해 돌을 자르고 있지 않소” 같은 일을 하고 있는 B석공에게 같은 질문을 주었다. B가 답했다. “하느님의 전당을 올리는 거룩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일도 당사자가 의미를 찾는 일이 진짜 일의 본성이다. 비참한 일, 힘든 일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의미 있는 일로 바뀐다. 내가 하는 일을 정말로 사랑하는지가 판별 요소이다.
동물을 관리하는 직업이 있다. 애완동물은 본능적으로 그를 다루는 사람이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잘 안다. 이런 류의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애완동물이 싸는 똥도 즐겁게 처리할 수 있어야 그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직업이 되는 것이다. “에이 더러워서, 못해 먹겠네” 한다면 그에게 맞는 일이 아니고 고통만 연속적으로 주는 나쁜 일인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당신의 일이 10점 짜리도 되고 0점짜리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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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있어서 일과 나는 서로 사랑하는 친구다. 심장이 뛰는 한 나는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일의 공식 W=F.D 를 잘 지켰다. 오랫동안 일을 사랑해 왔다. 일이 있으면 의욕이 생기고 일이 없으면 기가 빠진다. 일이 없으면 무엇이든 할 일을 만든다. 일은 자기를 알아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황금을 준다. 많이 일하는 사람이 많은 수익을 캐 가는 것은 자연의 순리 현상과 같다. 봉급이 많으면 그 봉급을 지키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한다. 나는 한평생 ‘좋은 일’은 아니지만 ‘보통의 일’을 열심히 했고 그래서 이제껏 세상을 살아왔다. 일도 분명 내가 그를 사랑하는 줄 아나 보다.
일은 그 자체로 존경받아야 한다는 것의 나의 결론이다. 일을 하면서 받는 반대급부인 임금의 이중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원래 일에는 나쁜 일이란 없다. 낮은 임금을 받으면 나쁜 일로 간주되는 건 아주 잘못된 편식이다. 일이란 모두 우리 생활에 지대한 편익을 주는 고마운 존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