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비행의 기회
아프리카 수단 전세비행 추억
항공사에 제법 짭짤한 수익을 주는 기회가 전세기(charter flight) 운항이다. 여객도 있고 화물에도 전세기를 띄운다. 왕복여행을 하는 일반 여행과는 달리 대부분 전세 편 비행은 주로 원웨이(one way) 구간만을 운송한다. 항공승무원들은 가끔 차터를 운송할 기회가 있다. 한때 통일교 재단의 대규모 국제결혼식도 있고 미국의 암웨이 그룹에서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유명 관광지에서 워크숍을 열기도 한다. 올림픽 선수단의 전세편도 있었다.
그 외에 기관이나 단체에서 특별한 행사를 위하여 운영하는 차터도 있었다. 대통령 자체 전용기를 운영 전에는 코드원(code 1) 차터라는 형식으로 대통령 해외순방 시에 여러 차례 전세기로 운영되었다. 가끔은 군사용도의 전세기도 있었다. 군에서는 자제적 MAC (military airlift command) 비행 편이 있지만 민간 항공편이 스케줄 편리성 때문에 더 자주 이용되고 있다.
나도 여러 차례 전세기 비행에 투입되었는데 정상궤를 벗어난 다른 형태의 비행에 즐거움을 느낀다. 한두 번은 내가 가고 싶다고 지원하기도 하였다. 전세기는 고객위주의 편리을 제공한다. 전세기 책임자에게 방송 전권을 주고 마음대로 하라고 해 주었다. 간단히 방송 장치만 알려주면 되는 것이다. 그들 만의 공간이니 기내 흡연문제도 그들이 알아서 하도록 했다. 이러한 호의적인 대우에 그들도 즐거워하였다.
한 번은 상당히 먼 거리인 아프리카 남수단을 군용 차터로 갔다. 운용 항공기는 대형기인 B747이었다. 항로는 서울- 바레인- 남수단인데 정확히 수단의 무슨 공항인지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항공기내 좌석은 거의 빈 좌석 없이 가득 군인들로 메워져 있었다. 작전중이라 술도 못하게 하니 비행하는 중에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담배는 허용되었다. 군인들이라 기내판매도 별 흥미가 없으니 어려움 없이 지나갔다. 영화상영만 몇 편 상영하면 되었다. 모두가 조직적인 군인들이어서 지휘관 말에 잘 따랐다. 이들은 평화유지군으로 참여하는 것이라 일반 전투원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비장하거나 긴장도는 크게 보이지 않았다.
도착 전에 지휘관이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드디어 항공기는 수단지역 공항에 도착했다. 내릴 때 보니 인근 마을에 있는 농지도 보이고 아이들 노는 모습도 보였다. 해외에서 보는 것 같은 그리 큰 공항이 아니었다. 마치 시골에 있는 작은 공항이다. 이윽고 스탭카가 연결되고 내려도 된다는 지상직원의 말에 군인들은 하기를 하였다. 군 기수단이 먼저 내린 후 다른 병사들이 하기했다. 내릴 때 보니 모두 파란 모자를 썼다. UN 평화유지군의 모자였다. 중간 경유지 체류 시간을 포함하여 약 14 시간의 비행시간이 소요된 것 같다.
수단에 대해서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다. 이후에 알게 된 역사지식에 의하면 영국과 이집트의 공동 식민지배를 받고 이후 1956년 독립되었는데 그냥 넘겨주지 않고 남(영국지배)과 북(이집트 지배)이 분할된 상태로 넘겨준 것이다. 대영제국이 가장 잘 써먹는 분리통치(divide and rule) 시스템이다. 인도, 파키스탄, 뱅글라데시로 분할하여 분리 독립시킨 영국은 동일한 방식을 여기서도 작동시켰다. 분리된 통치국의 영향권 아래 들면 결국 내분에 의해 영구 분리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도 그중 하나다. 수단은 남부의 부존 석유로 벌어들인 돈벌이와 정치면에서 대부분의 실권은 북이 가져가고 남과의 갈등으로 결국은 내란상황까지 돌입한다. 이에 UN 이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기에 이르렀고 한국도 이에 동참하였다. 결국 2011년 완전 분리하여 북수단과 남수단 완전 별개 국가가 되었다. 민족도 종교도 경제적 백그라운드 모두 상이한 두 집단의 종착점인 셈이다.
남수단 지역 공항에 대형기인 B747 이 착륙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항공기 운항에 필요한 제반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무사히 전세기의 역할을 완수했으니 이제 돌아올 준비를 해야 했다. 수단은 우리와 아무런 항공협정이 없는 곳이라 공항에서 사용하는 모든 비용 등을 직불처리 해야 했다. 그래서 기내에 로드마스터(탑재관리사, load master)가 함께 탑승했다. 어찌 될지를 모르니 비용을 지불할 카드도 여러 개 준비했고 이것도 안 될 때를 대비해서 적당한 비용을 미화 현금으로 챙겨 온 것이다. 항공기 연료를 넣어야 되니 그 비용도 내야 되고 착륙료, 공항 이용세, 용수 공급, 수하물 하기 및 탑재비용, 오물처리비 등 모두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음식비용까지 현장에서 바로 결재해 주어야 하는 것이 전세기의 현실이다. 일부 오지 국가로 가는 항공 차터 편에서 주로 발생하는 불편사항이다.
기장은 내전으로 정세가 불안정한 수단을 빨리 뜨고 싶어서 간단히 준비하고 최대한 빨리 이륙하자고 나에게 말했다. 현지 스탭에 의하면 모든 준비는 다 되었는데 한 가지가 안된다는 것이다. 바로 용수공급이었다. 소형 항공기만 취항하는 공항으로 대형기인 B747 항공기에 용수 공급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2차 대전 당시 소방용 수동식 물펌프 같은 것을 가지고 B747 항공기에 물을 넣으려니 높이 수압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다. 지상에 내려가서 보았더니 두 사람이 소방용 펌프질을 양쪽에서 시소식으로 열심히 하는 데 항공기 물탱크에는 전혀 물 공급이 안 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귀국하는 편은 승객이 타지 않는 페리(ferry) 비행이다. 내가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기장에게 물 없이 그냥 가자고 했다. 문제는 화장실을 플러싱(flushing, 물 내림) 할 때 물이 안 나오니 볼일 보고 생수를 몇 병 부어서 플러싱을 사용자가 직접해야 하는 불편이다. 최근의 B747 에는 물 대신 진공(vacuum) 흡입으로 플러싱을 하는 신방식으로 대체가 되었지만 당시는 아직 장착 전이었다. 대신 생수는 여분으로 기내에 제법 많이 실었다. 중간 경유지인 바레인까지 오면서 계속 써야 하니. 항공기 준비는 그리 일부 부족한 상태로 수단을 이륙하였다.
항공기 승객 없이 항공기 탑승근무를 하는 것을 원래 dead head 근무라 하는데 dead라는 용어감이 나쁘다 하여 extra 근무라고 바뀌었다. extra 근무 시 비행수당은 정식근무의 반을 제공한다. 그 넓은 B747 대형 항공기에 승객이 없으면 모두 신났다. 해야 할 일도 없고 아무런 제약이 없어지는 것이다. 아무 자리에 누어서 올 수 있고, 책을 보든 영화를 보든 각자 알아서 한다. 넓은 일등석에 있는 사람도 있고 아예 이등석 좌석을 넓게 하여 자리를 편 승무원들도 있다.
다행히 화장실의 기능은 문제없이 작동되었다. 기장도 조종석 문을 열고 근무한다. 그러나 운항승무원은 할 수 없이 조종근무를 해야 하니 쉬는 객실승무원과는 조금 처지가 다르다.
이륙 후에 식사를 하고 바레인까지 자유시간이이다. 나는 맥주를 한 두병 들이켰다. 비행 중에 약주를 조금 먹으면 잠이 잘 온다는 그간의 경험칙 때문이다. 승객이 없기 때문에 누리는 호사이다.
지금 같으면 이러한 장거리 비행근무는 항공안전법에 의해 계속비행이 불가하다. 승무시간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다. 당시는 누가 시비를 하지도 않으니 회사는 소수의 인원으로 적은 비용만 가지고 항공기 운용을 극대화한 것이다. 거의 하루 이상을 연속적으로 근무한 승무원의 근로조건은 별 문제 삼지 않은 시기였다. 항공 종사자만 그리한 것이 아니고 한국 노동자 전체가 그리 할 때니 별문제 없이 지나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