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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shim Jul 17. 2023

좋은 일은 서로가 하려 하고,

(별 볼일 없는 일도 맡아야)


좋은 직책에만 집중 말자, 안 좋은 일도 그리하자

      

무언가 이권이 많거나 신문 방송등에 나의 지명도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는 모임의 대표는 서로 하려고 혈전을 벌린다. 사람이 던져주는 먹이를 서로 먹겠다는 비둘기 같다. 일단 상호 경쟁이 되면 지금껏 체면 차리며 형님 동생하며 친근한 관계가 돌연 어색해지고 마침내 서로를 비난하게 되기도 한다. 주로 정치인들이 벌리는 부정적인 사례이다.   

   

정 반대의 모임도 있다. 이번에는 별로 경제적 이익도 없는데 귀찮기만 한 모임의 경우이다. 별 볼일 없는 모임 회장이나 대표는 서로 하라 해도 않겠다고 이런저런 핑계로 다들 사양을 한다. 차기 대표를 뽑는 모임의 임기 말에 꼭 생기는 루틴이다.

     

이를 조금 슬기롭게 해결한 몇 경우를 이야기해 본다. 문제의 본질은 의외로 간단하다. 만약에 무슨 줄을 섰을 때 공평한 대접이나 순서가 지켜지면 사람들은 별 이의 제기가 없다. 모두가 공정한 방식을 적용하면 의의로 문제는 쉽게 풀린다.     


어떤 나라의 중책을 서로가 맡아서 하겠다고 하는 정치인의 경우에는 소속 캠프 전체가 사활을 걸고 올인하는 것을 본다. 그런데 잘 진행되는 그런 나라도 있다. 스위스의 대통령은 각 주(Canton)에서 돌아가면서 하는 전통을 세웠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 싸울 필요 없이 서로가 일정 기간을 기다리면 평등한 기회가 온다고 하니 상호 반목할 필요가 없다. 아름다운 스위스 경치처럼 정치 선진국이 되었다.


제도란 잘 조정하면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사람들로 혼잡한 식당에서 대기 순서를 정한 표를 주니 상호 시비가 없어졌다. 같은 이론을 우선 동네 친목 모임에서도 동일하게 받아들여 보자. 내가 봉사하듯이 다른 사람도 똑같은 봉사를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하면 구태여 서로 안 하겠다고 빠질 핑계가 없다. 문제는 공정한 기회 보장이 중요한 선택 결정의 요인이 된다.

    




또 다른 예를 보자. 그래서 운영 제도가 중요하다. 아세안(ASEAN) 10 개국이 모여서 국가 간 경제협력 문제를 조정하는 조직체가 있다. EU 비슷한 아세안 경제 협의체이다. 여기도 재미나게 리더십을 운영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대표를 맡은 당해 집행부가 모든 결정을 하던 체재에서 조금 다른 선택을 하였다. 현재 의장국의 단일 의사결정이 아니고 3대 의장단의 공동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최종 결론을 내는 시스템이다. 3대 집단의사 결정은 과거, 현재, 미래의 회장단이 상호 협의하여 모든 것을 논의하는 체재이다. 그리 의사결정을 하는 제도를 만들어 유지해 왔고 지금껏 아무 문제가 없단다. 조금 기다리면 누구나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니 핏발 세우며 싸울 필요가 없다. 전체가 만족하는 화합 리더십은 이리 만들어졌다.    

  

이런 제도라면 회원국 간 갈등도 최소화할 수 있는 고상한 현자들의 조직체 모임이 된다. 모범 운영체제로 부를 수 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동양의 가치가 승자 일방주의 (winners take it all)를 주장하는 서구식보다 우월한 공존 시스템이라 생각되었다. 조직체를 구상한 싱가포르 리콴유 수상의 혜안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게 소위 그가 주장했던 아시아적 가치에 맞는 것 같다.     




이번에는 내 주변 이야기이다. 내가 참여한 소 공동체에서 골치 아픈 대표 선출 과정이 자동으로 해결된 사례이다. 물론 10여 명 정도의 소그룹들이다. 하나는 막역한 친구들과의 수십 년째 하는 모임이다. 그때는 중국집 원탁에 모였다. 그래서 참석자 위치에서 시계방향으로 돌아가자 했다. 사진을 찍어 두었다.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게 끝이었다. 더 이상 이론이 있을 수가 없다. 그리 오랫동안 잘 유지된다. 한번 이렇게 하겠다고 결정이 되니 자동으로 다음 타자가 맡아서 회장 바통을 받는다. 앞으로도 한강에 물이 한 방향을 정해 흐르듯 갈 것이다.  

    

다니는 성당에 소속된 구역모임이 있다. 대충 한 구역당 약 10-20 명 정도의 남성 회원 간 소그룹 공동체이다. 우리 성당에 19개 구역이 있는데 거의 절반은 소위 말하는 구역장이 없는 사고 구역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우리 구역은 지도체계 승계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풀리고 있다. 약 5년 전쯤 구역장 선출 그 문제를 자체 해결했다. 쉽게 연장자 순으로 돌아가며 하기로 했다. 물러나는 구역장은 자동으로 총무직을 맡아서 하기로 했다. 과거 어떤 프랑스 대통령이 은퇴 후 낮은 지자체 장을 하던 일이 있어 있었다. 그는 그리해도 아무 일 없었다. 돌팔매 한 방에 새 두 마리를 잡는 (one stone 2 kill) 방식이다. 집행부 상호 인수인계만 하면 되고 축하한다며 막걸리를 한잔하고 추인하면 또 1년간 잘 유지된다.   

   


생각이 다른 곳에 연관된다. 한국 사회는 정치 지도자 선출로 인한 갈등이 극대극으로 무한 수렴하는 지경에 와 있다. 생사를 걸고 싸워 상대방을 죽이는 로마식 격투사 방식이다. 금세 떠오르는 나라 중에는 최근의 미국과 한국, 아프리카 일부 국가이다. 과거 시절부터 유지한 승자독식 체재 때문이다. 풍요가 찾아온 현재도 과거와 변함없이 혼란 궤도로 간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성 대역에 머문다.

    

차라리 대한민국 대통령도 갈등을 최소화하는 현명한 제도로 뽑으면 어떨까 부질(?) 없는 생각을 해 본다. 쉽지는 않겠지만 다양한 방법은 반드시 존재한다. 똘똘한 인류는 그보다 더한 문제도 다 해결을 했는데 못할 이유는 없다. 그래도 지혜를 가졌다는 호모 사피언스들이다. 단 하나만 믿으면 된다. 기회는 기다리는 자에게 공평하게 온다는 확신만 보장되면 어떤 변화도 가능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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