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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shim Dec 01. 2023

페르소나 난 그라타

(환영을 받지 못한)


형성된 외적 자아 모습 – 


요즘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이 제법 많이 사용되고 있다. 원래 라틴어에서 유래된 용어인데 현대 사회에 와서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마케팅에서도 사용되고 연극등 심지어 AI 분야에서도 가상의 페르소나가 어쩌고 하는 말들을 쓴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페르소나를 활용하며, 마케팅에서도 소비자에게 제품이나 서비스의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페르소나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떠 오르는 가사가 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이다. 하하, 재미있다. 연상은 자유이다.


또 다른 연관이다. 항공사 고객서비스부에 근무할 때이다. 이곳에는 고객들과 직접 연결되는 hot line이라 불리는 전화가 있다. 회사 전화 교환수가 항의 내용이 제법 심각하거나 또는 외국어로 항의를 하는 경우에 그 연결은 바로 이 전화로 우리 부서에게 온다. 우리는 이 전화를 그냥 red line이라 불렀는데, 단 전화기의 색상은 붉은색이 아니었다.  


많은 고객들의 전화를 받는다. 의견도 있고 불만 제안 또 클레임등의 내용을 전화로 받으며 그 내용을 모두 기록한다. 전화기 옆에는 전화 내용을 분류해 기록하는 기록장이 있었다. 고객내전상담 일지이다. 그리고 월간 단위로 정리하여 월간 고객서비스 통계 보고에 포함시킨다. 이것도 나중에는 회사의 전반적 서비스를 평가 하는 중요한 빅데이터가 되는 것이다. 당시에 수준 낮은 국내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향상하고자 하는 초유의 고객서비스 활동부서였다.


내국인이 한국어로 전화하여 말하는 불만이나 항의는 정해진 절차대로 하면 된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외국인이 항의나 클레임 성격이 문제가 된다. 어느 정도까지는 외국어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되어야 했다. 전화는 사무실 내부 인테리어를 바꾸거나 자리 변경을 할 때 전화를 어디에 놓을 것인지를 서로 신경이 많이 간다. 즉 서로 이 전화는 좀 멀리 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hello 하고 말을 시작하는 외국인 전화가 오면 신경이 곤두선다. 어느 정도는 외국어를 제법 한다고 해서 데려다 놓은 직원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말 하듯이 쉽게 통화가 되지 않았다. 


영어와 일본어가 주로 많이 오는 외국어 전화였다. 당시 국내의 여행자유화가 되기 이전의 주요 고객은 대부분 외국인들이었다. 우리 중 외국어 전화를 받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었다. 한 3명이 돌아가며 외국어 전화받는 것을 전담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 받은 상담기록은 당연히 해당부서나 해외 지점등에 텔렉스를 통해 통보하고 경위를 알아본다. 필요하면 관련자 연석회의를 하고 대책을 수립하기도 한다. 또한 이런 업무는 회사의 경영층에 월례 단위로 보고하기 때문에 문제가 야기된 해당 부서에서 무시하지 못한다.





한 번은 한국에 주재하는 남미 국가의 대사관에게서 불만성 전화를 받았다. 그는 대뜸 당신의 직위가 무엇이냐, 너희 부서의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을 바꾸라고 했다. 첫 느낌이 보통 수준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의 직위는 이러하고 내가 담당자이니 나에게 말을 해 주면 해결을 마련하겠다고 하자 불만의 내용을 말해 주었다. 주재국 대사가 우리 항공사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항의였다. 항공기 좌석배정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 자신이 외교적인 인물인데도 항공사로부터 인정을 안 해주고 상응하는 접대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내용이다. 


공항에 있는 항공사 직원은 승객 신분에 대한 차별을 절대 하지 않는다. 당연히 정해진 절차 규정에 의해 운송 체크인 업무를 수행할 따름이다. 그때 그가 말한 내용 중 사용한 용어가 오래 기억되었다. 그가 바로 말한 페르소나 난 그라타(Persona non-grata)라는 용어였다. 그러면서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런 대접을 받았다는 경험을 말한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 용어를 이미 알고 있는 말이었다. 그가 한 말을 바로 이해했다. 일종의 외교적 용어로도 쓰이는 말이었다. 이 용어를 쉽게 설명하면 이런 말이다. 한 마디로 ‘외교적 기피인물’을 말한다. 


아그레망(agreement)이란 말은 자주 접하는 외교용어이다. 다른 나라에 자국 외교관을 파견할 때 해당 국가의 의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 외교관을 선정했는데 귀국은 어떠냐고 물어보는 절차로 보면 된다. 이때 상대 국가는 자국에 파견할 외교관이나 공관 직원으로 선정된 사람을 검토한 후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persona non-grata’라는 라벨을 붙여 퇴자를 놓는다. 단 non-grata 되는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국제 협약은 말하고 있다. 이것은 확대되어 타국에 파견된 이후에도 그가 한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도 persona non-grata 라벨을 붙이고 해당 외교관이나 공관직원은 근무에서 업무정지를 해야 한다. 그리고 시한을 주고 강제퇴거조치 한다. 


언론에서는 이를 외교관 추방조치라고 선언한다. 한 마디로 양국 외교상태 악화의 초기 단계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상대국 또한 유사한 보복조치로 상호 확대되기도 한다. 외교적이라는 말은 흔히 정무적이라는 말과 유사하게 사용되고 있다. 국가의 이익이나 명예에 대해 사건을 확대할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다는 탄력성을 의미한다. 외교사례에서 persona non-grata를 발하는 사례는 실제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한때 한국의 외교관이 해외 주재국 지역에서 성범죄 비난이 일어났지만 persona non-grata를 받은 경우는 없었다. 이와 같은 모든 외교형식은 비엔나협약에 근간을 이룬다. 


후일담이지만 항공사를 퇴직하고 나온 이후에 서비스 부서에서 익혔던 사례를 이용하여 남들보다 항공서비스에 대해 잘 따질 줄을 알게 된 실리도 있었다. 올바른 항의를 한다는 말이다. 억지로 하는 항의는 어디서나 대접을 받지 못하는데 올바른 항의는 그대로 잘 받아지고 있다. 해외를 출장 시에도 골치 아프게 해당 항공사 직원들과 싸우기 싫었다. 나중에 점잖게 호텔 영수증을 제출하고 당해 책임을 요구하는 레터를 보내면 사과와 함께 그 비용을 전액 환불받은 사례도 있었다. 받아야 할 당연한 보상을 제대로 받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페르소나 (persona)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 해 보기로 하자. 

원래 페르소나(Persona)라는 의미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배우들이 연극에서 사용하던 가면을 뜻하는 용어였다고 한다. 이후 약간의 의미 변화를 거쳐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페르소나는 개인의 진실된 모습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맺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외적인 모습을 의미한다. 자기가 본유적으로 가진 아이덴티티라 보다는 어떤 역할에 충실하다 보니 그대로 그의 외적인 정체성이 굳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시대적 의미의 페르소나는 한 개인이 총체적으로 가진 성격과 가치관을 반영하므로 개인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페르소나를 잘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 용어를 최근에는 마케팅 기법으로 사용하는 예를 본다. 한 포도주 상표를 ‘페르소나 난 그라타’로 붙였다. 캘리포니아의 한 와인 업체가 여러 가지 포도 품종을 브렌딩 한 와인을 제조하여 붙인 이해가 잘 안 가는 상품 이름이다. 환영받지 못한(non grata) 의미와 와인 품명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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