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그녀가 나오는 꿈을, 계속 함께하는 꿈을. 평소와 같았다.
정확히 이틀 전의 오후이며 창문틀 사이로 햇살을 받으며 누구 하나 방해 하지 않는 한적한
시간이며 일상 속 놀랍지도 않은 사사로운 문자를 보내며 평소와 같은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는 일어났다.
그동안 굳게 먹은 마음이 무너지는 아침이었다. 고작 이틀 전이면 경험할 수 있는 시시한 장면이었다.
이제는 경험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2025년 3월 25일 오후 10:29 발신 통화 41분.
나의 작은 세상과 작별은 399일이라는 시간에 비해 41분 만에 끝났다. 그녀의 생일의 이틀 후였다.
나는 이게 마지막인 줄 알았으면 마지막의 그 문자를 날렸을까? 이게 마지막인 줄 알았으면 지하철역에서 상냥하게 말하고 그녀를 안아줬을까? 그녀가 다른 기차를 탄다 해도 별말 없이 보내줬을까?
후회가 든다. 하지만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국 남녀가 만나 언젠가는 마주할 시간이다. 다신 보지 못할 각오를 다지고 만나는 것이 연애였던 것이다. 나는 미처 이 사실을 왜곡하고 망각했다. 이 수순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첫사랑이라 부르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나의 첫 번째 사랑이었다.
나의 최선이며 나의 작은 세상과 같았다. 스무 살 첫 번째로 이야기해본 이성이었다. 흔히 여자가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세상으로 이끌어준 그녀였다. 그리고 나의 모든 첫 번째 경험이었다. 내 첫 편지, 첫 사과, 첫 케이크, 첫 선물, 그리고 처음, 나는 모든 걸 주고 싶었다. 미숙한 자신이었고 마냥 즐거운 나였다. 항상 옆에 두고 싶고 매일 이야기하고 싶었다. 작은 세상이었다.
결국 겉으론 비슷한 우리였지만 완전 다른 타인이었다. 그녀를 타인이라고 선을 긋는 것이 아닌 정말 타인..'다른 사람'이었다. 그녀 또한 나를 자신과 같다보고 나 또한 그녀를 나와 같다고 본 것이다. 서로 맞지 않아 헤어졌다. 모든 헤어짐의 원인 일지도 모른다. 나의 사랑은 뒤틀려갔고 결국 집착으로 변해있었다. 나를 결국 보지 않았다. 그녀는,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 노래를 찾고 있다. 12월 31일 12시 59분.
5...4...3...2...1... 1월 1일 내 귀를 막아주며 노래를 들려주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21살이다.
그렇게 나와 그녀는 새해를 맞이한다. 성인 되고의 첫 새해는 나한테는 크게 다가왔다. 행복한 기억이다. 그녀와의 추억 속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냐고 물어보면 난 어김없이 이걸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래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모순인 걸까?
후 폭풍이 두렵다. 꿈의 내용은 잔인하고 다신 볼 수 없음이 아프다. 나의 첫 번째 연애라 그런 것일까? 나는 이것의 해답을 지금은 알 수 없다.
사랑은 참 우습다. 정말 아슬아슬하다. 툭 치면 넘어가고 툭 치면 부러지며 툭 치면 꺼진다. 사랑은 생각보다 강인한 힘이 아니었다. 활활 타오르던 시절은 길지 않고 그 시절이 끝나면 익숙함으로 찾아와 가늘고 길게 변한다. 이것이 사랑임을 나는 느꼈다. 하지만 단순히 힘은 강했다. 21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점들이 사랑을 통해 변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고통 또한 찾아왔다.
나는 그녀가 밉고 아직도 알아주지 못하는 그녀가 원망스럽다. 이러면 나만 아프고 추잡하단 것은 알지만 고통스럽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아픔이다. 다들 원래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정말 많이 울었다. 하지만 막상 지금 당장은 우울하기만 하고 아프진 않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앞으로의 감정의 파도가 나를 덮칠지...
이것은 나의 스무 살과 스물한 살이었다. 나의 성인을 표현하면 행복과 속상함이다.
이미 지나간 스무 살은 돌아오지 않고 내가 느낀 그 첫 경험들은 과거라는 먼지를 쓰며 서서히 잊혀질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정감과 불안감이었다. 정말 계속 걷고 싶었다. 말이 없어도 좋았다. 나를 보는 그 눈이 좋았는데 알아주지 못했다. 다시 느끼고 싶은 따뜻함이다. 그리고 따뜻함에 익숙해진 추움이었다. 스물한 살이었다. 따뜻했었다. 사랑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