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북페어 인차이나 abC@항저우 2022
예술가나 디자이너들을 포함한 크리에이터나 문화기획자들과 교분을 쌓아왔지만 인상비평 이상을 말할 수 있는 심미안과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다. 생활문화나 생태주의에 초점을 두고 라이프스타일 만들기 차원에서 관심의 폭을 넓혀 왔을 뿐이다. 주제넘는 줄 알지만, ‘문화교류’라는 뜬구름 잡는 타이틀로, 중국 소식을 가끔씩 전하려고 한다. 우선 그 목표로 삼은 것이 아트북페어이다.
아트북페어와의 인연은 5~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협력관계가 있고 친분이 깊은 라이프 디자이너 '활'이 한국과 일본 소식을 전하며 중국의 아트북페어 시장에 대해서 문의했다. 그의 드로윙북 "요즘 산그리고 있습니다"의 서문을 중국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문자가 담긴 유일한 부분은 서문이었기 때문에,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 이렇게 4개국어로 된 서문과 그림으로 이뤄진 책이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이해에는 어려움이 없을 터였다. 크게 관심 두던 일이 아니라 당시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팬데믹 직전부터 예술과 과학을 주제로 독립잡지를 발행하기 시작한 마을의 친구들이 있었다. STEAM과 환경운동을 기반으로 한 아동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해오다가 자연스럽게 진화한 결과였다. 이들은 광저우의 청년예술가 그룹과도 지속적으로 교류를 나눴고, 이 네트워크는 아트북페어와 지역거점의 독립서점등을 매개로 중국 전역의 크리에이터/문화인들과 엮여 있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가끔 마을을 찾는 이들과 함께 어울리거나, 그들의 아지트를 방문하는 일도 있었고, 다른 도시에서 온 친구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깊이 있게 그들의 생활과 작품들을 들여다 볼 일은 없었다. 그런데, 기회가 찾아왔다. 성균관대학의 중국관련 저널 '차이나브리프'에 중국의 풀뿌리 민간 영역의 활동을 폭넓게 다루는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 시리즈의 첫번째 소재로 늘 눈여겨보던 예술가들과 청년 대안문화운동을 주제로 삼았다. 2021년 가을, 상하이에서 열린 북페어에 따라갔다. 이 네트워크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삼년의 팬데믹 봉쇄를 겪은 후에 ‘활동가’라는 모호한 타이틀을 떼고, 이제 확실히 ‘코디네이터’로서 IP, 콘텐츠일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활과 상의를 했는데 자연스러운 출발점은 다시 아트북페어였다. 언젠가 하늘길이 열리면, 한국 크리에이터들의 중국내 아트북페어 참가를 주선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 했다. 물론 중국 크리에이터의 한국 방문도 고려해 볼만하다. 우선 중국의 행사들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소개할 필요가 생겼다. 작년 가을의 상하이 아트북페어를 떠올렸는데, 올해는 봄에 있었던 상하이 락다운 여파때문에 항저우杭州로 장소가 바뀌었다.
abC(art book fair in China)는 2015년 베이징에서 조직되고 시작된 행사이다. 주로 예술가와 큐레이터들이 주축이 되고 있다. 7회째인 올해 행사는 ‘유목과 상상’이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주제에 대해서는 abC의 공식적인 설명을 그대로 옮겨보기로 한다.
"2022년 abC아트북 페어는 <유목과 상상>을 주제로 삼아 열린 지도속으로 과감히 모험을 떠나려는 당신을 초대한다. 우리의 사고유목민들이 찾아갈 초지에서 생태환경, 기후변화의 위기를 체감할 것이고, 자유로운 방식과 유연하고 유효한 행동을 통해, 중심주의와 국경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다.
아시아 초원에 살던 우리의 조상들은 자연의 법칙을 잘 이해하기에 평생 물과 풀이 있는 곳을 좇아 삶을 영위해왔다. 이동과정에서 늘 사람과, 동물, 자연 관계의 균형을 잃지 않았다. 모든 생산과 생활이 생태 시스템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문자그대로의 유목은 인류가 환경에 가장 소박한 생존수단으로 적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목은 근미래에 대한 예언일 수도 있다. 우리의 시대가 더 이상 매일매일 진보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발디딘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기 시작했다면, 유목은 이러한 쇠퇴에 대한 일종의 직시라는 시각을 제공하기도 한다. <노마드랜드 Nomad Land>라는 영화속에서 차량 한대를 집으로 삼아 떠도는 미국의 현대판 유목민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이미 자주적으로 미니멀하게, 환경에 가장 적은 영향을 주는 방식의 삶을 실행하고 있다. 이러한 ‘유목주의’의 가치관은 게임에도 나타난다. <사이버펑크2077>에서 ‘유목민’은 세 종류의 직업중 하나이다. 그들의 특징은 열렬히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고, 자본주의와 체제에 반대하며, 독립적 사상과 진지한 감정을 소유하는 것이다. IT기술의 발전에 따라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이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영토를 넘나드는 것은 여전히 제한적이지만 ‘온라인 거주’라는 방식이 전통적인 업무 방식을 바꿔나가고 있다.
예술계의 유목사상에 대한 이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유목을 철학속으로 끌어들였다. 우리의 시대에는 어떻게 이해돼야 할까? <천개의 고원>의 해설서에서 브라이언 마수미는 “현대의 유목민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에 초원을 다시 발명한다”라고 선언한다. 들뢰즈의 철학에서 “유목”은 사상적 모험과 다양한 각도의 생성을 지향하고, 스테레오 타입, 기정사실, 독재와 계급제의 장벽을 탈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목은 문서를 초월하는 실험이고, 다양한 주제와 분과학문들간의 교착이다. 임의로 위치와 순서를 바꿔 읽어 볼 수 있고, 다른 고원들을 넘나드는 연결이 번개처럼 이뤄진다. 유목을 통해서 들뢰즈가 말하는 ‘탈주선’을 찾고 유동하는 실천속에서 서로 다른 공존의 방식을 찾아 볼 수 있다. 세상의 미지와 혼돈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경계없이 뻗어 나아가게 하자.”
들뢰즈의 유목사상은 중국의 자본과 엘리트들도 포함된 글로벌리스트들에 의해 오용되었다. 중국 국가가 물리적, 사상적으로 유목민의 특성인 자유를 유난히 속박하고, 문자그대로, 유목의 땅 중앙아시아와 초원의 길로 연결되는 신장지역의 위구르 민중들을 탄압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청년예술가들이 '유목과 상상'을 외치는 현실은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자연조건에 맞는 소박한 삶을 선택하는 유목민의 지혜가 지금의 기후변화와 같은 재난상황에 대처하는 하나의 유효한 수단이라는 것만은 동의가 가능한 이야기이다.
이번 페어는 행사가 열린 건물 한동의 3층부터 8층까지 사용했는데 책판매구역은 5~7층까지 세개층을 사용한 50여개 팀의 매대가 들어섰고, 7층의 일부는 강연과 교류공간, 8층은 휴식과 전시회, 워크숍 공간, 3~4 두개층을 전시회와 해외서적 소개에 할애했다. 이 전시회중 유난히 식물과 가드닝, 자연을 소재로 한 전시가 많았는데, 주제의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농사와 재배 자체는 유목보다는 정주하는 농경사회와 더 밀접하다. “유목 vs 정주하는 농경사회”가 주제는 아니지만, 상상과 탈주, 자연과 같은 허공에 흩날리는 추상적 기표들로 모든 것을 퉁치지 않고 중국의 현실로 내재화한 깊은 해석이 아쉽다.
하지만 ’유목’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나중에 주최측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내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점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중국 그것도 상당수가 베이징과 상하이에 근거지를 둔 문화예술인들이 3년간의 ‘제로코비드 정책과 폭압적 봉쇄’로 지금 느끼고 있을 일종의 ‘클러스트러포비아’를 생각한다면 유목은 무슨 들뢰즈식의 거창한 해설이 필요 없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싶다는, 최소한의 생존권 쟁취를 위한 선언이다. 이런 속내를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으니 난해한 들뢰즈-가타리를 들먹이며 정부의 눈초리를 피하는 것 뿐이다.
눈길을 끌던 몇가지 전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링크1 전시에 관해 정리한 주최측 소개
https://mp.weixin.qq.com/s/PxKrOR-iRKxOhGqW_7BnAA
영국에서 공부한 (RCA) 두 청년 예술가가 전시한 <식물의 속삭임 植物低語 Plant whisper> 은 식물의 자연속 움직임과 소리를 디지털 형태로 표현한 비디오 작품이다. 항저우 현장에는 비디오 작품위주로 전시됐지만 베이징이나 징더전景德鎮에서 나무, 나뭇가지나 나뭇잎과 같은 자연물과 이들을 모방한 인공조형물을 함께 배치하고, 자연과 인공의 교감을 표현하기도 하고 이를 영상으로 편집하여 기록하기도 했다.
링크2 abC베이징 전시에 대한 <식물의 속삭임>팀의 Vogue 차이나지와의 인터뷰
https://mp.weixin.qq.com/s/9TlWpxuDGsX3pP6Z3LJe5Q
주최측 관계자가 안내한 한 비디오 전시는 자연과 유목의 상상이 기묘하게 결합된 <동물들의 향수動物鄉愁 When animals pass through the homeland of human>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광저우 변두리의 러밍촌樂明村이라는 한 외딴 산골마을에서의 체험이 기반이 됐는데, 이곳은 필자도 두어번 방문해 본 적이 있는 곳이다. 광저우 시내에서 출발하면 대중 교통으로는 반나절 이상 걸리는 거리에 위치한다. 가난하고 편벽한 농촌마을이기 때문에, 향촌건설 NGO들의 주목을 받아서 10여년 넘게 다양한 마을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곳이다. 농민들을 조직하여 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유기농 농산물을 재배한다거나 이를 가공한 식품들을 도시의 파머스 마켓에서 판매하기도 하고, 자연교육 단체가 도시민이나 마을 아이들을 위한 체험 워크숍을 개최하기도 한다. 이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작은 예술센터가 만들어진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 결과 이 작품이 탄생한 것 같다.
링크3 중국 주요매체인 펑파이 신문에 보도된 러밍촌 이야기
https://www.thepaper.cn/newsDetail_forward_2965025
이 마을에서는 객가客家주민들이 객가어와 광둥어 방언을 사용하는데, 작가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라는 의미를 갖는 광둥어 방언의 노래 두 구절을 외워서 마을에 사는 구관조에게 따라 부르게 했다. 여기서 구관조는 마을 주민인 동시에 늘 이곳에 머무는 손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나가는 과객過客인 작가와 이곳에 정주하지만 주인은 아닌 단골손님常客이자 애완동물 구관조가 뜻 모를 노래를 합창하면서 자신들의 처지를 복기하는 가운데 이들 각자의 아이덴티티와 언어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또 광둥지역 농촌에 광범위하게 서식하는 붉은 불개미 (독성이 강한 편이어서 한국에서도 최근 몇년간 문제가 되고 있다)의 기원이 지구반대편 아르헨티나라는 것에 착안해, 아르헨티나산 설탕으로 불개미 서식지에, 라틴가요의 제목 “나는 여기도 속하지 않고 저기도 속하지 않아요. No soy de aqui, Ni soy de alla”라는 글자를 뿌려 놓고, 개미들이 설탕을 옮겨 가는 것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자연을 대표하는 (애완)동물들과 외래종, 그리고 인간이 끊임없는 이동과 정착에 대해서 소통하는 것을 상상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유목과 상상’이라는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하는 전시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지역 마을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움도 있다. 이 마을은 다양한 향촌건설운동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군청지역으로 혹은 도심지역으로 떠나면서 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오랜 기간 마을에서 노력하던 청년들도 자녀 교육을 위해 거주지를 옮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마을을 오가고, 마을 사람들과 작당해 일을 도모한다.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어떻게 도시민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지, 도시민들이 어떻게 마을을 찾아 휴식하고 재생산을 도모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만일 영원한 정주민이라는 것이 없고 우리 모두 유동하는 유목민이라면, 이런 사례들을 통해 최소한 어떻게 이 흐름이 순환하는지 지역을 매개로 보여줄 수 없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지속가능한 유목은 영원한 방랑이라기보다는 순환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역사가이자 탐험가인 공원국 선생의 유목문명에 대한 저작들을 살펴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개인적인 불만은 이 지역 농장에서 붉은 불개미에 물려서 몇일간 고생한 경험때문에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 온 불개미를 낭만적 유목의 상상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나 자신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ㅎ
바로 옆에는 광저우의 아트잡지 Be Water Journal水象의 신간 (제3호)을 소개하는 전시 즈란얼란自然而然 Back to nature이 있다. Be water는 도덕경의 上善若水와 광둥지역 특유의 水문화를 표현하는 제목인데, 브루스 리 Bruce LEE의 인터뷰 비디오를 통해서도 많이 알려져 있고, 2014년과 2019년 홍콩 시위 당시, 시위대가 초기에 적극적으로 채택한 유연한 시위의 전략전술로 더욱 주목을 받기도 했다. 중국어, 즉 한자, ‘자연自然'은 영어 nature로 번역되지만 원래 인공人工과 차별되는 영어의 nature와 달리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즈란얼란이라는 말도 “상황이 흘러가는대로, 부작위”의 뜻을 가지고 있다. 원뜻을 살피자면 그래서 인간人間과 비인간非人間 자연, 인위와 자연이라는 이원론적 구분이 아니다. 의지의 여부와 무관한 상황의 흐름이라는 의미에서 중국적인 혹은 일원론적인 자연관이 드러난다.
이 잡지는 생태예술 실험, 자연설계 건축, 원주민 문화, 전통 중국의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자연세계의 변화와 원인을 정리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구성하겠다는 편집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서구근대의 눈으로 보자면 “인간이 생존의 필요를 넘어 신적인 경지에 도전하는 주체적이고 초월적 행위"로서의 예술의 인위성과 예술의 재료 혹은 예술의 표현대상인 생태로서의 nature는 이원론적 나뉜다. 하지만 일원론적 자연自然은 영어 nature art보다 자연예술이란 말로 스스로를 더 잘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신간에는 전 광메이(광저우미술학원 廣州美術學院) 교수이자 광둥지역의 저명 예술(평론)가 쉬탄徐坦 선생에 대한 글이 있는 것도 무척 반가왔다. 쉬탄선생은 사회식물학社會植物學이라는 주제로 오랜 기간 농사와 재배,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표현해왔다. 이번 글에선 슌더학順德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슌더는 광저우 인근의 포샨佛山시 슌더지역을 지시하는데, 이곳은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지금도 광저우와 주강삼각지역인 광푸廣府문화와 산업을 대표하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여기서 향촌문화와 지역민들의 일상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지역 출신의 유명 예술가들이 있는데, 나도 쉬탄선생의 안내로 이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링크4 BWJ의 신간소개에 대한 주최측의 더 자세한 설명
https://mp.weixin.qq.com/s/A6vbWLH9uD5g4LKEr1J7dA
지방체地方体는 방지方志소설 프로젝트 결과물의 일부를 전시하는 대표적인 탈중심화 지향의 전시이다. 지방지, 지리지 local gazetteer는 원래 전통시대 지역의 종합 매체와 역사기록물을 의미한다. 방지소설은 예술가들이 특정 지역, 마을과 동네에 일정기간 머물면서 지역을 관찰하여 공동으로 글을 쓰는 작업이다. 논픽션기록문학과 허구적 소설 문체를 결합한다. 향촌건설과 관련한 예술 프로젝트로 가장 잘 알려진 안휘성 비샨碧山마을에서 2017년부터 시작됐으며, 중국의 다양한 지역을 망라한다. 비샨 프로젝트는 큐레이터 줘징左靖이 2011년부터 농촌 마을에 거주하면서 주민들과 이 지역에 장단기로 거주하게 된 예술가, 문화인과 함께 다양한 문화기획 실천사업과 공간을 만들어 나간 사례이다. 그는 아직 소멸하지 않은 지역의 향토생활문화와 인문, 먹거리, 공예기술, 이 배경이 되는 자연환경을 발굴하여 널리 알렸고, 청년 예술가들이 이를 현대화된 상품과 서비스로 만드는 것을 지원했다. 이 프로젝트는 해외에도 알려졌으며, 상하이를 찾은 일본 D&D의 나가오카 겐메이씨가 비샨의 공예박물관과 함께 콜라보로 D&D전시장을 이곳에 오픈하기도 했다. 그는 구이저우나 윈난의 마을에서도 지역에 맞는 예술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를 확대해서 예술가와 작가들이 몇달간 마을과 동네에 거주하면서 이곳의 삶을 기록하거나 창작하도록 고무한 것이 방지소설 프로젝트이다.
링크5 주최측의 지방체 프로젝트 소개
https://mp.weixin.qq.com/s/SjS8CeBUz0HTm2BCOh44bQ
링크6 줘징의 작업을 소개한 중국 매체 펑파이의 인터뷰
https://www.thepaper.cn/newsDetail_forward_2006761?from=groupmessage&isappinstalled=0
7층에서 진행된 강연 및 교류회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광저우의 페미팀 뉘얼궈女兒國 Society의 발표를 들어봤다. 이들은 어머니와 딸의 화해를 주제로 한 책들을 주로 발간해 왔다. 딸이 어머니의 생애를 기록하는 구술문학의 형태를 갖거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책으로 편집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LGBT주제의 신간도 들고왔다.
이들은 베이징 행사에 비해 청중들의 호응이 적었다고 다소 실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발표를 주도한 줘쳰양左牽羊은 하이난海南성 출신으로 베이징의 양메이를 졸업하고 광저우로 내려와서 활동하고 있다. 부모님이 인근 도시인 둥관東莞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광저우 샤오저우小洲촌의 독립예술가 커뮤니티에 속하지만, 여기서도 남성 리더들이 공간의 지배권과 주도권을 갖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다가, 이번에는 조금 더 독립적인 위치를 스스로 찾기로 했다고 한다. 뉘얼궈는 한국 기준으로 보면 매우 공격적인 페미니스트들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남혐’의 입장을 취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공개 담론장에서 여성주의를 내세우는 것 자체가 힘든 중국에서는 이 정도도 조심스럽다. 아트북페어는 중국내에서 여성주의나 LGBT 시각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공전시 기획행사이다. 참가 매대중에도 적지 않은 팀들의 작품에서 이런 성향을 엿볼 수 있다.
95허우이하의 여성 문화예술인들중에서 동성연애자나 바이섹슈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성들과 교제하는 것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남성중에도 미소지니나 안티페미가 있지만, 한국과 달리 문화예술인이나 지식인 남성이 이런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한다. 관방이 규율하는 대중공론장은 가부장 성향이 매우 강하고 페미니즘 담론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는 한국과 같은 격렬한 젠더갈등은 노출되지 않는다. 하지만 억누른다고 또 억누를 수 없는 게 사람들의 감정인 모양이다.
8층의 휴식공간에서 눈에 띄는 것은 협찬사인 atour亚朵호텔그룹이다. 항저우에 본사가 있는 이 호텔은 중국내 신중산층 고객을 겨냥한 중고가 브랜드화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처음 개장 당시부터 IP, 굿즈와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호텔공간을 결합한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이 호텔 로비에 서가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재미있는 회원제 북클럽 죽거竹居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은 몰랐다. 투숙객이 책을 빌려 읽다가 끝내지 못했을 때, 책을 가지고 체크아웃할 수 있다. 다음 목적지 도시 혹은 자기 근거지로 귀환한 후에, 현지의 atour 호텔에 책을 반납하면 된다. 8층에는 전시뿐 아니라 호텔의 특성을 살려 자연스럽게 매트리스를 이용한 휴식공간을 꾸며 놨다.
이번 전시회의 공식소셜미디어는 샤오홍슈 小紅書이다. 이 app는 위챗 플랫폼에 올라와 있는 중국판 인스타그램이다. 현장의 행사 중계가 이 app을 사용해서 이뤄졌고 , 이 업체는 자체 라이프스타일 잡지와 굿즈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베이징에서는 예술및 라이프스타일 굿즈 전문 소셜미디어인 이탸오一條가 같은 역할을 맡았다. 샤오홍슈는 인스타그램과 유사하게 광범위한 대중을 겨냥한 매체이지만 이탸오는 예술품 옥션을 비롯해 고학력, 30대이상의 적절한 수입이 있는 여피들의 라이프스타일 시장을 겨냥한 전문 매체이다.
abC는 베이징에서 먼저 본행사를 개최한 후에, 상하이를 비롯한 남쪽 도시로 순회전시를 한다. 항저우는 남송 수도로서의 역사성과 상하이, 쑤저우蘇州와 함께 중국 강남江南의 문화를 대표하는 도시로 이름이 높다. 원래 부유한 저장성浙江省의 수도로서도 상징성이 있었지만 알리바바의 본사가 위치하게 된 후에는 상하이와 함께 강남도시의 2강구도를 형성하게 됐다. 항저우가 문화예술의 도시로도 비중이 높은 것은 베이징에 위치한 양메이(중앙미술학원中央美術學院)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Fine art school인 궈메이(중국미술학원中國美術學院)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의 참여자 상당수가 이 학교 출신 작가들이거나 재학생들이었다.
쑤저우와 항저우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중국의 부유하고 기품있는 강남문화를 대표한다. 강남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곳이 상하이이기는 하지만, 상하이는 역사가 짧고 중국 대륙내에서 가장 크게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는 곳이다. 홍콩정도는 아니지만 조계지역이 많았기 때문에 문화적 식민성과 과도한 상업성이 두드러진다. 쑤저우는 상하이에서 지나치게 가까운 탓에 상하이의 뒤뜰로 여겨지기도 하는 반면, 항저우는 독립적인 문화권, 경제권이기 때문에, 결국 중국 강남문화의 일번지는 항저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저우는 중국의 오래된 무역항 닝보寧波가 인접해 있기 때문에 개방성과 전통이 비교적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루쉰의 고향인 샤오싱紹興도(소흥주로 알려지기도 한) 이 지역에 속하는데 그래서 루쉰은 죽을 때까지 상하이에 대해 애증을 품고 살았던 것 같다. 그의 생전에 항저우가 지금처럼 발전했다면 그는 상하이대신 항저우에 거주했을지도 모른다.
또 항저우는 남송의 수도가 됐던 무렵부터 북쪽에서의 이주민이 많아, 강남을 대표하는 동시에 적절한 북방 문화요소도 품고 있다. 저장성은 광둥성과 함께 중국 제조업, 그중에서도 경공업을 대표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디자인 산업이 발전할 수 밖에 없다. 최근 한국산 소비재들이 중국에서 시장 지위를 급격히 상실하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중국 패션 브랜드들중에 대표선수들이 항저우에 기반을 두고 있기도 하다. 원래 강남지역은 중국내에서도 잠사와 실크산업이 가장 발전했던 곳이기 때문에, 의류산업의 역사성도 적지 않다.
이번 행사가 열린 항저우의 톈무리天目里 단지는 17동의 건물로 이뤄져 있는데 자체 미술관과 예술센터를 비롯해 라이프 스타일과 디자인관련 업체들의 안테나 숍이 다수 입주해 있다. 이를테면 항저우를 대표하는 의류업체 강남포의JNBY江南布衣가 있고, 일본 TSUTAYA의 중국 1호점도 이곳에 위치한다. 이곳은 주말마다 다양한 주제의 마켓이 열리는 도시형 문화 명소이다. 스타벅스보다 더 하이엔드를 지향하는 커피전문점 (중국의 블루보틀?) 시소seesaw 브랜드와 널찍한 홀을 가진 로스터리 커피샵도 눈에 띄고, 아티잔 베이커리, 특색있는 바와 레스토랑도 주말을 즐기는 항저우 시민들로 붐볐다.
(사진위주의 다음편으로 글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