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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니뿌니 Jan 24. 2023

팔자일까? 2

팔자좀 고쳐볼까?

천인(天刃) 때문이었을까?   


살면서 그 많던 사건 사고 중 마지막 치킨집 배달 오토바이 사고는 꽤 커서 초기에 병문안을 와서 흉한 몰골을 봤던 분들 중에는 이만큼 회복된 것이 기적이라고, 진짜 초상 치르는 줄 알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고 후 일주일은 깨어나지를 못해서 기억이 없는데, 그 당시 머리에 붕대를 잔뜩 감아서 붕대 사이로 불거져 나온 퉁퉁 부은 얼굴 사진을 보면 너무 끔찍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고의 순간 바로 기절해서 당시의 아픈 기억은 없다는 거 그거 하나다. 수술을 몇 번이나 했던가.... S병원에 있는 내 진료기록은 CD만 10장이 넘는다. 정형외과, 비뇨기과, 치과, 뇌신경과 심지어는 소아청소년과까지 치료기록으로만 보면 나는 S병원의 VVIP다.


사고 기간의 병가 휴직을 끝내고 학교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스트레스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뼈는 붙어서 걸을 수는 있는데 무릎이 구부려지지 않아 연구실이 있는 3층에서 성한 다리로 계단을 한 칸씩 내려가고 올라가야 해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쇄골에는 아직 보형물이 그대로 있어서 오이 하나 써는데도 중간에 쉬어야 할 만큼 팔에 힘이 없었고, 직업상 마우스와 키보드 앞에서 항상 작업을 해야 하는데 마우스를 잡을 만큼 책상 위로 팔이 올라가지를 않고 힘이 없어서 무릎 위에 두꺼운 책을 놓고 마우스패드 삼아 일을 하곤 했다. 대상포진이 얼굴로 와서 눈 주위에 수포가 난무해서 그걸 가리느라 파운데이션을 더덕더덕 발라야 했고, 얼굴을 가리기 위해 돋보기안경을 평소에도 쓰고 살아서 계단을 내려갈 때는 습관이 되질 않아 어질어질했다. 지금처럼 코로나라도 있었으면 마스크라도 썼을 텐데 그때는 왜 그런 생각은 또 못했었는지.....

점, 점, 점

하도 많이 다쳐서, 아무리 천인(天刃)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몸에 칼 대는 게 내 팔자라면 난 그걸 좀 바꿔보고 싶었다. 그래, 관상을 바꾸자. 어느샌가 눈썹 밑에 자리잡았던 점을 제거하면 관상도 달라지고 팔자도 달라질꺼라는 믿음이 솟았다. 당시 걸음도 시원치 않았던 나는 절뚝거리며 집 앞 상가에 있는 피부과로 무조건 쳐들어갔다. 아무에게도 알리고 않고. 여차저차 하여 눈 옆에 있는 점을 빼러 왔다고 하니 병원 코디네이터가 내 얼굴을 자세히 보고는 하는 말이,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일단 잡티를 제거해야 하는데 좀 많아서 견적이 좀 나올 것 같다며 우리 원장님이 기술이 좋아서 이런 거는 말끔히 어쩌고 저쩌고........ 점 빼는 것보다는 잡티를 제거해서 피부를 말갛게 보이도록 하는 게 아마 좀 더 돈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팔자 좀 고쳐보려고 점 빼러 왔다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인다.  


이 피부과는 치료보다는 미용이 우선인가? 결국에는 일단 큰 거 점도 빼고 잡티 정리는 약간만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오늘 당장 점을 빼자고 한다. 오늘 스케줄이 널널한가? 아직 다리도 잘 안 구부려지고 어깨도 아파서 평평한 곳에 잘 누울 수도 없는데...... 어쩌나 하다가 내 팔자가 바뀌는 일이라면 이 정도는 참아야지 생각하며 드러눕는다. 얼굴에 약한 마취크림을 바르고 '딩' 하는 기계 소리와 함께 의사의 큰 손이 얼굴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인다. 돼지고기 타는 냄새가 난다.  확실히 나의 점은, 나의 잡티는 단백질이었나 보다.


그렇게 흉하게 눈 옆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던 나의 점은 희미하게 자취를 감췄다. 더불어 나는 잘 모르겠지만 잡티도 좀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랬다 '아파서 쉬는 동안 잘 먹고 놀더니 얼굴이 뽀얘졌네.' 나는 잘 먹고 놀지도 못했으려니와, 오로지 팔자 좀 고쳐보겠다고 갔다가 점 하나 빼는 건 피부과 메뉴판에 없어서 가장 싼 잡티제거 메뉴에 점 하나 빼는 거 얹혀서 시술했다고 말하려다가, 사고 회복 중에 미용 시술했다는 오해가 두려워 '그냥 점만 뺐어' 한다. '워낙 스테로이드 처방 많이 받고 항생제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라고 둘러댄다. 나이 40 전에 암 수술을 하고 내 인생의 천인(天刃)은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50 넘어서 더 큰 사고를 당하고 나니 그 옛날 사주가 맞았던가 생각한다. 세 들었던 할아버지에게 집주인이랍시고 싼 값에 봤던 그 사주팔자가 맞았던가......어쨌든 나의 팔자는 이제 나의 의지로 경로 수정을 하였으니 좋은 일만 있으렸다..... 


물론 자금은 저 앞 건널목에서 초록 신호등으로 바뀌면 전력질주까지는 아니어도 살살 뛰어갈 정도로는 회복해서 바스러졌던 내 오른쪽 정강이뼈에 감사하고 살고 있다. 더불어 착한 내 쇄골, 갈비뼈, 턱뼈에게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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