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좀 고쳐볼까?
천인(天刃) 때문이었을까?
살면서 그 많던 사건 사고 중 마지막 치킨집 배달 오토바이 사고는 꽤 커서 초기에 병문안을 와서 흉한 몰골을 봤던 분들 중에는 이만큼 회복된 것이 기적이라고, 진짜 초상 치르는 줄 알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고 후 일주일은 깨어나지를 못해서 기억이 없는데, 그 당시 머리에 붕대를 잔뜩 감아서 붕대 사이로 불거져 나온 퉁퉁 부은 얼굴 사진을 보면 너무 끔찍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고의 순간 바로 기절해서 당시의 아픈 기억은 없다는 거 그거 하나다. 수술을 몇 번이나 했던가.... S병원에 있는 내 진료기록은 CD만 10장이 넘는다. 정형외과, 비뇨기과, 치과, 뇌신경과 심지어는 소아청소년과까지 치료기록으로만 보면 나는 S병원의 VVIP다.
하도 많이 다쳐서, 아무리 천인(天刃)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몸에 칼 대는 게 내 팔자라면 난 그걸 좀 바꿔보고 싶었다. 그래, 관상을 바꾸자. 어느샌가 눈썹 밑에 자리잡았던 점을 제거하면 관상도 달라지고 팔자도 달라질꺼라는 믿음이 솟았다. 당시 걸음도 시원치 않았던 나는 절뚝거리며 집 앞 상가에 있는 피부과로 무조건 쳐들어갔다. 아무에게도 알리고 않고. 여차저차 하여 눈 옆에 있는 점을 빼러 왔다고 하니 병원 코디네이터가 내 얼굴을 자세히 보고는 하는 말이,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일단 잡티를 제거해야 하는데 좀 많아서 견적이 좀 나올 것 같다며 우리 원장님이 기술이 좋아서 이런 거는 말끔히 어쩌고 저쩌고........ 점 빼는 것보다는 잡티를 제거해서 피부를 말갛게 보이도록 하는 게 아마 좀 더 돈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팔자 좀 고쳐보려고 점 빼러 왔다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인다.
이 피부과는 치료보다는 미용이 우선인가? 결국에는 일단 큰 거 점도 빼고 잡티 정리는 약간만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오늘 당장 점을 빼자고 한다. 오늘 스케줄이 널널한가? 아직 다리도 잘 안 구부려지고 어깨도 아파서 평평한 곳에 잘 누울 수도 없는데...... 어쩌나 하다가 내 팔자가 바뀌는 일이라면 이 정도는 참아야지 생각하며 드러눕는다. 얼굴에 약한 마취크림을 바르고 '딩' 하는 기계 소리와 함께 의사의 큰 손이 얼굴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인다. 돼지고기 타는 냄새가 난다. 확실히 나의 점은, 나의 잡티는 단백질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