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이라는 존재의 이유
“요즘 뭐 하고 살아?” 참 난감한 질문이다. 난감한 질문임에도 참 많이 하고 받는 질문이다.
지난번에 비해 딱히 달라진 게 없는데 달라진 게 없으니 답할 말도 없는데 말이다.
“응… 그냥 똑같지 뭐.. 별거 없어”라고 답할 때가 많을 것이다.
가끔은 “글쎄.. 내가 뭐 하고 살지?”라고 자문하며 답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응.. 요즘 이런 거 해”라고 답할 수 있으면 꽤나 뿌듯하지 않을까?
그런데 가끔 ‘정말 똑같을까?’ ‘정말 별 걸 안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오랜 말의 습관처럼 별게 없다고 답하는 것은 아닐까?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내가 정말 하는 게 똑같을까? 똑같다면 왜 그런 걸까? 한번 본인을 향해 다정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때론 무리가 가더라도 조금은 억지스럽더라도 “나는 … 을 하고 있어”라고 답한다면 별다를 게 없다는 답보다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지 않을까?
실은 누군가가 “ 요즘 필라테스 하고 있어” “ 요즘 책 쓰고 있어” “요즘 반려식물 키우는 재미로 살아”
같은 말을 들으면 살짝 질투와 열등감을 느끼곤 하지만, 느끼기만 하면 무슨 소용인가. 거리를 만들어야지.
이런 답 중에 하나가 “ 응… 뭐뭐… 준비하고 있어”다. 광고를 오래 하다 보니 경쟁피티라는 것을 많이 한다.
몇 개 회사가 광고를 수주하기 위해 전략을 짜고 크리에이티브를 준비해서 한 날 프레젠테이션으로 수주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개인적으로 “경쟁피티 준비하고 있지”와 경쟁피티 있어서 아이디어 열심히 내고 있지”는 다르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처럼 말하는 것이 좋다.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
나는 하고 있다’는 ‘나는 살아 있다’와 같은 말이다. 살아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하는 것이지만, 무언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할수록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 응 그냥 있어” 보다는 “TV 보고 있지”가 좀 더 구체적이다.
“TV 보고 있지” 보다 “넷플릭스 보고 있지”가 “넷플릭스에서 ….. 보고 있지”가 보다 구체적이다.
‘구체적 언어’는 ‘행동적 언어’다. 언어만으로도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언어습관을 TMI(Too Much Information)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러 번 이야기할 것을 한 마디로 한다는 점에서는 더 효율적인 것은 아닌가.
“나는 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습관을 가져 보자. “그냥 밖이야” 보다 “쇼핑하러 어느 백화점에 나와 돌아다니고 있어”라고 말해 보자.
말의 습관이 나를 ‘하는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남의 눈치를 보고 스스로 부끄러워서 하고 있지만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니 주제에 그걸 한다고?”라는 적나라한 지적도 싫고 “아.. 그래…”라는 미심쩍은 반응도 두려워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말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말하지 않으면 발표하지 않으면 지금 하고 있는 그것을 쉽게 중도에 포기할 수 있다.
“응.. 요즘 책 쓰고 있어”라고 말했다면, 아니 말해 버렸다면 나는 좀 더 될 때까지 글쓰기를 잡고 있지 않을까?
“응 요즘 주짓수 하고 있어”라고 말했다면 적어도 벨트의 색깔이 한두 번 바뀔 때까지는 계속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은 아무것도 안 한다고 느낄 때 ‘존재의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의 존재가 무의미하지는 않은가? 그래서 스스로를 ‘있는 인간’에서 ‘하는 인간’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나는 인생 동안 그냥 있는 있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고 하는 것이다.
1년 동안, 하루 동안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시간에 나는 하고 있는 것이다. 나란 존재는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