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내로남불’

나는 안 그럴 거 같지만

by 강찬욱


동반자 중에 알아주는 ‘슬로 플레이어’가 있었다. 슬로 플레이어는 늘 같이 동반하기 싫은 동반자 랭킹의 상위에 오르는 요주의 골퍼다. 어느 날 문득 ‘슬로 플레이를 고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슬로 플레이어, 그놈 보다 더 느린 놈을 붙여주는 것이다’라는 골프장 화장실에서 본 문구가 생각났다. 결국 또 한 명의 슬로플레이어가 초빙되었고 두 명의 슬로플레이어의 라운드가 성사되었다. 내 인생의 모든 라운드를 통틀어서 가장 긴 5시간이었다. 그런데 참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두 슬로플레이어 중 하나가 플레이할 때마다 다른 한 명이 나에게 “저 친구는 느려도 너무 느린데… 좀 심하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슬로플레이어가 다른 슬로플레이어를 비난하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아마도 ‘저런 느린 플레이어에 비하면 나는 괜찮네’라고 생각하며 라운드를 마쳤을지도 모르겠다. 슬로플레이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줘서 개선시키려는 나의 작전은 보란 듯이 너무 쉽게 실패했다. 두 명 다 본인의 늑장플레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스로 플레이 시간을 위로하며 라운드를 마쳤기 때문이다.

한 때, 아니 지금도 정치권에서는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마구 쓰이고 있다. 상대 당, 반대 진영을 비판하고 공격하면서 늘 하는 말이 ‘만약 이런 일이 우리 당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했겠는가 “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제는 고유명사처럼 돼버린 이 오래된 조어는 골프 코스에서도 유효하다. 골프를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단 한 명의 골퍼도 스스로를 ’ 무매너 골퍼‘ ’ 무개념 골퍼‘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주로 지난 라운드에서 만난 어느 매너 없는 골퍼에 대한 일종의 험담만 무성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 어떤 골퍼도 자신의 매너와 에티켓에 대해 가혹한 잣대로 비판하지 않는다. 골프의 좌우명 중 하나가 ‘본인에겐 엄격하게 타인에겐 관대하게’다. 이 격언을 뒤집어서 ‘본인에겐 관대하게 타인에겐 엄격하게’ 실천하는 것이 바로 ‘골프 내로남불’이다

첫 홀 ’ 일파만파‘나 ’ 올파‘를 적는 것은 진짜 스코어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해 놓고 캐디에게 “ 첫 홀 스코어는 파(par)로 인쇄되어 나오는 거잖아요”라고 말하는 골퍼도 봤다. 분명 골프의 본질이자 골프룰의 가장 기본적인 근간이 되는 ’ 볼은 있는 그대로 플레이하라(Ball played as it lies)’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해 놓고 볼을 툭툭 건드려 라이를 개선하는 골퍼도 봤다.

‘골프 내로남불’의 끝판왕은 ‘멀리건’이다. “하나 더 칠게”라는 애매한 말로 스스로에게 무한대의 멀리건을 부여하는 골퍼가 있다. 그에게 물어보면 본인이 몇 개의 멀리건을 썼는지도 기억 못 할 것이다. 물론 고수가 샷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하수에게 멀리건을 줄 수 있지만, 스멀이라고 불리는 ‘스스로 멀리건’을 시도 때도 없이 남발하는 골퍼가 다른 동반자에게 관대하게 ‘멀리건’을 주는 경우는 많이 못 봤다.

골프는 ‘약속’이다. 룰도 약속이지만, 언제 라운드를 할지를 서로 합의하고 정하는 ‘시간 약속’이다. 티타임도 시간약속이고 라운드 전의 식사약속도 시간약속이다. 이 시간 약속도 늘 늦는 사람이 늦는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늦는 사람은 못 기다리는 사람이다. 본인의 늦으면서 다른 사람이 늦는 것을 참기 힘든 사람이다. 이 역시 ‘내로남불’이다

골프는 앞으로 나가면서 플레이하는 운동이다. 티샷을 하고 페어웨이를 향하고 파 4라면 세컨드샷을 하고 그린을 향한다.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앞 팀이 밀리면 가끔 뒤를 돌아 지나온 풍경을 보면 내가 티샷 한 티잉구역이 보이고 내가 세컨드샷을 한 어느 잔디 위가 보인다. 그 여정을 돌아보듯 가끔 나를 돌아보자. 남을 얘기하기 전에 ‘나’를 이야기해보자. ‘나는 어떤 골퍼인가’ ‘나는 다시 치고 싶은 동반자인가’ 이 글을 쓰면서 골프 코스 안에서 한없이 부끄러웠던 ‘나’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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