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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율로 Dec 16. 2021

현실 가족

입양은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가족으로 사는 것

"엄마, 나 나중에 커서 설리랑 결혼할 거예요."

"뭐?" 

셋째가 굳은 결심을 말하듯 큰소리로 내게 이야기했다.

"가족끼리는 결혼하지 않아.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기도 하고..."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차분히 이야기하였지만 셋째는 막무가내다.

"흐어엉! 나 설리랑 결혼하고 싶은데!"

셋째는 울음을 터뜨렸고 옆에 있던 설리도 곧 울 것 같은 표정이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러다 우리 가족 뉴스에 대서특필 되는 거 아니야?

외국 뉴스에서 이런 비슷한 기사를 본 것도 같은데... 크면 저러지 않겠지 싶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1년도 더 전의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가족이 된 날 수가 더해갈수록  곧 핑크빛 환상이 깨어질 거 같다는 생각이 점점 더 확실해졌다. 왜? 이제 우리는 현실 가족이니까.


역시나 내 예상은 적중했다.

서로 애틋하게 챙겨주고, 놀아주고, 둘도 없는 남매처럼 지내던 아이들은 시간이 흐르며 현실 남매로 돌아왔다. 


"엄마, 엄마 설리 잘못 데려온 거 같아요. 설리가 자꾸 나 때리고 내 물건 숨겨요."

"흥! 나도 이런 집에 왜 왔나 몰라."

둘이 도끼눈을 하고 서로를 노려본다.

'아니, 너 아무리 동생이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말하니? 설리 너도 우리 집이지 이런 집이 뭐야?'

마음속으로 혼내며 두 아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어이구. 이 녀석들. 아이들이 선택한 단어들에 마음이 조금 무겁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 지 한 시간도 안되어 둘은 장난감을 가지고 하하호호 웃으며 신나게 논다. 


설리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설리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장 열심히 도왔던 첫째는 현재 설리와 가장 많이 부딪힌다. 둘 다 꼼꼼하고 완벽한 성격이기도 하고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름 서로가 힘든 이유가 있었다. 설리는 오빠의 잔소리가 너무 듣기 싫다고 하고(보통 '놀던 거 정리하고 놀아, 바르게 앉아서 밥 먹어, 화장실 갔다가 왜 손 안 씻어' 이런 기본생활습관에 대한 잔소리들이다 ) 첫째는 설리가 엄마 앞에선  말을 잘 들으면서 자기랑 있을 때는 마음대로 하고 말도 안 듣고 '오빠나 잘해' 이런 말로 열 받게 한다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한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이제야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는 듯한데, 우리 아이들은 모두들 제 나름대로의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나는 기존의 세 아들들이 설리가 처음 왔을 때 너무 잘 챙겨주고 사랑해주어서 그 모습 그대로 쭉 이어질 줄 알았다. 그래서 아이들의 변화가 낯설었고, 동생에게 못되게 굴거나 싸우면 몹시 혼을 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 마음속에  '너희들도 갑자기 생긴 동생이 낯설구나. 사랑을 나누어야 하고, 엄마 품을 나누어야 하고, 양보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엄마가 너희들의 힘듦을 헤아리지 못했구나.' 하는 깨닫는 마음이 생겼다. 나의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들의 힘듦이 보였던 것이다.  


설리도 이제는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라는 말을 곧잘 하고 매일같이 엄마 아빠에게 러브레터를 쓰는 사랑스러운 딸이 되었지만 부모를 온전히 신뢰하는 부분이나 자신이 받는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것, 사랑을 비교하지 않는 것, 자신을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로 바라보는 부분에서는 여전히 많은 연습과 자신과의 싸움이 필요함을 보게 된다. 


캐서린 헤이글은 우리나라에도 꽤 알려진 할리우드 여배우이다. 그녀의 언니는 한국인으로 캐서린이 매우 어릴 때 입양되었다고 한다. 캐서린과 언니는 어려서부터 우애가 깊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서로 의지하고 잘 챙겨주는 돈독한 사이라고 한다. 캐서린은 방송에서 언니에 대한 사랑과 애틋한 마음을 여러 번 표현하기도 하였다. 후에 그녀는 심장병이 있는 한국 국적의 아기를 입양하고 둘째도 자신과는 다른 피부색을 가진 아이를 입양하여 기르고 있으며 가수인 그녀의 남편은 첫째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곡을 직접 작곡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출처- 

캐서린 헤이글의 삶이 참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자신이 어릴 적 경험한 삶이 그녀를 이렇게 살도록 이끈 것일까?  입양된 언니도, 캐서린도, 그들의 부모님도 한 때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시기를 정말 잘 보내었나 보다. 어떤 이들에게는 입양이 아픔이고 상처인데 캐서린과 그녀의 언니, 그녀의 남편, 그리고 그녀의 입양된 딸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우리 아이들도 이 힘든 시기를 잘 보내고 나서 서로를 보며 너를 정말 사랑했다고, 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서 정말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더 품이 깊고 넉넉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준다면 소원이 없겠다.


언젠가 이 글을 읽을 아이들에게 짧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아, 너희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하겠지. 진짜 오빠 동생으로, 가족으로 사랑하고, 인정하고, 거듭나는 시간들이... 그 시간들이 지나면 너희들은 부쩍 자랄 거야. 그리고 책에서, TV에서, 그 어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진짜 '사랑'을 배우게 되겠지. 우리 그때까지 함께 힘내서 가자. 서로 지치고 힘들겠지만, 또 때로는 눈물짓기도 하겠지만, 다시 힘내고 서로 일으켜주며 가자. 그리고... 엄마의 사랑과 인내가 너무 작고 부족해서 미안해. 엄마도 엄마의 삶 속에서 사랑과 인내와 따뜻한 말과, 가슴을 열고 너희들을 품는 연습을 계속할게. 너희들의 기억에 따뜻한 엄마로, 포근한 고향 같은 엄마로 남을 수 있다면 엄마는 너무 행복할 거야. 늘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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