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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율로 Dec 05. 2021

민트색 신발

꿈꾸는 것 같았던 딸아이와의 만남

2018년 어느 봄날 꿈을 꾸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집을 방문하였는데 우리 집 식탁 위에 민트색 아기 신발을 놓고 환하게 웃으시는 꿈이었다. 너무 생생하고 독특한 꿈이었다. 친정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아빠는 대통령이 나오는 좋은 꿈을 꾸고는 복권을 사지 않았다고 성화셨고 남편과 나는 ‘우리 주변 친한 친구나 친척의 태몽인가 보다’ 하며 넘겼다. 그로부터 5개월 뒤, 나는 보육원에서 민트색 위아래 옷을 입은 내 딸 설리와 만났다.


독특한 꿈을 꾼 그해 여름, 나는 첫째 아들과 성경을 읽다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예수님의 큰 사랑을 받은 사람인데 나도 내가 받은 사랑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몇 날 며칠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사랑. 내가 받은 사랑을 평생 실천하면서 사는 삶... 

그 삶은 바로 ‘입양’이었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어느 날 남편이 내게 말했다.


 “우리, 결혼하면 한 명 정도는 입양할래?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네 오빠!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네 오빠!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철없던 나는 입양이 뭔지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이 무엇인지 일프로도 알지 못한 채 해맑게 대답했다. 남편과 나는 7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고 3명의 아들을 낳았다. 두 아들을 낳았을 때 문득 그때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이 기억났고, 두 아들을 낳고 셋째는 딸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싶은 마음에(셋이면 딱 좋을 것 같다는 계산적인 마음도 있었다) 홀트에 입양 상담을 갔다. 입양 절차를 진행하던 중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셋째를 임신한 것이다. 입양 상담 및 절차는 급히 마무리되었고 다음 해 나는 셋째를 낳았다. 


아들 셋을 키우며 입양에 대한 마음은 깨끗이 사라졌다. 26개월, 16개월 차이가 나는 아들 셋을 양가 도움 없이 키우다 보니 너무나 피곤하고 정신이 없었다. 매일의 삶이 전쟁 같았다. 세 아들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엽고, 말도 잘 들었다. 아이들 때문에 나는 너무 행복했지만 셋 이상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 같았다. 내 주변에는 넷 이상의 아이들을 기르는 메가 다둥이(?) 가정들이 있었지만 나는 도저히 무리였다. 집에 갚아야 할 빚도 많았고, 오래 쉬었던 직장에 다시 복직해야 했다. 


계획대로 나는 복직했고 어린 세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으로 정신없이 삶을 살아 내었다. 그 시절 나는 33% 인생 같았다. 아내로서도 33%, 엄마로서도 33%, 직장에서도 33% 정도밖에 안 되는... 차가운 시리얼을 일회용 비닐봉지에 넣어 아이들에게 던져주고 잠에서 덜 깬 아이들 등짝을 후려치며 차에 태워 아직 열지 않은 어린이집 문 앞에서 동동거리던 나날들. 이야기를 꺼내면 금방 눈에 눈물이 고이는, 워킹맘이라면 누군나 공감하는 그때 그 시절 힘겨웠던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 당시 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세 아이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이 자라나 이 귀염둥이 시절이 지나가버리는 것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육아와 직장생활로 바쁘고 피곤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나는 시간을 내어 바쁜 남편을 두고 아이들만 데리고 강원도, 전라도 등으로 며칠씩 장거리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보아 온 지인들이 아들 셋을 씩씩하게 잘 키우는 것처럼 보였는지  종종 '한 명 더 낳는 것이 어때?' 하며 말하기도 했다.  난 그 사람들이 얄미웠다. 자기들은 하나, 둘 밖에 안 낳았으면서... ‘내가 어떻게 사는지 알면 저런 말은 못 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손사래를 쳤었다. 아이들이 예쁜 것과 한 명을 더 낳아 키우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이랬던 내 마음에 균열이 생겼다. 


입양이 내가 완수해야 할 내 인생의 사명같이 느껴졌다. 이것이 내 삶의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리고 남편은 넷째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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