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손님입니다.

퓨전

by 깨진돌

"거기, 거기"

"아니, 조금 더 아래"

"왜 이렇게 못 맞춰? 천천히 해 봐."

"으으으. 더 이상 못 버텨."


남자는 이제 힘이 빠졌는지 손을 바들바들 떨어가며 누워버렸다. 그깟 액자 하나 들기 힘든 남자가 어떻게 가게를 운영할까 걱정이었지만 마르지 않은 핑크색 벽지만 봐도 설레었다.


손님이었던 두 남녀가 이제는 주인이 되었다. 각자의 집에서 빼온 영업 기밀은 그들의 노하우이자 고집스러운 철학이었다. 손님으로 대접받던 시절을 잊지 못해 주인이 되었는데도 배짱 장사를 하다 망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간판이 달려 있는 거 보니 어찌어찌 운영은 되는가 보다.


한식과 양식을 좋아하던 남녀, 고추장과 크림이 만나 로제가 되듯 이십여 년의 세월은 그들을 융합시켰다. 그래서인지 그 집의 메뉴는 정통성은 사라지고 개성이 넘쳤다. 가끔 고집스러운 고객들이 불만을 제기했지만 그렇다고 사장을 바꾸랴, 메뉴를 바꾸랴. 우리에게도 고집과 철학이 생겼다.


손님들이 섭섭해도 어쩔 수 없다.


장사가 바쁜 며느리는 오늘도 전화 한 통 할 시간이 없다. 실은 전통을 이어가라는 고집에 장단을 맞추기가 싫은 것이다. 한숨을 세 번 쉬며 번호를 누르다 다시 지워버린다.


"이제는 못 바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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