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아침은 분주하다

by 깨진돌

안녕? 내 소개를 할게.


내 나이는 여덟 하고도 하나, 꼬마에서 숙녀로 넘어가는 중이지.


요즘 나는 얼마 전에 본 '챠밍걸 다이어리'에 푹 빠져 있어. 챠밍이 뭐냐고? 매력적인 숙녀는 '예쁘고 귀여운'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거든. 그게 바로 챠밍이야!


챠밍걸이 되는 건 노력이 조금 필요해.


잠에서 깨어나면 연한 핑크색 원피스 잠옷이 구겨지지 않게 조심히 일어나 바로 거울 앞으로 가는 거야. 이는 딱 열 개만 보이게 웃으며 윙크 연습을 하고 주문을 외우면 돼. 날 따라 해 봐.


나는 챠밍걸, 나는 챠밍걸, 나는 챠밍걸!


어젯밤에 골라 둔 캐릭터 반팔티가 오늘 보니 좀 유치한 거 같아. (어제 미경이가 비슷한 걸 입고 있었던 건 비밀이야!) 오늘은 얼마 전에 삼촌이 사 준 청원피스를 입는 게 좋을 거 같아. 놀이터에서 숙녀들의 모임이 열릴 예정이니 신경 좀 써야겠지? 우리 삼촌이 사준 아이템들은 늘 친구들이 부러워하거든!(특히, 이미경!)


우리 삼촌? 궁금해?


삼촌은 나에게만 등을 허락하는 남자 어른이야. 명절마다 삼촌 등에 업히는 건 맨날 울어대는 한 살짜리 승훈이도, 막 유치원에 입학한 지은이도 아니야. 요즘 살짝 무거워지긴 했지만 삼촌은 바비 남자친구처럼 힘이 세니까 괜찮아! 삼촌은 켄, 나는 바비.


나는 어른이 되면 삼촌과 결혼할 거야.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전에 엄마한테만 얘기해 줬는데 귀엽다고 날 꼬마취급 하더라고.


"여보, 어서 오세요."


숙녀들의 모임은 언제나 소꿉놀이로 시작해. 오늘은 내가 엄마 역할을 맡았어. 수진이는 오늘도 남편 역할이야. 내가 좀 더 이쁘니까 주인공을 하는 건 당연하겠지?


그런데 저기 서 있는 사람, 우리 삼촌 아니야? 진짜 신사처럼 멋진 양복을 입고 막대사탕 꽃다발을 품에 안은 저 남자 어른 말이야. 켄처럼 잘생기고 멋있는 거 보니 우리 삼촌이 분명해!


갑자기 양 볼이 따뜻해져. 무슨 일이지?

'프러포즈라도 하는 거 같잖아.'


삼촌이 드디어 나를 발견했나 봐. 이 쪽으로 오고 있어.


"선화야! 잘 있었어? 학교 가더니 연락도 잘 안 하고."


"나 요새 엄청 바빠. 얼른 커서 숙녀 될 거야."


"하하, 정말 바쁘겠네. 그래도 삼촌이 사 온 선물 받아줄 거지?"


몇 밤만 더 자면 열 살이 되는 숙녀라는 걸 삼촌은 자꾸 깜박하나 봐. 열 살이 넘으면 혼례 치를 준비를 하는 거라고 동화책에도 역사책에도 나오는데, 우리 삼촌이 하늘대학을 못 나와서 그런 건지. 아홉 살 숙녀에게 막대 사탕 꽃다발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모르나 봐.


"집에 가자. 삼촌이 선화한테 부탁할 게 있어."


삼촌은 익숙한 1203호 철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나를 등에서 내려놓지 않았어. 친구들이 볼까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삼촌 등은 넓어서 아무도 못 봤을 거야.


따뜻해.


"같이 들어왔네? 우리 공주 어서 손 씻어"


공주에게 말을 높이지 않아도 용서가 되는 어른들이 우리 집 거실에 모두 모였어. 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사과를 토끼 모양으로 깎아놓은 걸 보니 무슨 중요한 날인가 봐.


"선화야, 삼촌이 우리 공주 예쁜 드레스 사주고 싶은데. 어때?"


내 심장 소리 들려? 내 작은 심장이 콩닥대는 소리가 여기서 제일 크다니, 큰일이야! 아침에 외운 주문이 틀렸나?


"진짜? 나 결혼하는 거야? 삼촌이랑?"


눈이 똥그래진 삼촌이 눈물까지 흘리며 웃기 시작했어. 커다란 웃음소리에 더 이상 내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다행인 건가?


"선화는 너무 귀여운 숙녀라 더 커야 해. 삼촌이 사랑하는 언니가 생겨서 결혼하는데, 우리 공주가 예쁜 꽃 뿌려주는 거 해줄 수 있을까?"


공주의 데뷔 무대를 기대하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눈빛. 내 대답을 기다리며 점점 몸을 기울여 다가오는 삼촌. 배려 없는 어른들의 시선이 무서워 울음이 터진 아홉 살의 .


내 첫사랑이 실패한 그날의 악몽.


악몽을 꾸고 일어난 날에는 더 크게 주문을 외운다.


"난 우월해, 우월해, 우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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