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한 여자

1

by 깨진돌

안녕?

나는 선화, 강선화야. 만나서 반가워.

내 나이? 내 말투가 좀 어른스러워서 헷갈릴 만 해. 아직은 아홉 살. 그래도 몇 밤 지나면 열 살이 되니 꼬마 취급은 하지 말아 줘. 정중히 부탁할게.

왜 웃어? 기분 나쁘게. 정중히 사과한다면 받아 줄게. 나는 챠밍걸이니까.

뭐? 챠밍걸이 뭐냐고? 그 유명한 '챠밍걸 다이어리' 몰라? 귀엽고 예쁜 거 말고 매력이 넘치는 그런 거 있잖아. 그게 '챠밍'이래. 챠밍걸 코디법, 포크 쓰는 순서, 머리 묶는 법... 이런 것들을 다 배워야 챠밍걸이 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말야, 이건 좀 조용히 말할게. 가까이 와봐.

거기에는 브래지어 착용법도 나와 있어. 나는 아직이긴 한데, 곧 바비처럼 가슴이 생길 테니까 준비해야 해. 어제도 몰래 엄마 브래지어로 연습해 봤는데 자꾸만 손이 미끄러져서 실패했어.

그런데, 너도 바비 인형 있어?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바비 옷을 갈아입힐 때마다 자꾸만 쉬가 마려운 것처럼 가랑이 사이가 간질거려. 처음엔 쉬가 마려운 줄 알고 변기에 한참 앉아 있었는데 찔끔 몇 방울만 나오고 말더라구. 엄마는 그냥 레깅스가 꽉 끼어서 그런 거래. 이런 건 '챠밍걸 다이어리'에도 안 나왔던데, 너는 그런 적 없어?


난 자전거 탈 때, 삼촌이 목마를 태워줄 때도 가끔 간질거리거든. 사실 삼촌을 만날 때는 입술도 손도 간질거려. 우리 삼촌은 '켄'을 닮아서 힘도 세고 웃는 모습도 멋지거든. 멋지고 예쁜걸 보면 그러는 건가? 곧 삼촌이 올 거니까 봐봐. 얼마나 멋진지!


"삼촌!"

"선화야! 우리 공주님, 잘 있었어?"


삼촌은 여느 때처럼 날 번쩍 들어 올려 안았다. 삼촌 품 안에서는 아빠와는 다른 시원하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 코를 박고 삼촌의 향기를 내 얼굴에 묻히다 보면 어느새 집 앞이었다.


"선화야, 삼촌 오랜만에 보니까 좋지?"


당연한 걸 묻는 엄마의 한심한 질문. 어이없지만 나를 수줍게 하는 질문에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고 보니, 삼촌은 지난 설에도, 추석에도, 내 생일에도 바빠서 오지를 못했다.


"선화야, 삼촌이 오늘은 공주님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왔어."


찔끔 거리듯 무언가 새어 나올 듯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삼촌은 더워 보이지는 않았다. 여덟 살 때, 나와 결혼하자고 약속하던 때처럼 당황한 듯 보였다. 오줌이라도 마려운 것처럼.


"삼촌 곧 결혼하는데, 선화가 화동 해줄 수 있을까? 하얗고 예쁜 공주님 드레스 입고."


'결혼? 열 살도 안 됐는데 결혼? 그런데 신부도 아니고 화동은 뭐지?'


동그랗게 커진 눈의 경계에 방금까지 보이지 않던 종이가 걸렸다. 나보다 머리도 길고 가슴도 큰 어른 여자가 삼촌의 볼에 입술을 갖다 대고 있었다.


가랑이에 힘이 풀리더니 걸려 있던 오줌이 새어 나왔다.

찔끔 보다 조금 많이.


하얀 드레스가 노랗게 물들자 부끄럽고 화가 나고 분했다.


수치심을 학습한 나이, 아홉 살이었다.
















화요일 연재
이전 04화다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