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한 여자

3

by 깨진돌

"엄마!"


김 하나 나지 않는 냄비 뚜껑을 조심스레 집어 들던 선화는 엄마를 발견 하자 놀이터의 모든 아이들이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외쳤다. 선화의 부름에 벤치에 모여 앉아 있던 여성들 사이, 유독 눈에 띄는 한 명이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유달리 예쁜 얼굴이 아니었음에도 그녀는 눈에 띄었다. 급히 일어나지 않았고, 바쁘게 손을 흔들어 대지도 않았다. 잠깐 일어나는 그 찰나에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손끝으로 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선화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마저 방정맞지 않고 나직하면서 살가웠다.


"선화야, 엄마 여기 있을게. 걱정하지 마."


흔한 엄마들 사이, 흔하지 않은 엄마의 모습이 선화는 너무 좋았다. 그래서 엄마가 꼭 하고 싶었다.


낮과 밤의 애매한 경계에서 아이들은 엄마 손에 끌려 들어갔다. 유일하게 나란히 서서 손을 꼭 잡은 채 걸어가는 건 선화와 지영뿐이었다. 급한 걸음으로 딸려 가는 친구들에게 이 시간만큼은 선두를 기꺼이 양보했다.


"저녁 맛있게 드세요."


지영은 지나쳐가는 엄마들에게 상냥하고 나긋한 인사를 건네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가늘고 하얀 손에 가려 반쯤 보이는 미소는 모두가 놀이터를 떠날 때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선화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좋았다.


"삐삐삐삐"


도어록의 비밀 번호를 채 다 누르기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허기를 참지 못하는 지훈에게 여섯 자리 숫자를 듣고 있을 인내심 따위는 없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밥도 안 해놓고. 배고파 죽겠어."

"엄마, 왜 이제와? 배고파. 밥 줘."


지훈을 따라 칭얼거리는 서준을 보며 지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용히 좀 해! 복도까지 다 들리겠어."


문이 닫히자 지영의 목소리가 앙칼지게 끊어졌다. 한쪽 입꼬리만 올라간 입에는 미소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밥시간이 지난 것보다 중요한 건 동거인들이 벗겨낸 지영의 탈을 들키는 것이었다. 지영을 여전히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건 선화뿐이었다.


'자기 관리의 끝판왕, ○○○씨.'


선화에게 연예인은 텔레비전 속 잘 꾸며진 저 여자가 아니었다. 원할 때 마다 쓸 수 있는 엄마의 탈을 선화는 이어 받기로 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