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방>에 다 있다.” 집만 빼고.
며칠 전 오랜 친구와 만났다. 전라북도 전주에 사는 그는 다음 학기부터 대면 수업이 예정되어 있다며 서울의 자취방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얼마 뒤 소식이 들려왔다. 부동산 중개 어플인 ‘다방’을 통해 값싼 원룸을 구했다고. 주변 친구들도 ‘다방’과 ‘직방’ 같은 부동산 중개 어플을 통해 집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기엔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청년들이 애용하는 ‘다방’과 ‘직방’이라는 플랫폼의 명칭은 은연중에 청년 1인 가구의 주거실태를 드러낸다. 지금 청년들은 ‘집’이 아니라 ‘방’에 산다. 수도권으로 올라와 대학교에 다니는 청년 중 운이 좋은 이들은 기숙사 방에서 살 수 있다. 부모가 보증금을 마련할 능력이 있다면 원룸에서도 살 수 있다. 목돈이 없을 땐 불편을 감수하며 친구와 방을 공유해 살기도 한다. 제대로 된 집은 애초에 고려대상이 아니다. 또 어떤 이들은 ‘방’이라기보단 ‘관’ 같은 곳에 산다. 지금도 고시원에 사는 청년들은 몸을 반으로 접은 채 잠을 이루려 애쓴다. 옆방 거주자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는 원룸형 하숙을 청춘의 보금자리로 삼는다.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주거 빈곤 청년들의 사정은 더욱 열악해진다. 어쩔 수 없이 집단 거주 시설을 선택하는 청년들은 취약한 방역 환경에 내몰린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청년 1인 가구의 주거실태와 기저의 원인을 기록해보려 한다. 해당 보고서를 통해 청년들이 허름한 ‘방’이 아닌 제대로 된 ‘집’에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방안에 대해 고민해보겠다.
2. 청년 1인 가구 주거실태
청년 1인 가구는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2019년을 기준으로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29.8%를 차지했으며, 2047년에는 37.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느덧 1인 가구가 3, 4인 다인가구를 제치고 가장 전형적인 가구 형태로 부상한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인데, 청년기의 연장,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 저출산 고령화, 문화 수준 및 삶의 질 향상 등 다양한 요인이 빚어낸 결과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현상은 ‘내 집 마련’이라는 사회경제적 부담이 청년세대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보다 정확한 논의를 위해 유의해야 할 사실이 있다. 다수 청년이 자기 명의로 된 집을 장만할 수 있었던 시기는 역사상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일부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대다수 청년에게 있어서 ‘내 집 마련’이란 애초에 현실과 동떨어진 개념이다. ‘청년의 주거문제’란 ‘급등하는 전월세를 부담하는 일’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도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는 청년들은 스스로를 ‘월세 소작농’에 비유한다. 이 월세 소작농들은 학점 관리부터 어학 공부에 공모전 준비에 스펙 관리까지, 할 일이 산더미인 와중에도 매일 알바에 나선다. 건물주에게 바칠 매달 50만 원, 매년 60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노동소득의 대부분을 주거비용 감당에 사용해야 하는 ‘근로빈곤층’이 양산되고, 부모의 지원 여부에 따라 주거 불평등이 강화되는 양상으로 한국의 ‘1인 가구 현상’이 전개 중인 현실이다.
3. 청춘이 길어졌다.
이러한 ‘청년 1인 가구 현상’의 역사적·구조적 원인은 다양한 사회문제와 얽혀있다. 첫째로는 고용의 문제이다. 고용의 양과 질이 모두 악화하며 유달리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세대가 탄생했고, 이들이 1인 가구의 증가를 이끌었다. 90년대 이후 빠르게 진행된 신자유주의의 확대는 비정규직의 양산과 일자리의 양극화로 이어지며 청년의 삶을 옥죄었다. 상시근로를 하는 근로자는 모두 정규직이어야 한다는 원칙 역시 진작에 허물어졌다.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일자리 중 비정규직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제외하고도) 41.6%에 달하는 실정이다. 정규직이라고 해서 다 같은 정규직인 것도 아니다. 300인 이상의 노동자를 직접·지속 고용하며 노동조합까지 있는 질 좋은 일자리는 겨우 7.2%에 불과하다. 게다가 21세기의 저성장은 고용 감소로 이어졌고, 2020년의 코로나 팬데믹은 고용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러한 고용시장의 현실이 청년의 사회진출 장벽을 더욱 견고히 했고,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청년기의 연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가난과 불안에 쫓기는 이들이 1인 가구를 형성하는 것은 선택보단 운명에 가깝다.
4. 서울에 갇힌 청춘.
연합뉴스 제공 둘째 원인은 ‘수도권 초집중화 현상’에 있다. 소설가 이호철이 <동아일보>에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소설을 연재해 큰 인기를 누리던 1966년 서울의 인구는 380만 명이었다. 내 친구가 사는 전라북도의 당시 인구는 250만 명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서울은 1000만 명의 인구를 거느리는 메트로폴리스로 성장했고, 전북의 인구는 되려 180만 명으로 줄어버렸다. 이러한 지방 소멸과 수도권 집중화 현상은 청년 1인가구의 분포에서도 드러난다. 통계청의 2019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청년 1인가구는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특히 청년 여성 1인 가구 상위 20개 지역은 6개 시군구를 제외하고 전부 서울에 집중되어 있을 정도로 서울 편향성이 높게 나타난다. 청년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 모든 인프라와 기회가 서울과 그 인근 지역에 몰려 있는 실정 탓이다. 당장 경희대학교의 캠퍼스와 주요대기업의 본사 역시 대부분 수도권에 위치해 있지 않나. “구직청년에겐 서울 사는 것도 스펙이다”라는 한탄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서울 초집중화 체제는 지방의 인재와 자본을 모두, 수도권으로 집중시켰고, 그 덕에 서울의 한정된 땅과 집은 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다. 고소득층이 부동산 투자로 큰 수익을 올리는 걸 지켜본 중산층은 그들의 부동산 투자를 '흉내' 내기 시작했고, 이후 몇 년간 지가는 걷잡을 수 없이 상승했다. 그렇게 ‘서울에 갇힌’ 청년들은 어마어마한 임대료를 감당하게 되었다. 청춘이 몸을 구긴 채 잠을 청하는 고시원의 비밀도 여기에 있다. 일자리, 정보, 문화, 교육에서 소외되지 않고 짧은 출퇴근 및 통학 시간이 보장된다면 개인 공간이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에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상술한 모든 요소가 서울이라는 좁은 땅에 몰려 있는 사회에서 좋은 입지는 당연히 희소하고, 1인 가구의 증가추세와 맞물리며 고시원은 시장의 블루칩이 되었다. 타워팰리스의 3.3제곱미터 당 월세가 ‘11만 6000원’인데 고시원은 ‘12만 6000원’이다. "고시원이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강준만) 이 경악스러운 가격표의 형성에는 이러한 비밀이 숨어있다.
5. 전염병 시대의 주거 빈곤
흔히 바이러스는 공평하다고 생각하지만, 감염 위험도는 각자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전술했듯 코로나19의 확산은 주거 빈곤 청년들의 사정을 더 악화시켰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청년들은 ‘나만의 공간’에서 안전한 격리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며, 설령 감염이 된다 해도 부담 없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다. 반면 ‘모여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감염병 확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도 대구 신천지 집단감염 사례에서 감염의 배경이 된 장소는 2030 신도들이 단체로 거주하는 임대아파트였다. 대구 달서구 한마음아파트에서 2020년 3월 확진 판정을 받은 46명은 모두 신천지 교인이었는데, 이 아파트는 1985년 지어진 여성근로자 임대아파트였다. 2명이 11평 정도의 공간을 공유하며 살았다. 대구시에서 3개월 이상 일한 35세 미만 미혼 여성은 보증금 21만6000원, 월세 2만2000~5만4000원에 살 수 있었다. 그 탓에 저소득층 청년 여성들이 모였다. “신천지 교인 중에 20·30대 여성이 많아 비중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라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말마따나, 주거 빈곤 상태의 청년 여성들이 집단 거주 시설에 모여들어 대규모 전염병 확산 사태의 시발점까지 이어진 것이다.
최창우 집걱정없는세상 대표는 전술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마음아파트 집단감염의 근본적 원인은 여성 노동자가 처한 빈곤과 소외”라고 말했다.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열악한 환경이 감염 위험을 높였다. 사회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신천지가 침투하기 쉬웠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기숙사, 공유 주택, 쪽방촌 등 밀접 접촉이 불가피한 시설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열악한 주거와 감염 위험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더구나 코로나19 이후 청년 활동의 공간적 격차 역시 악화하는 중이다. 굳이 집단 거주 시설에 살지 않더라도, 코로나 이후 ‘나만의 공간’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향유하는 공간의 격차에 따른 삶의 질 차이가 확대됐다. ‘자기만의 방’이 있는 사람과, 비좁은 ‘지옥고’에서 하루를 견뎌야 하는 사람 간의 격차는 코로나 시대에 더욱 명징하게 드러난다.
6.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현실이 이렇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사회는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집단’이기에, 그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 역시 인간들의 몫이다. 우리가 다르게 생각하면 세상도 변한다. 그렇기에 지금 마주해야 할 질문은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수많은 청년 1인 가구가 열악한 주거환경과 높은 주거비에 신음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고용 양극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물론 모든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게 바람직한 것 같지도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정규직의 노동시간은 비정규직의 75% 정도이지만, 연봉은 2.5배인 작금의 현실(인천공항의 경우)’은 타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투기 풍조를 완화하는 동시에 청년들의 주거 질을 높여야 한다. 둘째로는 ‘서울 해체를 통한 부동산의 수요분산’이다. 지방에 좋은 직장과 집이 있고, 충분한 교육 인프라가 있다면 청년들은 굳이 좁고 비싼 서울 고시원에서 몸을 구긴 채 잠들 필요가 없다. 최소한 태어난 곳에서 학교도 가고 병원도 가고 취업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기형도 시인은 그의 마지막 시 <빈 집>에서 어두컴컴한 집 안에 커다란 사랑을 가두었다. 불 꺼진 방에서 스탠드 하나 껴놓고 사랑에 젖어 휘갈긴 편지들, 상대를 생각만 해도 고이는 눈물, 불안함, 열망, 밤을 지새우고 문득 고개 들어 창문을 보면 둘러싸여 있는 안개들까지. 그의 청춘은 집을 무대로 사랑을 키웠다. 집은 그저 비바람을 피하는 장소가 아니다. 코로나 시대에 일상의 대부분을 영위하는 곳이 집이다. 자기개발을 하며 미래를 도모하고, 아늑함을 느끼며 휴식을 취해야 하는 곳이 집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쓰기 위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낭만과 열정을 주문하기 전에, 집다운 집을 얻을 수 있는 환경 먼저 보장해야 한다. 청년들의 ‘집’이 좁고 비싼 ‘방’에 그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