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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생끝에골병난다 Jun 06. 2023

우리가 망친 삶과, 남긴 '만약'들을 위해 <라라랜드>

비긴어게인. 치코와 리타. 라라랜드. 재즈.

우리가 망친 삶을 위해
-'비긴어게인' '치코와 리타', '라라랜드'


비긴어게인

음악 영화를 좋아합니다. 주말 오전에 좋은 음악 영화 한 편 보면 일주일의 일과가 위로받는 기분입니다. 음악이 일상을 구원하는 것일까요. <비긴 어게인>을 보면서 생각해봤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처량한 일상이 이어집니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이야기로 변하는 순간은 크게 두 개로 나뉩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나눠 듣는 순간과, 처량한 인물들이 모여 음악을 연주하는 순간입니다. 음악이 흐를 때 소음은 멀어지고 아름다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지하철의 굉음이 갇힌 동물들의 비명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 순간에도 이어폰을 끼면 우리는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됩니다.


일상은 소란스럽고 삶은 삭막합니다. 영화를 볼 때, 음악을 들을 때, 책을 읽고 산책을 할 때. 고통은 옅어지고 주변 풍경도 아름다워집니다. 인간이 노래를 하게 된 것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영화의 인물들은 결국 음악 아래서 화해하고 연결됩니다. 꿈은 실현되고, 사랑은 돌아오고, 가족은 복원됩니다.

영화는 동화 같은 결말로 끝나지만, 영화가 끝나도 삶은 이어집니다. 결국 똑같은 갈등이 반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시련을 겪은 뒤의 관계에는 미묘하게 달라진 공기가 남습니다. 모든 게 예전 같지는 않을 겁니다.


양귀자 작가는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건 행복이 아니라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고 했습니다. 시련을 겪지 않은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삶의 낭떠러지에 함께 매달려있음을 알 때,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습다. 관계는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거기에 음악이 흐른다면, 삶은 아름답기도 할 것입니다.


치코와 리타
<치코와 리타>라는 만화 영화가 있습니다. 재즈의 황금기였던 1948년, 하바나와 뉴욕, 파리, 라스베이거스를 주름잡던 음악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스토리는 특별할 게 없습니다. 하지만 젊음과 재능으로 빛나던 시절의 열기. 관능적인 작화와 감미로운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시간이 아깝지 않은 작품입니다.

시간이 흘러서 호황도 재즈도 황혼에 접어들었습니다. 성장은 둔화됐고, 불평등은 악화됐고, 기회는 줄어들었죠. 이제 음악은 나른한 이완제가 아니라 각성제로 기능해야 합니다. 그래서 재즈보다는 소란한 '노동요'들이 각광받습니다.



라라랜드
황혼의 시간. 그런 21세기를 배경으로 한 재즈 영화가 <라라랜드>입니다. 그래서인지 <라라랜드>에서 음악이 흐를 때면 하늘이 항상 보랏빛 황혼으로 물들어있습니다.

<치코와 리타>의 번성은 지나갔지만, 오래된 술집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남기고 간 노래가 남아있습니다. <라라랜드>에는 그 노래를 복원하겠다는 꿈을 가진 남자가 있고, 배우의 꿈을 꾸는 여자가 있죠.

'재즈의 복원'을 꿈꾸는 남자는 밴드 동료와 언쟁을 벌입니다. '네가 동경하는 델로니어스 몽크도 혁신가였어. 너 같은 사람이 재즈를 망치는 거야. 과거에만 고여있으면 어떻게 혁신을 해?' 이렇게 묻는 동료의 질문은 너무 현실적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인물들은 잠시 꿈을 떠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흘러 결국 동경했던 삶을 이루어냅니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듯 영화도 비극입니다. <라라랜드>의 결말이 희극인지, 비극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죠. 멀리서 본 삶은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본 삶이 비극이라면, <라라랜드>의 본질도 비극일 것입니다. 그 비극 속에서 희극을 찾아내고 함께 나누는 것이 삶에 주어진 과업입니다.


프라하의 재즈 클럽. 오래된 술집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남기고 간 노래가 남아있다.


이 영화는 우리가 버리고 온 수많은 '만약'들을 위한 송가입니다. 지난해 개봉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발상과도 맞닿아 있죠. 그래서 영화에서 가장 여운을 남기는 장면은 엠마스톤이 라이언 고슬링과의 '만약'에 휩쓸리는 장면입니다. 라이언 고슬링의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고, 엠마스톤의 곁으로 그녀가 두고 온 '만약'들이 지나갑니다.

음악은 옛날과 똑같이 흐르는데, 인생에는 그대로인 것이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만약'을 떠올립니다. 사람들은 자주 '그때 이랬으면 달랐을 텐데'라는 생각에 걸려 넘어집니다.

그런 인생을 위해, 세상에는 꿈에 빠진 사람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망친 삶을 위하여, 누군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누군가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연주해야 합니다. '그런 걸 배워서 어디에 쓰냐'고요. 상처받은 마음을 위해 화가, 시인, 배우, 가수가 존재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주 저 모욕적인 질문을 받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꿈꾸는 바보들'입니다. <라라랜드> 'audition'의 노랫말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꿈꾸는 바보들을 위하여
미친 듯이 보이겠지만
상처받은 마음을 위해
우리가 망친 삶을 위하여"





ps. 영화에 찜찜한 점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라라랜드>는 '서구적인 것'과 '아름다운 것'을 동일시합니다. '사회 생활' 중 들려오는 중국어나 인도네시아 여행 이야기는 소음으로 간주합니다.

피아노 음악과 할리우드 같은 '서양의 것'에 담장을 두르고, '동양의 것'을 침범으로 인식하죠. 동양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유쾌한 태도는 아니지만, 우리가 그들보다 성숙할 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애초에 <치코와 리타>, <라라랜드>는 서양의 번영과 황혼을 다룬 영화니 말입니다. 부흥기의 재즈는 다양한 인종과 계급의 화합을 이루는 음악이었고, 그 시대의 미국이 가장 번영했다는 사실만 기억해두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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