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내가 회사에서 일을 다 배우고 나면 그다음은 뭘 해야 하지? 여기서 끝이면 뭔가 아쉬운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때부터 내 안에서 무언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막연했지만, ‘사업적인 DNA’라는 게 그때 처음 발동한 걸지도 모른다.
얼마 뒤, 가족들과 밥을 먹다가 뜬금없이 튀어나온 한 마디.“아빠, 비행기 하나 사주실 수 있으세요?”
아빠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나를 쳐다봤다. 놀란 눈빛이었다.“뭐라고? 네가 쓸 걸 내가 왜 사냐? 비행기는 또 어디에 둘 거고, 어디서 파는데?, 비행기 그거 얼마래니?”
한참을 어이없어 하시며 아빠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셨다.
왠지 여기서 더 이야기 하다가는 혼날것 같았다. 나도 대충 웃어 버무렸지만
, 마음 한구석에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그래, 맞아. 아무도 나를 위해 비행기를 사줄수가 없지. 집안을 잘못 찾아 태어났다고 하기엔 이미 늦었다.”
그렇다면 내가 이 회사를 계속 다닌다고 해서 나에게 뭐가 남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이런저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회사에 대한, 내 미래에 대한,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삶에 대한 고민들.
계장님과의 대화
다음 날, 나는 김 계장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계장님, 언제 계장 달으셨어요? 사원에서 계장까지 어떻게 오신 거예요?”
계장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우리 회사는 외국계라 능력제로 움직이거든. 실력만 있으면 시간 상관없이 승진할 수 있어.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고 잡아.”
능력제로 승진이 가능하다니! 마음 한편이 설레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진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런데 계장님은 이어서 중요한 이야기를 덧붙이셨다.“근데, 알아둬. 네가 너무 잘하면 동료들한테 비난받을 수도 있어.”
나는 의아했다.“왜요? 다른 사람들은 못 해서 안 하는 거라면서요.”
계장님은 조용하게 귀뜸하듯이 말했다.
.“너 혼자 회사 다니는 게 아니잖아. 주변 분위기도 생각해야지.”
그 말을 듣고 한참을 곱씹었다.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회사에서 내가 무언가를 이루려면 쉽지 않은 길이 될 거라는 것.
사표를 내야 하나... 다치고 싶지 않다.
세부로 향한 꿈
그 후로도 머릿속을 떠다니던 고민들은 결국 하나의 아이디어로 모아졌다. ‘세부와 보홀을 연결하는 관광 패키지 사업을 해보자!’
당시 세부는 항공편이 부족해서 여름 성수기 항공료가 100만 원이 넘었고, 관광객을 위한 배편이나 숙박시설도 미흡했다. 그런데 세부는 영어 공부와 관광을 결합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괌처럼 가까운 데다 비용도 저렴했다.
결국 2004년, 나는 이 꿈을 실현하기로 결심했다. 어학원과 관광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학교 설립을 위한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어학원이 세부 최초로 교육청 정식 승인을 받은 여자원장의 어학원으로 등록되었다.
내가 세부에서 그 유명한 여자 원장 CY다!
사업의 시작
사업은 또 다른 사업을 낳는다.
2005년, 어학원을 운영 하면서도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으며 최초 세부에 오게된 계기를 이야기 하다보니 내 초심은 늘 내 곁에 있었다.
2018년쯤 나는 또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세부와 보홀을 연결하는 패키지 상품을 계획하고, 하나씩 준비를 해나갔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점점 확신이 생겼다. 꿈을 이루기 위해선 틀을 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용기를 내서 도전했다.
그 도전이 내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사업가로서 첫발은 또다른 뜻모를 용기로 발걸음을 내딛으며,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조금씩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20년 후의 깨달음
2024년. 드디어 보홀 관광이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20년이
걸렸다.‘앞서간다’고 자부했던 내가, 그때는 너무 앞서 있었던 걸까?돌아보니 한 가지 확신이 든다.
역시 너무 앞서가기보다는 반보만 앞서가는 게 가장 현명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