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 속 길 잃은 이

사방이 온통 회색 빛으로 보이네

by 담설

뿌옇게 내려앉은 안개는 홀로 먼 길을 걸어가는 이들의 눈앞을 가리지. 그 속을 헤매다 그만 길을

잃고 마는 게야. 그리 많은 이들의 앞길을 막아버리곤 하더라. 이 얄궂은 안개가 말이지. 아주 고약한

심보를 품고 있네. 근데 정말 그 안개만이 눈앞을 흐려 놓았을까?


내 속에, 또 그들 속에 엉켜 꼬여있던 잡념 덩어리들도 앞을 가려버리니 그리 길을 헤맨 거지. 아주 어이가

없구나. 속에서 뭘 그렇게 소리쳐대는지 판단력이 흐려져 눈도 함께 흐려진 꼴이야.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 게

내 앞을 다 가리고 있으니. 어찌 똑바로 보고 걸어갈 수 있겠는가. 보이는 안개도 날 방해하고, 보이지 않는

이 덩어리들도 날 방해하면. 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 거지.


이젠 그냥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은 지경이야. 어디 혼자 바람 쌩쌩 부러치는 언덕에 올라가

이 안개며 잡념이며 죄다 모조리 날려버리고 싶네. 이리 버티고 있는 것도 용하다고 생각하네. 윤곽이라도

조금 선하게 트이는 게 아주 진기명기야. 녹이 슬어 더는 버치지 못하게 되었을 땐. 정말 부러져 버릴 것 같단

생각이 들어.

왜 자신을 위한다면서 그 속에서 배배 꼬아 가는 거야. 그건 그이를 위함이 아니란다. 쓸데없는 모진 아픔은

조바심을 만들어내고, 일을 그르치게 만들어. 결국 현실의 나에게 타격이 가는 거지. 덩어리를 풀어내고자

하려다가 오히려 그 크기를 키워내고, 부풀려 버리곤 감당하기 힘들어하지. 결국 자신을 더 힘들고 아프게

만든 건 스스로였어.


사실 왜 그러는지 이해해. 왜 그리 불안 속에 갇혀 있는지,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왜 그토록 걱정하는지

말이야. 그저 지난 사랑에, 지난 실패에, 지난 과거에 발이 묶여 있는 거야. 자신의 기억 속에서 파생된

아픔이 자신도 모르게 계속 갉아먹고 있던 거지. 날 위함이라 칭하면서 말이야. 묻어 두기엔 너무 아픈 그

과거들이 나아갈 길마다 툭툭 흠집을 내어 놓고 있으니 발을 딛기 두려워지지.


눈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가끔은 그 길이 맞다는 것을 알아. 그것도 내 과거와 경험에서 우러나온 감이야.

아픔과 실수들에 묶여 망설이지 말고, 그저 한 경험으로 승화시켜 줘. 묻어두지 못하겠으면 그냥 태워버려.

불쏘시개 마냥 활활 타면 눈앞이 더 밝아지겠지. 어쩌면 그 불길에 놀라 안개도 달아나 버릴지도 몰라.



수필 - 2025.05.05

옮김, 각색 - 202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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