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속에서 날 구원해 줄 수 있는 건 오직
불에 손을 지져도 뜨겁지 않아. 날붙이에 다리가 쓸려도 쓰리지 않네. 가시밭 속을 맨발로 걸어도 눈물이
흐르지가 않아. 이제 그럼 뭣이 날 아프게 하는가. 살 패이는 아픔도 느끼지 못하던 날. 그 무엇으로
눈물 흐르게 할렵나. 내 속이 다 헤집어져서, 정말 내 마음이 고장 났나 봐. 소름 끼치는 고통 위에 올라도
눈물이 더 이상 흐르질 않으니, 제를 의심하는 경지까지 도달했네.
정말로 눈물이 흐르지 않아? 넌 별로 슬프지 않은가 봐? 정말 그 아일 사랑했던 건 맞니?
아, 그 혀를 뽑아버리고 싶다. 차라리 말이나 못 하면. 그저 가만히만 있어주면. 내 안에서 그런 말을
뱉어내지 마. 사실 죽도록 뜨거워. 시리게 쓰려와. 눈물이 끊이질 않아서 앞이 흐릿해. 겨우, 정말 겨우
숨 좀 쉬어 보겠다며 수면 위로 고개를 올리고 있는 건데. 그리 안간힘 쓰며 버티고 있던 건데 얄궂게
얼굴을 푸욱 담가 버리나.
버텨내고 있는 거였어. 그저 견뎌내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버티고 있었다고. 니가 뭘 알아. 감히 속에서
그런 말을 해. 바람 한점 불지 않는 폭풍 속으로 휘감겨 빨려 들어간다. 느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그 지독한 태풍은 나만 괴롭히네. 그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이 거지 같은 재해는 나만 괴롭힌다고.
아무리 버티고 외면해도 진리는 달라지지 않는 걸. 속이 쓰리게도 난 이 폭풍을 없앨 수 없어.
하지만 빠져나가긴 해야지. 언제까지 버티고만 있을 순 없으니까. 그럼 내가 부러지고 말 꺼야.
넓은 황야 한가운데에서 온 힘을 다해 비명을 내지른다. 그 소리에 태풍이 묻어지게. 다른 것들도
모두 도망가라곤 소리 지른다. 없앨 수 없다면 내 곁에서 멀어지게 만들어. 그 속에 말려 들어가 언제까지고
아파 할 수는 없잖아. 그러기엔 제가 너무 불쌍하고 소중해서 견디지 못하겠는데. 내지르고 나면 반드시
파란 하늘 찾아올 거야. 반드시 맑은 바람 불어올 거야. 그러니 부디 아프게 부러지지 말자.
수필 - 2025.05.05
옮김 - 2025.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