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기댄 그 아이

시곌 빛낸 건 햇살이 아닌 소녀의 선택

by 담설

똑, 떨어지려는 그 아이 귀에 울리던 초침 소리. 고요하게 내리 앉아 검은 분칠을 일삼던 새벽을

깨 주었다. 똑, 똑, 똑. 칠흑 같은 어둠을 한가락 부숴주었다. 제 심정을 다 안다는 듯 그녈 무던히

토닥여줘. 흘러가는 초침은 멈추지 않았고 그 안정적인 일정함에 소녀는 굳어 멈춰버렸다.


차가운 새벽공기 속에 얼어버린 양, 그 아인 오래도록 굳어있었다. 그저 묵묵히, 담담하게 흘러가는

초침소리에 귀를 기울인 채. 새벽녘을 꼬박 넘겼다. 새벽 속 얼어붙어버린 이가 있는지 모르는지,

지평선 너머에 큰 아우라 두르곤 살얼음을 모조리 녹여내네. 길고 불투명한 창틈 사이로 일출

한아름이 몰려와. 얼어붙은 그 아일 슬며시 녹여주네.


이내 풀썩 주저앉아. 창백하던 얼굴에 작은 경련이 이르더니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자그마한 숨

한결에 쿡 막혔던 속이 텁텁 느껴져. 마른기침을 내뱉으며 목에 걸린 먼짓골을 토해내.

멈춘 것만 같던 대사가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관을 타고 뜨거운 혈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뛰어오르네. 오한이 들어 몸을 떨고, 얼굴이 구겨지며 뜨겁고 쓰디쓴 눈물이 도르르 흐른다.


그를 닦아 낼 생각 없는 듯 주저앉은 채로 한참 흘려보냈다. 기침을 토하던 목에선 생전 내본 지

기억도 안나는 찢어지게 아픈 괴성을 내질렀어. 방바닥을 쿵쿵 때리며 울부짖었다. 들이쉬는 숨에

메마른 폐에서 컥컥 소릴 뱉어. 그리 한참 울음을 토해냈다. 새벽안개를 그 해가 거두어 갈 때까지

말이야.


그 소녀 곁에 있는 건 살짝 뿌옇게 번진 유리창, 옅게 들이는 햇살, 그리고 똑, 똑, 똑딱 제 속도로

걸어가는 시곗소리. 시려 아물지 않던 상처를 묵묵히 아물어줘. 그는 언제나 소녀 곁에 있었네.

시린 새벽에도, 캄캄한 밤안개에도, 포근한 해돋이 속에도. 툭, 툭 곁에 머물러 줘. 일정한 안정감은

내면의 평화를 끌어주지.


제 안에 울렁을 토해낸 소녀는 이제 조용히 오므러 앉아. 따끔하고도 보들거리는 햇살을 살포시

손에 올려봐. 부시시한 눈을 꿈뻑이며 한숨을 옅게 내리 쉬네. 그러곤 창 앞으로 비틀비틀 걸어가

삐걱거리는 나무살을 당겨 열어본다. 어느덧 눈높이까지 내리 온 해가 열린 창틈새로 수더분한

방을 훤히 비춰. 조각조각, 마치 흙속 진주들처럼 햇빛을 받은 소녀의 방이 조곤조곤 빛나네.

그 벽시곈 온몸에 금칠을 두른 줄 알았어.




수필 - 2025.08.07

옮김 - 202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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