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을 머금은 장미는

무채색인가?

by 담설

잿빛 장미는 과연 우울한가. 다른 장미들을 동경하며 외로움을 머금을까? 진정 그렇담 그들이 오해한 것이

있으니, 지가 잿빛색이라 외로운 게 아니야. 붉은 피 같은 너흴 부러워한 것도 아니야. 그저 이 흑백 세상 속 홀로 서있는 것이 외로울 뿐인 거지.


스스로를 베어 내 붉게 물들길 원치 않는다. 허나 왜 그들을 동경하며 바라보았는가. 부러웠다. 주변에

자신들과 같은 붉은 장미가 한가득인 것이. 어딜 둘러봐도 빨갛게 물든 장미가 있었다. 절대 혼자 피어나

있는 법이 없었어. 외롭지 않을 테지, 그 소속감 속이 얼마나 아늑할지 가늠도 안 간다. 만약 내 곁에 잿빛을

머금은 장미가 단 한 송이라도 있었다면, 너흴 동경하지 않았을 거야.


저기 저 푸른 장미는 기적 같은 소망을 들어준다. 노란 장미는 제 감정대로 질투를 뿜어대지. 흰 장미는 제

순결함을 지니고 맑은 속내를 보여줘. 분홍 장미는 사랑에 빠져 하루 종일 얼굴을 발그레하고 웃고 있지.

그렇담 난? 난 무엇을 품고 있을까. 이 광활한 세상 속 잿빛을 가진 장미가 나 하나뿐이라면. 신에게 옵서

내게 내리신 뜻은 외로움, 고독함이려나.


넓은 들판 위 홀로 나부끼며 하루하루를 지새워. 이게 진정 내 운명이려나? 내 평생 홀로 칡흑 같은 이

흑백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겉치레 붉은 피가 흐르지 않아도 내상은 생긴다. 나부낄 비바람도, 타는 듯한

저 태양 빛에도 상처 하나 없어 견뎌왔어. 근데, 속에서 문드러져 내리는 건 좀 많이 아프네 나. 썩어 들어가는

속내를 도려내지 못한단 사실에 한탄해.


사랑받고 싶었다. 그 따스한 사랑 한 점을 너무나도 품고 싶었다. 메마른 채 간절히 갈망한다. 지 꽃잎이 한올,

한올 떨어져 나가는 줄도 모르고 그리 사랑을 바란다. 내상은 곧 외상을 만들고, 외로움은 곧 깊은 수렁으로

날 데려가. 그렇게 마음부터 시들어간다. 천천히, 조금씩. 전부 시들어버려 더 할 것도 없어지면 겉도 썩어

죽게 되는 거야. 꽃잎이 다 떨어지기 전, 그 장미가 지 사력을 다해서 기도해. "부디 다음 생엔 날 잔디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 적어도 외로움에 사로잡혀 죽진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세상에 단 하나뿐이던 장미의

꽃잎이 모두 떨어져.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멀리로 날리네.




202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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