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악센트라 부르지 말아요
영어는 언제나 내게 시험 같은 것이었다. 영어를 처음 뗀 건 여덟 살 때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의 미소에는 평소와 다른 뿌듯함이 어려 있었다. 길을 지나다 우연히 학습지 선생님에 붙잡혀 30분이나 설득을 당한 엄마는 나의 첫 영어 선생님을 모셔 왔다. 그렇게 나는 여느 또래 아이들과 같은 시기에 한국 영어 교육계에 첫 발을 딛게 되었다. 학습지로만 3년 간 영어를 배우고 어느덧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 엄마는 머리가 커진 나를 동네 큰 영어 학원에 데려갔다.
"꽤 어릴 때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했네요?" 그때 지어 보인 엄마의 미소는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레벨테스트를 하기 전에 간단히 apple 한 번 적어볼래요?"
"네.... a..p.."
26자의 알파벳 중 가장 맨 앞에 놓인, 그래서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인 apple조차 끝까지 쓰지 못한다는 걸 들키자 엄마와 나는 당장이라도 숨고 싶었다.
학원에서는 매달 영어 발표회가 있었다. 최우수 발표를 한 어린이에게는 학원 달란트 시장에서 쓸 수 있는 30달러가 주어진다. 단지 영어만 잘해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지미팰런 못지않은 재치와 여유로움으로 청중을 휘어잡을 수 있어야 하며 암기한 문장들을 상기하는 잠깐의 말 더듬도 용납되지 않았다. 정확함과 자연스러움,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를 모두 지닌 어린이가 되어야 했다.
발표가 있기 전 목요일 밤이면 나는 꼬박 밤을 새워 스크립트를 달달 외운 후 각 단어의 원어민 발음을 찾아 따라 했다. 그런 식으로 차곡차곡 30달러를 모았다. 하지만 철저히 준비된 내 자존심이 어김없이 긁히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건 'father'과 'mother'을 발음하는 순간이다. r을 발음할 때엔 l을 발음할 때 보다 혀의 힘을 풀고 부드럽게 발음해야 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빠덜!', '마덜!' 하며 야무지게 혀를 올리는 내가 웃기다며 따라 했다. 덕분에 부모님에 대해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내 입과 혀는 반사적으로 경직되었다.
여느 날처럼 우린 소파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친구들은 내가 영어를 할 때 특유의 습관이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먼 어느 날의 부끄러움이 떠올라 얼굴이 빨개지려는 찰나 나는 재빨리 선수를 쳤다.
그건 너희도 마찬가지인걸!
정말이었다. 한국에서 같이 온 휴는 영어를 말할 때 늘 같은 멜로디를 유지한다. 의문문이든, 감탄문이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포물선이 참 일정하다. 그녀가 보내는 영문 메시지에 휴의 목소리가 자동 재생되기도 할 정도다. 휴는 단어 하나하나에 감정과 영혼을 담아내는 나와는 다르다. 쉽게 흥분하지 않는 담담한 말투 안에 어떠한 과장도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어라는 언어에선 더 많은 역동성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그럴까. 휴의 영어는 마치 평생 움직임의 반경을 30cm 이상 넓혀 본 적 없는 무뚝뚝한 이의 춤을 보는 것 같아 귀엽게도 느껴진다.
반면 채가 영어를 할 때면 목소리가 꼭 오프라 윈프리 같다. 담백한 한국말과 기름기가 뚝뚝 떨어지는 영어 사이를 어찌나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가끔 흥분해서 속사포로 말을 뱉고 나면 채는 늘 '~something like that'으로 마무리한다. blah blah blah... something like that. 이 말을 하는 순간의 그녀는 자신감이 넘친다.
문법이 틀리는 줄도 모르고, 엉뚱한 단어를 썼는 줄도 모른 채 열심히 말을 잇다가 문장이 끝나가는 순간이 오면 완벽주의 성향을 띤 그녀의 한국인 소울이 등장한다. 불확실함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자신이 가장 편안해하는 문장으로 갈무리한다. 그건 채만의 안전장치이다. 마치 실컷 주장을 펼쳐놓고 끝에 와서야 "맞지?"하고 확인하는 느낌이랄까.
대만에서 온 슈의 영어는 눈을 감고 들으면 마치 중국어를 하는 듯 들린다. 띄어쓰기가 없는 중국어를 말하듯 그의 영어에는 막힘이 없고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단호하면서도 따뜻한 그의 모습을 반영한 걸까. 슈의 영어가 가진 질감은 중국어보다는 부드럽다. 우리 중에 가장 영어를 잘하는 것 같다며 우리는 늘 입을 모아 칭찬했다. 단 한 가지, 그의 말버릇을 찾아내기 전까지. 가끔 그는 숨소리가 많이 섞인 중국어를 말할 때의 습관대로 ‘what', 'where'과 같은 단어를 '홧', '훼얼'이라고 발음했던 것이다. 유의 별명이 '휴'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인인 고가 영어를 할 때도 얼핏 일본어인지 영어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있다. 그렇지만 고는 영어 페르소나를 가장 잘 만든 사람 중 하나이다. 모국어를 할 때 고는 전형적인 일본인이었다. 소박하고, 조심스러우며, 말을 아낀다. 하지만 영어를 할 때는 다르다. 영국식 발음을 열심히 따라 하던 그는 영어를 하는 순간 적극적이고 거리낌 없는 '슈파고'가 되었다. 눈치만 한가득 보던 아시아 친구들이 서로에게 이만큼 편해진 건 고의 솔직한 농담 덕분이었을지 모른다.
추운 비바람 부는 날 영국 남자애들을 따라 한답시고 'FUXXING COLD'라고 연신 읊조리며 만족해하는 말썽꾸러기 고.
앞집에는 프랑스인만 3명이 살았는데, 그들의 불어를 듣자면 영화 <아멜리에>를 보는 것처럼 황홀했다. 부드러운 콧소리와 성대를 진동하는 낮은음들이 잔잔하게 들려온다. 이들이 영어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프랑스인 특유의 나른함과 목을 긁는 소리는 언어를 가리지 않았다. 가끔은 발음이 지나치게 새어나가 못 알아들을 때도 많았다. 처음엔 'sorry?" 하며 굳이 확인했지만, 나중에는 그들처럼 'ok'라고 수시로 답하고, 그들의 눈을 진득하게 쳐다보며 가장 유럽스러운 리액션으로 상황을 모면했다.
"그래서 내 습관은 뭔데?"
나는 말을 하기 직전이면 어김없이 콧구멍이 조금 커지고, 입이 오리처럼 모아진다고 한다. 그건 이야깃거리가 떠오르면 좀처럼 기다리지 못하는 내가 다음 할 말에 시동을 거는 표정이다. 그럼 나는 말버릇 같은 건 없어?
물론 있지. 목소리가 더 커지는 거.
영국에 처음 왔을 땐 만나는 외국 친구들마다 내 발음이 한국인스러운지 (korean accent가 있는지) 꼭 확인했다. 그럼 그들은 하나같이 "아니! 너는 영어 잘해" 라며 안심시켰다. 딱 한 친구만이 이렇게 말했다. "그럼 당연한 거 아니야? 너는 한국인인데?!"
그게 영어를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는 걸 여러 나라에서 온 여러 친구들과 대화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아시아, 유럽 등 각 나라의 친구들, 하물며 영국 각지에 사는 친구들은 저마다 다른 말버릇과 억양을 갖고 있다. 한 영국 친구는 할머니와 대화할 때엔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고상하고 느릿느릿한 말투를 쓰다가도 친구들을 만나면 ‘워터’인지 ‘워어’인지 모를 정도로 말을 생략한다고 한다. 이건 단지 아메리칸 악센트, 브리티시 악센트, 코리안 악센트, 프렌치 악센트 따위로 나눌 수 없는 고유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건 휴 악센트, 고 악센트, 주디 악센트다. 어찌나 다양한지 목소리가 녹음되는 사전을 만들어 따로 기록하고 싶을 정도다.
내 세계가 넓어지면서 내가 아는 영어의 지평은 더 넓어졌다. 애초에 정형화된 언어라는 게 있을 수 있었을까. 각자의 악센트에는 느리거나 급한 각자의 성격, 그간 그들이 거쳐 온 관계부터 여행까지 모든 게 섞여있다. 수천수만 개의 악센트 중 단 1퍼센트라도 경험한 사람들은 다들 알 거다. 이 세상에는 단 한 개의 뒤처진 악센트 없이 저마다가 모두 사랑스럽단 걸. 이제 난 나의 서툰 억양에 주저함이 없다.
그래서 지금 '주디의 악센트'는 어떠냐면,
영국에 다녀온 후 열심히 영국식 발음과 억양을 공부했지만 급하거나 흥분할 때엔 아주 오래 적부터 들어온 '영어 듣기 평가에 녹음된 미국인 성우'의 억양과 한국어 리듬, 그리고 나의 고질적인 조급함이 섞여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