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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민 Sep 07. 2022

복수하고 싶어요

: 영화 <올드보이> (스포일러주의)

복수는 TV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 모든 장르에서 고르게 인기 있는 단골 소재이다. <아내의 유혹>부터 <이태원 클래스>, <펜트하우스>, 그리고 모든 문학의 원천이라고 전해지는 그리스 비극에도 복수는 등장한다. 어찌 보면 복수를 하는 건, 복수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아주 예전부터 존재했었던 우리의 본능적인 부분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개인적으로는 등장인물들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마음와 정신이 피폐해져서 복수를 소재로한 프로그램을 많이 보지는 않는데 최근에 연수를 듣기위해 <올드보이>를 보게 되었다. 복수에 관련된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중 하나인 <올드보이>(스포일러주의)에 이런 대사들이 나온다.



“상처받은 자한테 복수심만큼 잘 듣는 처방은 없어요. 모든 고통을 잊어버릴 수 있어요. 하지만 복수가 다 이루어지고 나면 어떨까? 아마 잊고있던 고통이 다시 찾아올 껄?”

“이 복수가 끝나고나면 오대수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복수를 소재로한 미디어를 잘 보지 않는 것은 추가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복수가 성공해도 성공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복수가 실패한 케이스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복수가 실패하게 되면 당연히 우리 불쌍한 주인공이 왜 실패해야하는지 마음이 너무 아프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주인공이 성실하고 바른 사람일수록 안타까움은 배가된다. 다음으로 복수가 성공한 케이스를 살펴보자. 보통 복수가 성공하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복수가 성공해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원래의 자신의 빛을 잃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복수를 하기 전의 주인공과 복수를 하고 나서의 주인공은 전반적 성격이 변하지 않았다고해도 둘의 모습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그리고 이렇게 변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자면 나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시려오는 것이다.


그럼, 당하고만 살라는건가? 아니다. 나는 당신이 참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착하게 살라는 입에 바른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복수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군자의 복수'를 항상 추천한다.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 의미는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짧다는 이야기이다. 참고로 오해할까봐 미리 말하자면 10년 동안 복수를 계획하라는 말은 아니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 "누군가 너에게 해악을 끼치거든 앙갚음하려 들지 말고 강가에 고요히 앉아 강물을 바라보아라그럼 머지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 올 것이다."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람이며 그 문제를 당신이 고쳐줄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당신에게 미안해할것이고 이미 엎지른 물은 주워담을 수 없는 것이기에 그 사람에게는 마땅한 죄책감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자리잡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면 결국 그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로 스스로 파별로 이끌 것이다. 내가 추천하는 군자의 복수는 다음과 같다. 문제는 당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시간을 가지고 살펴봐라. 10년이 지나면 그 사람은 어떠한 방식으로는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을 것이다. 잘못을 깨달았든, 깨닫지 못했던 것이든.


개중 누군가는 부인할지도 모르지만 상처받은 사람에게 필요한건 복수가 아니라 치료라고 생각한다. 이 불같은 감정을 안고 살아가기에는 당신의 남은 인생은 소중하니까.(물론 민사, 형사적 처벌이 필요한 경우 법적절차를 지켜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하고, 그로부터 보상을 받는 것과는 별개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진행될 때 피해자에 대한 치료도 함께 진행됨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상처난 곳에 소금을 뿌려대는 치료가 아닌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치료. 


우리는 독심술을 할 수 없으며 이미 이해가 어긋난 다른 사람의 생각 방식은 아무리 고민해 봐도 알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는 것도 있지만 이 또한 당신이 개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생각보다 인간은 비합리적이며 세상의 많은 일은 인과관계보다 상관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왜 하필 나에게 그런 일이, 왜 그 사람은 나에게 그랬을까, 깜깜한 터널 속을 걷고 있는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 일이 무엇이건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예전에 못이 박힌 곳에 못을 빼도 자국이 남는다 했다. 못이 박힌 마음에 못을 열심히 빼내었다고 해도 가끔은 그 빈 자국이 시리도록 아플 때도 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모두가 그랬듯이. 하지만 그런 자국을 가지고 있는 당신이기에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을 여전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당신의 행복이 중요한 사람들, 당신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어둠 속 당신에게 작은 불빛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당신의 마음속의 평화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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