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은 삶들을 딛고

방마다 고운 얼굴들이

by 박경이


나는 오래전부터 아파트 예찬자였다, 활용론자라고 할까. 이유는 오직 한 가지, 풍경 좋은 터에서 많은 사람들이 햇빛을 고루 나누며 살기에 가장 좋은 주거형태라는 것. 겨울에 깊숙이 쑥 들어오는 남향 햇빛 말이다. 겨울 남향집의 햇빛은 여름엔 절로 물러날 줄조차 아는 황금이니까. 게다가 아파트라는 획일적 형식 안에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음 적고 튼튼하며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많이 지어 원한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햇빛과 공간을 갖는 동시에 넓은 정원과 편리한 시설을 공유하며 누리기를 바랬다. 정치가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일이기 때문에 곧 가능할 것이며 그렇게 나가는 중이라고 믿었다. 오래 그러했다.


내 바람은 거의 실현되었고, 쓸쓸하게도 다른 방향으로 실현되었다. 태양과 바람을 고루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도의 이윤과 자본축적을 위해 최적화된 고효율적 밀집거주양식이 되었다. 괜찮다고 가정되는 삶의 상징물, 명확하게 제시된 미래이자 목표로서의 아파트는 생각할 시간조차 아끼며 밀어붙이고 전진하는 기능성의 극대화에 적합했다. 부의 양극화가 극심할수록 아파트는 각자의 물리적 행복도를 확인하는 척도일 뿐 남향 햇빛도 바람과도 무관했고 황금태양은 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소음만큼은 여전했으니 돈이 소음을 두려워하겠는가. 가난한 사람들이 쓸 햇빛은 여전히 적고 너무나 비싸다. 그러나 아파트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잘 지은 아파트는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돈이 사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아파트로 만들면 되니까 말이다. 그것은 국가가 못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안하고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아파트는 이미 집이 아니라 보증수표가 되어버린 지 오래인데도 그 가능성을 믿고 있다. 머잖아 그렇게 될 거라고, 되어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아파트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아파트가 사람을 선택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을 믿으며 지켜본다.


하여간 그렇게 열망을 담아 지지했던 연립주택 또는 남향 아파트에서 한겨울 태양과 숨바꼭질하며 나도 오래 살았다. 그래서일까 아파트를 팔고 시골집으로 떠나던 해가 종종 생각난다. 유독 더딘 것만 같던 그해 봄을 기억한다. 냉큼 와서 ‘오늘부터 봄이야’ 한 적도 없고 꾸물꾸물 올동말동 그립게 만들어서 더 보고 싶은 게 봄인데도 그러했다. 어느날 문득 꽃나팔 소리 시끌벅적 소란한 게 봄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왔어도 아직 안 온 게 봄이고 안 왔어도 이미 와있는 게 봄인데도 그 봄은 그랬다.


오늘은 봄이 온 줄 알겠다.

작은 모퉁이 카페에서 내다보니 우리 동네는 봄이다.

봄을 보았다.

오가는 사람들 신발에 묻어서 온다.

사람들마다 옷자락에 봄 달고 웃으니 우리 동네 맞나 싶다.

꾀죄죄하던 길바닥은 다정하고 길 건너 꽃집 간판도 향기롭다.

늦게 정들면 안되는데 어쩌나, 시골로 이사가야 하는데.

이 봄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네.


그리고 그날 아파트 마당에서 유난히 훨훨 흐드러진 벚나무 한 그루를 마주했다. 점점이 동글동글 수많은 봉오리들이 일시에 문을 열어 그 찬란함이 실로 대단했으니. 암술수술 비비며 벌·나비 바람을 부르는 합창 사이 분홍빛 웃음소리 간질간질 장난질, 꽃덩이를 치어다보니 향기까지 호르르, 환~한 아이 하나 배에 들어앉을 것만 같았으니.


처음 만나는 세상 같고 다시 못 볼 것만 같은 그 날 오후에 매매계약을 했다. 이삼일 전 늦게 와서 슬쩍 둘러보며 ‘책이 참 많다’는 한 마디만 하고 간 사람이 계약자여서 뜻밖이었다. 혹시 그 날 내가 한 대답이 인연을 맺게 했을까 싶어 반갑기도 했다.

“우리 딸 둘이 여기서 공부하고 대학 갔어요. 책 요정들이 가득 차서 아이들 공부가 저절로 될 걸요.”

그분과 계약을 하면서 대학 간 우리 애들 쓰던 방에 아직 있는 책상과 책장은 두고 가기로 했다. 초등학생용 책도 얼마간 있었던 것 같다. 수많은 책과 만화와 잡지와 영화와 그림과 음악의 속삭임들이 이사 올 아이들에게도 이어지리라 생각하며 흐뭇했던 날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7년 넘게 산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아보며 놀랐더랬다. 이리 단정하고 예뻤던가, 직원들 손길이 새삼 고마웠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누비고 닿은 그들 덕에 편히 기쁘게 살 수 있었다고 거듭 생각했다. 옥상부터 층층이 지하까지 거대 생물 같은 아파트를 살피고 살리던 관리소장과 직원들을 자주 보았으니 말이다. 택배 받을 때 꾸러미 풀어서 나눠드리면 활짝 웃던 경비아저씨들, 정말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며 또 웃는 얼굴이구나 싶었다. 피어나는 기쁨이 닮아서 세 분 아저씨가 헷갈리기도 했더랬다. 이사가 정해진 후 관리실에 탕수육을 한 번 보냈고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랑 떡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봄 왔나 하면 봄 아니 듯, 때 놓치지 말고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인사하려 했으나 못하고 말았다.


“엄마, 진짜 우리 이사가는 거야? 우리 이 아파트 떠나는 거야?”

마침 서울서 내려온 딸들도 집이 팔렸단 말을 듣더니 울상이 되었다. 자주 내려와 귀찮게 한다 싶더니 제 방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는 거였다. 머물러 보고 싶은 거였어. 그날 늦은 밤에 비가 왔다. 베란다문을 닫으며 시골집 빗소리를 상상하려 했으나 할 수 없었던 밤이었다.


우리집, 우리 아파트. 얼마나 닦고 쓸고 문질렀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먹고 이야기하며 웃었던가. 거실 곳곳 엄니 생신상에 둘러앉은 얼굴들. 윷이야, 바가지야, 정다운 목소리들 방울방울 훤하다. 방마다 들락날락 부르고 답하고 부엌에도 하하깔깔 우리집에 왔던 사람들이 스친다. 주문하신 양장피 왔어요, 가스점검 왔어요, 어서오세요~. 옆집 아주머니 부침개 들고 오시네, 생협간사님 먹거리 갖고 오셨네, 감사합니다~~. 현관은 쉴 새 없이 여닫히고 인사 소리는 드높고도 맑다. 별꽃다발 호야꽃 피었다고 명화가 부르고 사람향기처럼 은은한 난초 내음 맡아보라고 찬옥이 베란다에서 부른다. 큰딸의 피아노 소리 위로 방마다 문마다 고운 얼굴 드나들며 미소가 벙글벙글. 아파트를 지었을 손들, 마음들, 철골 놓고 층층이 천정을 누비며 전선을 배치하는 일꾼들 얼굴은 더 훤하다.


무수한 손발의 애씀과 마음을 점점이 느끼다가, 울컥, 나는 얼마나 많은 삶들을 딛고 살았던가! 고마워요, 여러분, 우리 모두 같이 이사 가요~ 시나브로 마음을 거두면서 작별은 시작되었었다. 내가 알았던 몇 가지 봄은 지닌 채로 놓아두고 새로운 봄이 시작되었다.

기다리던 봄은 만들어야 하는 나만의 봄이 되어갔다.

올해도 내가 만든 봄 위에 만들 봄이 오고 있다.

엎드려 있던 질투처럼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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