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그리고 삶의 목적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에 의해 결정지어지나

by Minari

제목을 두고 고민했다. 지난 주제에 '삶의 질, Quality of Life'를 이야기 했기 때문에 제목을 통일하는 느낌으로 삶의 목적, Purpose of Life로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문득 삶의 목적에서 성별을 빼놓을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라는 장소를 알게 되자마자 기다린 듯이 내 한국과 미국에서 업계 경험, 그리고 국가간 차이를 공유하는데에 주로 글을 쓰는 시간을 보냈다. 좋은 경험을 나혼자만 할 수 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기에 엄마로서의 삶이나 나 자신 (여자)로서의 관점은 담아낸 적이 없던 것 같고, 지난 번 삶의 질을 이야기 할때서야 문득, 아 내 자신의 정체성이 삶의 질과 목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구나- 를 깨달았다.



브런치에서는 동료 엄마들을 종종 마주할 수 있다. 아, 이렇듯 아름답게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니 얼마나 끼가 많을까 생각도 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상상해 보기도 한다. 나는 21개월 딸을 둔 엄마다. 21개월의 엄마도 new mom이라고 쳐주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직도 자식이 있다는 사실에 매순간 새로우니 그렇다 하겠다. 엄마가 되기 전에, 아내가 되기 전에, 나의 삶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인간'으로서의 사명에 가까웠다.


지구에 발을 딛는 그 순간 부터, 어린이 - 학생 - 직장인까지 나의 목적은 '성장'이었고 그것에 대한 목적은 분명 '성공'에 가까웠으리라 생각한다. 감사하게 여기는 점이라면 자라면서 부모님께서 단, 한 번도 '여자는 이래야해' '남자는 이래야해' '너는 여자니까 이래야해' 라는 류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크면서 생각을 안해본 주제가 되었고 심지어는 대학생, 직장인이 되어서도 남자/여자 비율이 거의 동등한 업계에 있어서 그런지 여전히 나의 삶의 목적은 '성장' 이나 '성공' 쪽에 가까웠다. 성별이 삶의 목적과 관계있단 생각은 해본적도 없었고, 내가 누구를 남자라는 이유로 다르게 보지 않는 것처럼 상대방도 그럴 것이라는 암묵적 아이디어(?)가 있었다.


물론, 삶의 목적은 무수히 많은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자라난 환경이 될 수 도 있고, 업무 환경이 될 수 도 있다. 나도 한국에서 일 할 때와 미국에서 일할 때 '성장'을 생각하는 관점이 달라진 것을 분명히 느끼기에, 경험상 환경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환경에는 내 주위 '사람'도 포함된다. 소위 말하는 '가정환경'을 예로 들 수 있다. 초등학교 때 가정통신문에서나 봤을 법한 '가정환경'이 인간의 삶의 목적에 정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마치 내가 부모님께 성별의 이야기를 못듣고 자란 것처럼, 또 지구 반대쪽에는 '여자라면' 혹은 '남자라면' 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부모님과 사는 형제, 자매님도 분명 있을 것이다. 가정환경은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사고는 자신의 성장과 발달 단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결혼' 후에는 어떤가? 당신은 당신이 자라왔던 '가정환경'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인 '뉴 가정'을 꾸린다. 설립 멤버는 남편 혹은 아내이다. 내가 여자니까 여자를 예로 들고자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가정할 시나리오는 어쩌면 조금 편협된 사고를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쓰기 5분전에 슬픈 전업맘님의 글을 보고 와서 더 그럴 수 있으니..양해를 구해야겠다.


방금 전 읽고 온 글 속에는 남편분께서 '그럼 내가 돈 버는데' '그럼 내가 가장인데' '난 밖에서 힘들게 일하는데' 등의 말로 아내분의 힘든 하루를 가치없게 만들어 버리셨다. 내가 남편 분의 말을 보면서 참담함을 느꼈던 이유는, 나 또한 그말을 남편에게 들어본 적이 있기 때문일거다. 첫 번째 글에서 말한 것 처럼, 나는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매우 유명한 기업을 다녔고 다니고 있고,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육아 휴직 겸 커리어 체인지를 위해 '잠깐' 쉬고 있을 때였으며, 그 전년도에는 남편이 공부를 한다고 '잠깐' 쉬었기에 나는 어떠한 죄책감도 가질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저런 말을 살면서 처음 들었을 때 나의 패배감이란..삶의 목적은 커녕 삶의 이유조차 찾을 수 없게끔 만드는 기분이었다.


정말 별거 아닌 몇마디 말인데, 어찌나 사람을 서럽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내가 돈을 벌면서 남편이 쉬었을 때엔 나는 정말 한 번도 저런 말을 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상대방은 그 말을 할 수 있는건지, 모멸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여자'로 태어난 것이 '삶의 목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조금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됨으로 인해서 아이에게 '도리'를 다하고 싶었고, '사랑'을 주고 싶었고,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첫 일년간 '아이'가 나의 '삶의 목적'이 되었음을 느꼈다. 그 순간 만큼은 나의 성장이나 성공이 아닌, 아이의 건강과 행복이 '나'라는 존재보다 앞서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조차도 나는 '돈'으로 판단받아야 했고 '사회적 지위'로 비교받아야 했고, 일을 쉬고 아이를 키우는 단 일년 만큼은 '전통적인 와이프상'에 부합해야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통적인 와이프상? 미안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식모 + 보모 + 잠자리 상대 아니던가? 그 외에 다른 가치가 있나? 아내가 일을 안하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 본인이 퇴근했을 때 집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고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고 아내가 언제나 '수고하셨어요, 쉬세요'를 입에 달고 살며 본인 퇴근 후의 삶을 건드리질 않길 바란다면 그게 위의 공식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하기엔 너무나 큰 '희생'이다. 세 가지의 직업을 함께 하고 있으면서 돈 한푼 못받고 무시당하는 삶이라니..그리고 무엇보다 그 삶을 일년동안 살아본 경험자로서 감히 말하자면, 아직 '여자 팔자 뒤웅박(?)'이라는 조선시대ish 아이디어가 통하는 사회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겠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지옥과 같은 육아휴직 시간이었고, 예전에 육아휴직하는 직장 선배들을 보면서 부러워했던 내가 너무 죄송하게만 느껴질 지경이었다. 작년부터 업계로 돌아와서 신나게 일하면서 느끼는 점인데...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일터로 돌아오지 않았어도 밥은 굶지 않았을 거다. 일터로 돌아오지 않아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을거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겠지. 그런데 나의 '삶의 목적'을 완벽하게 잃었을 거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왜 존재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했을테고 나의 파트너가 자신의 성장과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괴했을거다. 부럽고, 후회했겠지.


물론 세상에는 훌륭한 인성을 가지신 남편분들도 많다. 아내가 휴직을 했든 퇴직을 했든, 다들 돈버는 유세를 하는 건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남편분들 곁에는 행복한 아내분들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또 어떤 아내분들은 남편분들이 다소 불평하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분들도 있을거다. 결국 케바케고, 나처럼 이말에 큰 타격감을 늘 입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내가 단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낳았어도 '삶의 목적'을 잃으면 힘들어 진다는 거다. '목적'이 꼭 나처럼 '자아'일 필요는 없다. '목적' 이 아이가 되든 남편이 되든 본인이 행복하기만 하다면 된거다. 그렇지만 그 '목적'이 부재할 때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방향성을 잃는다. 지도 한 가운데서 길을 잃는거다. '목적'이 절대 고상할 필요도 없다. 물질적일 수 도 있고, 기괴할 수 도 있다. 그러나 목적성이 있을 때 사람은 서 있는 길 위를 계속 걸을 수 있는 힘을 받는다.


지금은 잘 기억 안나지만 25-30시간 진통해서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았다. 출산 당일 느꼈던 고통과 느낌은 또 다른 챕터에 이야기하고 싶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그 때 그 순간 처음으로 내 딸이 딸인 것이 너무 미안했다는 점. 물론 아이의 선택이지만 미래에 그런 고통을 겪을 수 도 있다니, 그런 가능성을 가진 신체로 태어났다니, 기적이자 축복이면서 또 그 반대가 아닌가. 지금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21세기에도,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성별은 어떤 측면에서 삶의 목적에 영향을 미치는 건지도.


지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리고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여전히 그 어떤 실망감과 패배감없이 삶의 목적을 흔들림없이 살고 있다면, 부러운 당신! 당신에게 한 수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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