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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Feb 08. 2022

당신의 호수에도 봄이 왔나요

소설 <호수의 일> 후기

어떻게 써야  책을 온전히 전할  있을까. 그런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영원히   없을 것만 같아 떠오르는 마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기억으로 얼개를 짓는다.



 작가는 예리하게 청소년의 삶을 그린다. 섬세한 묘사와 생생한 문장으로 독자를 다시 고등학교의 한 교실에 앉힌다. 청소년을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들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서 나, 호정의 몸이 되어 호수의 저 아래에 있는 마음과 우울의 모양을 그린다.  '호수의 일'은 나의 과거와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마음 저 아래에 있는 그 아이의 존재를 자각하게 한다. 잊고 싶은 모든 날을 기억하게 한다. 그 아이는 분명 내 마음 저 아래에도 있었다. 낯설고 몹시도 추운 그곳에서 호정을 삼키려 했던 그 아이. 나도 그 아이가 가진 파괴력을 목도한 적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부모의 사업 실패로 호정은 그 빚과 함께 할머니 집에 맡겨진다. 거기서 자신이 처한 처지를 먼저 배우고 말을 할 수 있을 때 즈음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배운다. 말보다 마음을 먼저 배우게 되는 아이들이 있다. 눈치가 해낸 일이다. 말로 설명하기 전에 먼저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말을 배우다 그 마음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을 때, 또 비참해졌을 것이다. 그것이 어린 호정이 느낀 수만 번째 비참함이었을 것이다.



  흉터가 되어 만져도 더 이상 아프지 않더라도, 바라만 봐도 아픈 상처가 있다. 빚을 갚느라 못다 이룬 화목한 가정을 실현하려는 부모의 뒤늦은 노력은 흉터를 가진, 어쩌면 아직 흉터가 되지도 못한 상처를 가진 나에게는 모순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의도가 없더라도 그 안에는 어느 정도의 진실이 존재한다. 호수 저변의 응어리가 녹지 않은 아이에게 '행복한 가정'을 강요하는 것은 어른의 이기심이다. 존재하는 상처를 억지로 묻고 묵인하라 하는 요구다. 관계의 회복은 하나, 둘, 셋 지금부터 시작 ! 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호정의 부모가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호정이의 마음을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호정이가 그 마음을 굳이 다 내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은, 호정이도 몰랐을 것이다.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 있다. 사람은 어째서 자신의 마음을 모를까. 그 무엇보다 온전한 제 것인데. 모든 것을 사춘기로 설명하려는 것은 회피다. 괴로웠을 것이다. 모두가. 그렇지만 가장 힘든 것은 호정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녀가 가장 힘들었다 말해주고 싶다. 지나온 과거를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미움은 자신을 또 집어삼켰을 것이다. 나는 그런 종류의 분노를 안다. 응어리진 마음에 시간이 쌓이면 그 마음을 해체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원망할 사람이 없다. 악인이 없다는 점이, 그러니까 호정의 부모를 마냥 원망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슬펐다. 부모는 사업을 확장하다 한 번의 실패를 했다. 굳이 따지자면 이 실패가 부모의 가장 큰 실수이자 이 비극의 시작이다. 호정은 그로 인해 할머니 댁에 머물렀다. 그곳엔 호정의 부모가 진 빚을 갚느라 희생한 사람들이 있다. 평소엔 잘해주다가도 답답한 순간엔 불쑥불쑥 원망이 올라온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그치만 어른이라면 좀 더 달랐어야 한다. 호정은 그런 상황에서 상처를 받는다. 부모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공간에서 자란 호정은 자신과 부모를 동일시한 채 부모를 향한 비난을 먹고 자랐다. 그 상처를 받고 어린 호정은 사춘기라 부르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못다 준 사랑을 주기 위해 부모는 최선을 다한다. 그뿐이다. 악의는 없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그 시간 속에서 상처를 받았다. 시간이 지나 굳이 다시 들추는 것이 무의미하고 민망할 정도의 사소한 행동에서의 상처라 할지라도 크고 작음, 중함과 사소함은 중요하지 않다. 거기 호정이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꽝꽝 얼은 호수가 고요함이라 믿고 살던 호정 앞에 은기가 나타난다. 그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그 단단한 호수의 아래에서 둘은 서로를 알아보고 손을 마주 잡고 온기를 나눈다. 숨긴 자는 숨긴 마음을 알아본다. 무언가를 숨겨본 사람만이 비밀을 가진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은기를 향한 사랑은 아마 동시에 자신을 향했을 것이다. 비슷한 온도를 가진 사람은 서로를 너무 덥히지도, 춥지도 않게 한다. 맞잡은 두 손 사이에 비슷한 온기가 순환한다. 그 다정함과 풋풋함이 웃게 한다. 그러나 그 둘은 결국 맞잡은 두 손을 놓는다. 스스로 놓은 것이 아니니 놓아진 것일까. 호정은 은기가 지녔던 물건을 모두 버림으로써 그와의 시간을 버리려고 하나, 과거는 그렇게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아리도록 잊고 싶은 기억은 더더욱. 사랑한 일은 그저 지나가 버리지 않는다. 눈처럼 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눈 내리던 날의 기억마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그때 호정의 호수에서 깨져 나온 얼음조각이  주위에 있는 사람을 할퀸다. 저 호수 아래 잠자고 있던 자격지심이 갑자기 내가 되어 아무 잘못 없는 이를, 굳이 따지자면 나의 아픔을 보듬어주려는 것이 잘못인 이를 할퀸다.



그러나 호정은 호수의 저 깊은 아래로 끌려가지 않는다. 캄캄한 어둠 속으로, 어쩌면 다시 나올 수 없는 저 깊은 어딘가로 가게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호정은 반드시 나아질 것이다. 악의 없는 다름도, 그래서 때론 공격이 되기도 하는 서로의 처지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호정은 잠시 아픈 것이다. 나쁜 게 아니라, 한심한 게 아니라. '잠시 아픈 것'. 이 사실을 정확히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마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어 가장 힘든 것은 호정일 것이다. 이름 없는 마음.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마음은 늘 인간을 지독하게 괴롭힌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을까.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대체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랑으로 채워지기도 하는 거라서. 그래서 은기가 없는 호정의 내일이 걱정되지 않는다.


얼어붙어 고요한 호수가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살아있는 움직임이, 온도가 있다. 은기와의 만남이, 그 끝이, 단단히 얼어있던 표면에 금을 냈다. 다시 겨울이 올지라도 봄이 온다. 계절은 순환한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끝내 호정의 호수는 녹을 것이다.



슬픈 시절을 가진 모든 사람이 자신의 호수를 들여다볼 수 있기를.


머지않아 올봄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호수의 일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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