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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Jul 13. 2022

헤어질 결심

은 사랑하는 이에게 주어진 특권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이미 마음이 밀려오는 파도에   잠식되었다. 여러 번의 파도에 쓸려 뒤죽박죽으로 엉켰다. 영화의 테크닉과 메타포 이야기도, 스토리 이야기도, 영화를 관통하는 사랑 이야기도 해야   같아 손가락이 바쁘다. 곱씹을수록  말이 켜켜이 쌓인다.  늦으면  쓰고 싶은 마음에   없을  같아 뒤죽박죽인 마음을 그대로 옮긴다.



사랑이란 너무도 다른 사람이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질적인 대상들이 만나 묘한 합을 이루는 장면들이 이상하게 계속 기억에 남는다.



먼저 가장 인상 깊었던 번역기. 번역기는 서래의 마음을 심장으로 번역해 해수에게 전한다. 내 입이 아닌 기계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마음, 아니 심장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직관적으로 표현되는 번역체만이 줄 수 있는 낯섦과 감동이 있나 보다. 낯설어서 계속 기억에 남는다. 심장과 마음. 전자일 때는 기괴했으나 후자일 때는 너무나도 사랑의 말이 된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배치된 낯선 단어들이 이렇게 강하다. 이질적인 것이 만나는 건 늘 신선하다. 심장이든 마음이든 그건 다 사랑의 말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좋았다. 그게 무슨 상관일까. 마음을 준 사람은 심장도 내어줄 수 있지 않을까.



서래와 해준이 한국어로 대화를 나눌 때 이러한 이질감은 극대화된다. 사극의 느낌이 다분한 말투를 쓰는 서래와, 서정적인 단어로 문장을 이루는 해준의 만남. 텍스트로 묘사하니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이 둘은 그런 서로의 표현안에서 묘하고 또 편안해 보였다.



"슬픔 앞에서 물에 잉크가 번지듯 서서히 반응하는 이가 있다면, 사랑 앞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천천히 젖어드는 사람에게도 마침내 파도는 친다." 한 기자님이 이 영화를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이 나를 영화관으로 향하게 했다. 엔딩 장면을 보며 깨달았다. 천천히 젖어드는 사람에게도 그의 생애를 뒤흔들 파도가 치는구나.



나를 미제 사건 옆에 평생 붙여놓고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 기괴하면서도 가장 날 것의 사랑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그 남자가 형사이기에 할 수 있는 날 것의 방식. 그런 방식으로 사랑하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그 사랑을 관통하는 두 사람의 감정이 가지는 무게가 충격이었달까.



해준은 서래에게 자신이 언제 사랑한다고 했느냐 질문한다. 의식하지도 못한 채 해준은 서래에게 계속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초밥으로, 밤의 잠복으로, 그녀를 향한 의심으로. 바다에 던져버리고 아무도 찾지 못하게 하라는 그 말이 서래에게는 어떻게 사랑이었을까. 해준에게 경찰로서의 자부심은 생을 지탱하는 중요한 가치다. 살인 사건이 '재미'있다는 그의 행동은 이러한 자부심을 보여준다. 여자에 눈이 팔렸다는 자책도 경찰 일이 그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지를 드러낸다. 그런 그는 그녀를 자신의 세계를 붕괴한 가해자로 지목하지 않는다. 서래에게 당장 화풀이하고 서래의 삶을 망가뜨리고 '참교육'하기를 택하지 않는다. 파멸로 향하지 않는다. 대신 해준은 자신의 사랑을 인정한다. 자신을 꼿꼿하게 서게 한 그 자부심이 결국 사랑에 졌음을 인정한다. 그 인정하는 마음이, 그래서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아무도 이를 알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 '마침내' 다 사랑의 말이 되는 거다. 해준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내뱉지 않아도 서래는 계속 듣는다. 그 문장을, 그 순간을.



그럼에도 이를 수십 번 들었을 서래는, 그 시간 안에서 해준의 사랑을 눈치챘을 서래는 그 남자를 그의 세상이 붕괴되기 전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자신을 파괴하는 방법도 서슴지 않으며 말이다. 해준은 이렇게 사랑하고, 서래는 저렇게 사랑한다.



사랑이 무엇이라 답을 내려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극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사랑이란 무엇인지 계속 질문하게 하는 영화다. 다시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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