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면 되는 줄만 알았지
사랑
연애
결혼
읊조리기만 해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단어들.
이 세 단어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포근한 이불속에 감겨있는 느낌과 함께 예쁜 벚꽃이 떠오르고, 환하게 웃고 있는 나와 누군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연애를 시작하고, 환하게 웃을 날만을 떠올리며 결혼을 한다.
그런데 정말 그렇던가?
포근할 줄만 알았던 사랑이 얼음칼처럼 차갑고 매서워지기도 하고, 예쁜 꽃잎이 흩날리는 풍경이어야 할 연애가 웬일인지 민둥산에 홀로 남겨진 나무처럼 외로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결혼은...
차라리 드라마와 영화 대본처럼 나의 연애, 나의 결혼, 그리고 사랑이 예측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피엔딩이라는 결론을 보장받고 시작한다면 힘든 순간도 힘들지 않게 느껴질 텐데 말이다.
오히려 그런 순간에 각 잡고 팝콘을 먹는 여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 더 이상 사랑이 아니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넌 대체 나 왜 만나? 사랑하긴 해?"
"야, 사랑하지도 않는데 내가 왜 널 만나겠냐?"
"사랑한다면서. 개 뻥치네."
"말 좀 이쁘게.. 아, 아니다 됐다. 미안하다, 됐지?"
"연락 좀 자주 해달라고.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야?"
"아니, 나도 내 시간이 있는데 어떻게 핸드폰만 붙잡고 있으란 거야. 어?"
"사랑하는 사람하고 연락하는 게 네 시간 빼앗는 거였어? 그게 사랑이야? 어?"
"그만하자."
분명 우리는 사랑하는 감정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사랑이란 이름을 두고 싸우고 있다.
나도 널 사랑하고, 너도 날 사랑할 텐데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사랑은 되게 따뜻하고 포근하고, 안정감이 들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이해할 수가 없다.
인생사가 원래 다 힘들고 그런 거라지만, 사랑까지 꼭 이래야만 하는 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니면 내 사랑만 이런 건가?
내가 과도한 욕심을 부렸다면 수긍이라도 할 텐데, 연인에게 내가 바란 건 그렇게 큰 요구도 아니었다.
'그냥 사랑하면 다 되는 거 아닌가?'
한 때는 사랑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우리가 아무리 달라도 모든 게 이해될 것이라는 맹목적으로 믿었었다. 사랑 앞에 계산기를 두드리지 말자고. 숭고하고 고결한 사랑을 두고 사람의 마음을 저울질하는 그런 얄팍한 행위는 있을 수 없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렇던가.
호감으로 시작한 우리는 함께 사랑을 향해 가고 있는 게 분명할 텐데도, 이상하게 너와 나의 사랑은 각자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말하는 사랑과 네가 말하는 사랑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매번 같은 이유로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사랑으로 인해 웃다가 우는 나와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왜 사랑을 하면서도 이렇게 힘들까? 과연 사랑을 하는 게 맞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계속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모두가 완벽하지 않은데, 내 마음을 온전한 사랑으로 채워 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이는 그 누구와도 동일할 수 없다.
많은 연인 관계나 부부 관계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하지 않던가? 바로 성격 차이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니 말이다. 그러니 각자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힘들지 않은 사랑을 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전제였음을 인정하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
사랑을 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을 통해 사랑을 연습하고, 배워가는 것.
그리고 나를 먼저 사랑할 것.
나를 사랑해 본 적 없는 이가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하다.
즉, 나의 세계를 이해하지 않은 채로 타인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한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우리의 삶은 해피엔딩을 정해놓은 각본이 없다. 계속해서 살아가야만 한다.
때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 상처에 대한 무서움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연습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야 함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도, 결혼 후에도 계속해서 사랑을 연습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소통에 대한 책을 읽기도 하고, 시간이 되면 강연을 듣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남편을 자주 관찰하고, 질문을 던져보고, 답을 듣고 내 세계관과 대조해 보며 그렇게 연습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연습은 확실히 나와 너의 사랑을, 우리의 사랑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나는 우리들의 관계와 모든 사랑이 그저 피상적인 데에 그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거창한 형식, 숭고한 타이틀은 그저 사랑을 더 힘들게 만들 뿐이었으니까.
다만 함께 사랑을 연습하고 배워가는 사람들이 곁에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