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쓰다
인문학 서적을 읽지 않는 사람도 가끔은 꽤 통찰력 있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산업화로 외주화된 자급자족 영역의 노동’이라는 표현은 몰라도 친구들과 술을 먹다가 이런 말은 할 수 있다.
“식당, 택시, 카페, 세탁소, 이런 게 다 돈 주고 부리는 하인들이지 뭐.”
(실제로 내 지인이 했던 말이다. 갑질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고, 모두가 정신적으로 귀족이 된 시대라는 비아냥을 담고 있었다.)
<세탁기의 배신>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하인들이 외주화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시대의 하인들 중에는 집안의 붙박이가 되어버린 슬픈 존재들도 있는데, 그것은 ‘기계’들이다. (그러니 슬픈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내 기분일지도 모른다.)
이 기계들을 ‘하인’이라고 칭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근거 중에 하나는 그것들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가 사회경제적 위치를 드러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들려오는 이야기에 내 동창생 중 하나는 집에 건조기와 식기세척기, 드럼세탁기가 없었으며, 그 때문인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너희들 집에 가전이 뭐뭐 있어?”
그녀는 아직도 통돌이 세탁기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에게 질문을 한 것은 ‘서베이’를 하려는 게 아니라, 하소연의 밑장을 깔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가 정말 세탁기를 바꿀 돈도 없이 찢어지게 가난했을 수도 있지만, 내 주변 4인 가족의 40대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면 대개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집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상당 부분 젠더 평등 의식과 맞물려 있기 일쑤였다. ‘전기하인’은 없어도 TV는 거대한 것을 가지고 있기 일쑤였다. (아니, 이 집 TV 보소. 스크린도 크고, 로고도 삼성이다! 이 비싼 걸 샀는데, 식기세척기는 안 사셨네.)
대개 TV는 남성 영역의 가전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TV가 크고 삐까번쩍할수록 그 집 남자의 목소리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만약에 드라이빙 시뮬레이션 게임기까지 있다면, 그 집 남자는 ‘에헴’ 좀 하고 산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어느 영역에나 주류가 있으면 비주류, 즉 예외적 존재들이 있다.)
예상하다시피 통돌이 세탁기에 건조기 없이 살고 있는 그녀는 근래에 보기 드문 며느리이다. 시부모 생신상을 손수 차리고, 돈이 아쉬워 아르바이트 일자리에 나갔다가도 집안꼴이 개판이라며 남편이 화를 내면 재깍 그만두며, 자주 시댁의 일꾼으로 불려 다녔다. (나는 그렇게 못 산다. 그건 내 시대 의식에 맞지 않다.)
사족) 어쩌다 보니 내가 통돌이 세탁기 비하 발언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나는 한국형 세탁기라 할 수 있는, 물 많이 쓰고 세척력 갑인 그 세탁기를 좋아한다. 이놈의 아파트 살림살이가 워시타워 아니면 건조기를 넣을 공간이 안 나와서 통돌이를 처분했는데, 그때 위궤양이 올 뻔했다. 드럼아, 빨고 있긴 한 것이냐? 빨았으면, 제대로 헹구긴 한 것이냐? 매번 의심함.
주위를 둘러보면, 요즘은 건조기와 식기세척기까지 보편 가전이 되어 가는 모양새이다. 건조기와 식기세척기는 확실히 가사노동 시간을 줄여주긴 한다. 두 가전보다 이르게 한국 가정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던 김치냉장고로 말하자면, 용도가 한국스러운 만큼 생활의 변화도 거의 주도하지 못했다. 김장철에 불려가야 하는 며느리들을 더 옭아맸다고나 할까? (김치냉장고도 있는데, 이번에는 김장 좀 많이 담아주마. 올 거지? - 담아‘주신다’면서 왜 오라고 하시나요? 어머님. 그냥 택배로 부쳐 주세요.)
우리 집에 식기세척기를 들일 때, 내가 한 농담이 있다.
“당신에게 선물할게. 잇츠 포 유.”
응. 남편 니가 사용할 거야. 설거지에 책임감을 갖도록 해. 이런 뉘앙스를 멘토스 떨어뜨린 콜라처럼 뿜어냈다. 그런데 진짜로 요즘 설거지는 그가 (거의) 다 하고 있다. 직업 특성상 집에 없는 날이 많아서 그렇지 집에 있는 날에는 (거의) 그분이 하신다. (거의를 빼고 읽으셔도 무방함. 0.0000000001과 0의 분별 같은 느낌.) 농담이었는데 농담이 아니게 된 것이다.
건조기를 들인 뒤에는 삶이 더 널널해졌다. 나는 정신머리가 가출할 때가 많아서 빨래를 해놓고 잊기 일쑤였는데, 그 이유는 ‘좀 있다 널어야지.’ 하고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빨래건조대를 펴고, 빨래를 한 장 한 장 널고, 그러려면 마음먹고 빨래를 꺼내러 가야 했기 때문에 ‘좀 있다가…’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반복했다. 그러면 일이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눅눅한 채로 세탁기 속에서 방치된 빨래에서 냄새가 나니까 다시 빨래를 돌리고, 또 잊고, 또 돌리고, 또 잊고…. 이 무한의 연쇄를 끊는 방법은…… 그냥 널고 페브리즈 뿌려야겠다. 그렇게 향긋한 걸레 냄새가 나는 외출복이 완성된다.
건조기(가 결합된 드럼 워시타워)를 들인 뒤로는 경쾌한 음악이 울릴 때 아랫구멍의 빨래를 꺼내 윗구멍으로 옮기고 도망치기만 하면 되니 향긋한 걸레 냄새와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시스템은 남편을 가사노동에 동참시키기 매우 좋았다. 나는 키가 작은 편인데, 덕분에 감사하게도 워시타워 위층 건조기 속의 옷을 꺼내기 힘들다. 건조기 속의 옷은 그냥 놔둬도 냄새가 생기지 않으니 ‘이대로 키 큰 사람을 기다려라. 건조기야.’ 하고 돌아서면 된다. 물론 우리집 그분은 건조기가 없을 때에도 세탁기의 부름에 나보다 빠르게 응답하곤 했지만. (아마도 향긋한 걸레 냄새에 대한 자구책이 아니었을까?)
가전의 구비 여부가 남편의 가사노동 참여율과 직결된다면, 할부로라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이 모든 나의 주장은 늙은 X세대(왜 내가 X세대냐. 인정하고 싶지 않다.)의 것이다. 요즘 젊은것들은 전기하인에 기대지 않아도 공정하고 공평하게 잘 맞춰 살더라고. 아니면 아예 결혼을 안 하던지.
사실 4인 가족씩이나 되는, 이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대가족인 특이집단이 아니라면, 전기하인에 기대서 사는 삶을 자꾸 권장할 일도 아니다. 혼자 사는 살림이라면 걔들을 더 들이는 게 일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놈들은 일을 돕는 것 같은데 안 돕는 답답한 면이 있다. 전기하인은 무능한 척하여서 노동 대비 고임금을 빼먹는 정년보장 피고용인에 가깝다. 가전을 구입할 때 드는 비용도 엄청나지만, 거기에 전기세와 수리비, 전용 세제 등의 소모품까지 유지비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이놈들이 얼마나 일을 시원찮게 하느냐면, 식기세척기는 밥풀과 고추장 양념 같은 것을 잘 씻어내지 못해서 항상 애벌 세척을 해서 넣어줘야 한다. 세제 없는 물 설거지를 해서 차곡차곡 각도를 맞춰 넣어줘야 제대로 일을 한다.
이게 어디냐, 20분 동안 할 일이 5분으로 줄었지 않나, 하며 처음에는 좋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제대로 설거지 안 된 결과물을 제법 마주하게 됐고, ‘식세기 님’이 무난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연구하게 됐고, 그 환경을 제공하는 보조자로서의 내 역할에 집착하게 됐다. 그 결과, 나는 물 설거지를 하며 이렇게 중얼거리리고 있었다.
“이건 뭐, 식세기가 나를 돕는 건지, 내가 식세기를 돕는 건지.”
식세기 님. 이번에는 통과입니까? 제가 잘 돕고 있는 거 맞지요?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장시간 외출을 한 날이었다.
이 시대의 첨단 사물인터넷 시스템은 우리 전기하인들이 일을 잘하나, 놀고 있거나 불평하며 파업에 들어간 것은 아닌가, 늘 감시하고 있다. 나는 고용주답게 핸드폰에 앱을 깔아놓고 세탁기와 건조기에게 실시간 보고를 받고 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한 보고가 줄을 이었다. 세탁기가 일을 시작했다더니, 곧 멈추고 건조기가 일을 시작하더니, 또 건조기가 멈추고, 또 세탁기가 일을 시작하고, 세탁기가 일을 끝내고 건조기가 일을 시작하고, 건조기가 멈추었다. 세탁기가 일을 시작한다는 보고만 4번 정도 받았던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남편이 이불장을 뒤집어서 묵은 빨래를 해치우나?’
그러나 그것은 나의 바람이 만든 판타지일 뿐,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기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랬더니 한숨과 함께 울화통을 터뜨리는 남편이 나타났다. (청각이 시각화되는 경험.)
일의 전개를 간단히 요약하면, 그는 AI 전기하인의 노예가 되어 하루종일 워시타워에 봉사해야 했다. 통세척을 해라, 통세척 하는 동안 건조기 사용은 안 된다, 건조기 가동 불가이다, 그래서 통세척을 멈추고 급한 빨래 건조부터 했더니, 통세척이 리셋되고…, 다시 처음부터….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한숨을 쉬었다.
“으이그. 나 같으면 전원 껐다 켜고 통세척이니 뭐니 그런 알람 무시해. 그거 꼭 오늘 안 해도 되잖아?”
글이 산으로 가기 전에 마무리 해야겠다. 마무리로 이 시대의 전기하인을 부리는 고용주답게 나도 악덕 고용주 목소리를 한 번 내 보련다.
“전기하인에게 일을 시키는 것도 노하우가 필요한 겁니다. 만만한 일이 아니에요. 그놈들이 얼마나 다루기 까다로운데요. 아주 비싼 (노)동력인데, 대기 시간 제외하고 일하는 시간만 따져 보면 하루 4시간이 안 넘어요. 대체로 하루 두어 시간 일해 놓고 멍 때리고 있죠. 게다가 고용주한테 이래라저래라 하기 일쑤예요. 자칫 자기들이 주인보다 똑똑하다는 걸 눈치채기라도 해봐요. 누가 누구에게 일을 시키는 건지 알 수가 없다니까요. 그래도 입주 (노)동력이니 불평하기 힘들어요. 요즘 그런 일꾼을 구하기가 쉽나요? 열두 살짜리 아기 식모들을 부려 먹었던 옛 어르신들이 부럽군요.”
이런 말투를 써보니 어쩐지 특권 의식이 생기는 것 같고 나도 귀족이 된 것 같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세탁기 아랫구멍에 손을 넣어 윗구멍으로 옮겨주러 가야겠다. 내가 글을 쓰든 말든 눈치 보지 않고 알람을 울려준 세탁기 덕에 타이핑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잊기 전에 도와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