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창작 강좌와는 다른 형태였다. SNS 메신저를 이용해 과제를 검토하고 피드백을 전달하는 형식이었다. 형식이 독특해서 일반 대면 창작 강좌와 다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청소년 대상으로 논술을 지도하고 외국인들의 한글 작문을 지도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픽션 창작을 지도하는 경험은 처음이었지만, 대학원에서 합평 수업을 들었고 수료 후에도 한동안 합평 모임을 계속했기 때문에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글을 글로만 지도하는 일은 예상보다 성가신 일이었다. 눈빛, 어조, 표정, 기타 등등의 비언어적 소통 수단을 제거해 버린 채로 오로지 '문자'로만 상대와 소통한다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절감했다. 덕분에 해당 강좌를 맡은 동안 나도 많이 성장했다. 평을 쓸 때는 문자 자체가 가진 질감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동시에 비언어적 보조 수단이 없으니 오해의 소지를 최대한 제거하는 방향으로 문장을 작성해야 했다.
프로젝트가 없어질 때는 조금 아쉬웠다. 이제 막 매체에 맞는 스킬이 생길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인생사는 만나면 헤어지게 되어 있고, 프리랜서들의 인생이란 그 주기가 독하게 짧아 만나는 순간 헤어짐을 대비해야 하는 것을.
프로젝트가 끝나고 되돌아보니 일을 맡았던 첫달에 버벅대던 내가 떠오른다. 세상일이 참 묘해서 그 달에 가장 많은 수강생이 있었다. 가뜩이나 처음이라 허둥대는 '리더(프로젝트에서 강사를 부르던 명칭이다.)'는 수강생 한 명 한 명 세심히 살펴줄 여력이 없었다. SF 쓰기 왕초보반이었으니 수강생도 왕초보, 지도자도 왕초보인 채로 굴러간 셈이었다.
그 달에 잘 못 챙겨줬던 수강생들, 그리고 그 다음달, 또 그 다음달...... 왕초보 반이라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엄청난 필력을 보여줬던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다들 아직도 쓰고 있을까? 고쳐쓰고 새로 쓰고 계실까?
사실 글쓰기라는 건 다른 기예와 다르게 선생의 영향이 크지 않은 편이다. 선생이 챙겨주고 안 챙겨주고와 상관없이 출중한 사람은 출중한 글을 쓰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다. 비비언 고닉, 조지 손더스, 로버트 맥키, 어슐러 르 귄에 이르기까지 작법을 지도했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말들을 남겼다.
'쓰는 방법을 지도하는 일은 어렵다. 어쩌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읽는 법을 지도할 수는 있다. 잘 읽는 법을 배우면 잘 쓸 수 있다.'
그래서 작법서에는 훌륭한 글들의 예문이 잔뜩 등장한다. 먼저 읽고 배우라는 뜻이다.
나처럼 읽기만 하며 허송세월하지 않는다면, 읽기는 최고의 글쓰기 선생이다. 읽은 뒤에는 흉내내서 써보고 비판하며 써보아야 한다.
위의 문장을 타자치는 속도와 같은 속도로 자괴감이 밀려든다. 이런 말은 비비언 고닉, 조지 손더스, 로버트 맥키, 어슐러 르 귄 정도 되어야 할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내가 이런 조언을 할 자격이 되나?
창작을 지도하는 내내 밀려드는 자괴감도 그랬다.
내가 이런 평을 할 자격이 되나? 나부터 번듯한 뭘 써야 하지 않나?
인생은 부끄러워 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부끄러워질 일들을 만들며 부끄럽지 않게 될 날을 꿈꾸는 여정이다.
그래서 또 일을 쳤다. 소설가가 덜 된 상태로 소설가가 되었다는 에세이집에 참여한 것이다. 이 책이 나올 때쯤엔 '나는 소설가'라 외쳐도 부끄럽지 않은 소설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지.
야속하구나. 시간 참 빠르다.
훌륭한 분들이 많이 참여했으니 나는 숟가락 얹어두고 상 밑에 엎드려 기다려야겠다. 이것도 겸상이라면 겸상.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인생의 계단에는 순서가 없다. 먼저 부끄러움을 처리하고 나서 차차 이 책이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야겠다. (잘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