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공간과 생애주기, 그리고 책들

- 살고 쓰다

by 서애라

첫째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니 방이 하나 필요했다. 그동안 내 서재로 쓰고 있던 방을 비워서 둘째에게 주고 첫째는 온전히 혼자 쓸 수 있는 방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동생에게 방해 받지 않고 공부도 하고 일기도 쓰고, 입시 학령기를 버티고 사춘기를 누릴 것이 아닌가.


머릿속에 짜둔 계획은 단순했고, 레고 블럭을 새로 조립하듯이 집안의 물건을 옮기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자 거대한 일이었음을 알았다. 문제는 책이었다. 서재에서 창문에 접한 벽을 제외한 삼면을 둘러싼 책들을 꺼내자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한 번도 손대지 않은 책, 연필로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책,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소장가치가 전혀 없는 책들까지 꺼내도 꺼내도 책은 쏟아져 나왔다.


결국 집 정리에 겨울을 모두 썼다. 그 사이에 내 입술은 터져서 커다란 딱지가 앉아 있고 목 디스크가 심해져서 어깨에 찌릿한 통증이 계속 느껴지는 상태가 되었다. 이토록 일이 오래 걸린 이유는 책이 넘치는데 둘 공간이 없으니 처분해야 했기 때문이다. 맨 먼저 고려된 대상은 당근마켓이었다. 알라딘 중고매장은 값을 잘 받을 수는 있지만 처분하기에 힘과 공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당근마켓은 수요자가 명확했다. 실용서가 아니면 안 팔릴 가능성이 컸다.


일단 육아와 관련된 서적을 모아 한 박스를 만든 뒤에 남편이 당근에 올려 팔았다. 하브루타 교육 관련 서적과 부모 마음을 조언하는 육아서를 뒤섞어 1만 원에 넘긴다고 올렸더니 5분도 안 되어서 누군가 나타났다. 바느질과 손공예 관련서적은 부록 패턴지까지 얌전히 다 보관해뒀던 탓인지 반나절만에 임자가 나타났다. 물론 포장까지 멀쩡한 부자재들까지 끼워준다고 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모두 합해 1만 원이었으니 그것도 헐값에 처분한 것이다.


나머지 책들 중에 일부는 알라딘 직매입으로 팔고, 알라딘이 받아주지 않거나 그 가치를 몰라준다 싶은 책들은 직접 중고판매자로 등록해서 팔기로 했다. 알라딘 직매입으로 10Kg짜리 2박스를 처분했고, 판매 매니저로 229건을 등록했다. 이 책이 언제 다 팔려나간단 말인가? 공간만 정비했을 뿐, 책들은 여전히 집안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다. 아직 등록하지 못한 책탑이 남아있고, 팔지 못해 여전히 집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쌓여 있는 책들이 있다.


졸지에 중고책장사로 변해 첫 책을 팔며 시행착오도 겪었다. 주문 요청이 들어오면 승인을 해야 비로소 내 화면에서 주문자의 주소가 보인다는 것을 알았고, 주문자와 배송지 정보가 다를 때는 배송지 정보의 연락처를 기입해 보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몸도 힘들었다. 책을 들었다 내려놨다 옮기는 일을 하고 나면 다음날 근육통이 생겨 있었다. 조그만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바코드를 찍고 책의 정보를 기입하는 동안 목 디스크 증상이 악화되어 갔다. 어떤 일이든 처음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어떤 세계에 처음 들어서면 알게 되는 것들은 약간의 흥분도 만들어낸다. 중고책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것은 ‘절판된 이론서’라는 것을 알았다. 등록한 책들 중 빛의 속도로 팔려나간 두 책은 모두 이론서였는데, 둘 다 절판이거나 품절된 상태였다. 그리고 둘 다 최상 등급으로 누군가 7만 원 넘는 가격에 등록해 둔 책이 있었다.


“세상에! 누가 책의 정가의 3배도 넘는 돈을 주고 중고책을 산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정직하게 내가 산 금액만 회수하자는 마음으로 금액을 입력했다. (내가 아무리 초짜 상인이라도 알라딘의 중고책 표준권장가를 참고할 만큼 바보는 아니다.)


그 정도면 밀당하기에 괜찮은 협상 라인인 줄 알았다. 그런데 등록한 지 2초만에 주문이 들어왔다. 진짜 2초였다. 왜냐하면 다음 책을 등록하려고 바코드를 찍고 페이지가 열리기도 전에 주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순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스탠리 카벨과 프랑코 모레띠를 떠나보내기 아쉬웠다. 게다가 이 가격에 책을 팔지 말고 주문 취소한 뒤에 5만 원쯤에 올려버릴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내 주변을 둘러싼 책탑들이 보였다. 이 탑들이 다 없어져야 비로소 우리집에 나의 아이들의 공간이 생겼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을 고쳐 먹었다.


중고장터를 이렇게 열심히 들여다보는 분이라면 이 책이 얼마나 절박했을까? 나는 그저 영화가 궁금해서, 혹은 영문학 역사를 참고하려고 샀을 뿐이지만, 이 분은 본래 정가보다 돈을 더 주고라도(배송비가 붙으니 그 분 입장에서는 돈을 더 준 셈이 된다.) 이 책을 사야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싸게 나오는 책을 눈 빠지게 기다렸다면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처지일 텐데. 그런 마음이 되었다. 그냥 주문 승인을 눌렀다. 누르고 주소를 보니 강남구민은 아니더라. 그러면 그렇지, 그러고 책을 포장했다. 어쩌면 관련 학과의 학생일 수도 있으리라. 이 책을 가져가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육체 노동이 잡생각을 없애준다는 통설은 어쩌면 거짓이다. 나는 책을 등록하고 옮기는 단순 노동을 하는 동안 엄청난 잡생각들을 했다. 그 잡생각이 우울로까지 번져서 고생을 했다. 아이들은 자라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돈은 자꾸 늘어난다. 이럴 줄 몰랐나. 이렇게나 많은 양육서를 읽었으면서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나. 책을 팔아서 한 푼이라도 벌어 첫째 아이 교육에 필요한 참고서를 사야 한다는 일념으로 터진 입술에 반창고를 붙이고 묵묵히 일하면서 자꾸만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어쩌면 그건 단순 육체노동 탓이 아닐 수 있다. 25년 새해 결심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어서일 수도 있다. 새해에는 가계부를 제대로 쓰자고 결심하고 스프레드시트에 가계부를 쓰고 있다. 집안 살림이 비로소 한 눈에 보였다. 그리고 이제껏 내가 환상의 가계 살림 속에 살고 있었음을 알았다. 내게는 아이가 둘이나 있었고, 손주 학원비를 보태줄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가진 부모님이라고는 양가를 통틀어 한 분도 없으며, 그런 걸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고 우리가 그 분들의 노후를 걱정해야 했으며, 나는 지금 몇 년째 제대로 된 벌이에서 손을 놓고 있지 않나. 우리 가계 상태라면 맞벌이는 필수였다. 나는 내 공간을 줄이고 아이의 미래를 대비해야 할 시기에 내 꿈을 위해 살아왔다. 그래서 작가도 되었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도 만났다. 그런데 그 사실이 아이들에게 자꾸 미안해졌다.


가족의 집은 생애 주기에 따라 변화한다. 한 사람이 태어나 자라는 과정에서 그 사람이 집에서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규모도 변한다. 영화 <트루먼쇼>에서 플래시백으로 나왔던 트루먼의 성장과정처럼 혼자 움직일 수 있는 행동반경이 넓어지면서 인간은 자라나고 사회화된다. 그리고 가족 안에서는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우리 아이는 지금 집 안에서 온전한 자기 공간을 만들 정도로 자라났다. 그리고 그 다음은? 집 밖으로 나가겠지. 다른 도시로 떠나겠지. 그리고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은? 나는 이 아이의 미래의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 트루먼은 스튜디오를 떠나서 어디까지 갔을까? 그리고 그 세계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을까? 그리고 그 어디쯤에선가 자신의 공간이 다시 줄어들었음을, 다시 갇혀 버렸음을, 이제는 자발적으로 갇혀 자신의 아이에게 세계를 내주고 있음을 느끼게 될까?


나와 나의 아이(내가 낳은 아이와 내 안에서 자라나지 않고 있던 아이)에게 주어졌던 어떤 ‘유예’가 끝났음이 느껴졌다. 책들을 거의 정리하고 나니 알겠다. 이제 내 삶도 정리해야 한다. 내 꿈만을 위해 살기에 나는 너무 내 아이들을 사랑한다. 나는 타히티로 떠났던 고갱처럼 되고 싶지 않다. 그는 자기 아이들보다 자기 그림을 더 사랑했다.

책들을 정리하다가 띠지가 붙은 시집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 사실을 알았다.


말기 췌장암 선고를 받고도 괜찮다. 내사 마, 살 만큼 살았데이, 돌아앉아 안경 한 번 쓰윽 닦으시고는 디스 담배 피워 물던 아버지, 병원에 입원하신 뒤 항암 치료도 거부하고 모르핀만, 모르핀만 맞으셨는데 간성 혼수에 빠질 때는 링거 줄을 뽑아 던지며 살려달라고, 서울 큰 병원에 옮겨달라고 울부짖으셨는데, 한 달 반 만에 참나무 둥치 같은 몸이 새뼈마냥 삭아 내렸는데, 어느 날 모처럼 죽 한 그릇 다 비우시더니, 남몰래 영안실에 내려갔다 오시더니 손짓으로 날 불러, 젖은 침대 시트 밑에서 더듬더듬 무얼 하나 꺼내 주시는 거였다 장례비가 든 적금통장이었다
- 전동균의 시, <겉장이 나달나달했다> 전문, <<거룩한 허기>>(2008) 수록


한참동안 제목을 바라보았다. 겉장이 나달나달해진 적금통장이라면 오랜 기간 적은 돈을 부어놓고 꺼내보고 또 꺼내봤다는 뜻이다. 이 시집이 출판된 해에 나는 겨우 서른이었다. 낡은 이 책을 아마 나는 그 무렵에 샀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죽을 날을 받아둔 부모의 마음이 아니라 그러한 부모를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에 더 이입했을 것이다. 지금은 온전히 그 부모의 마음이 된다. 나 역시도 물려줄 것이 아주 적은 부모이므로.


내 책을 중고로 한 박스 팔아서 아이 참고서를 샀다. 참고서 네 권 사야 하는데 두 권 값을 겨우 벌었다. 남편은 감가상각이 심한 물건 중 최고는 책이라고 중얼거렸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책을 읽었고, 기억에 남아있지 않더라도 지금 모습의 나의 내면을 만드는 데에 그 활자들을 썼다. 그러니 그에게는 이 책들의 감가상각을 논할 자격이 없다. 그 감가상각 실질비는 나만이 온전히 알 수 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 아닌가. 타지 않는 사람이 곁에서 지켜보면 그렇게 감가상각이 심할 수 없지. 나는 그 책들을 타고 다녔다. 아주 멀리까지 갔었고, 돌아오는 여정도 그 안에서 배웠다.


좋은 책들이었다. 사랑했던 책도 있고, 돈이 아까웠던 책도 있었다. 희망에 부풀어 열심히 공부했던 책도 있었다. 바코드를 찍을 때마다 떠나 보냈다. 과거에 대한 미련과 어리석은 희망, 불가능한 꿈들을.


집안에 허황되지 않은 나의 공간이 생겼다. 안방 침대 옆에 마련된 작은 책상이다. 그곳에서 이 글을 쓴다. 새벽이 모두 지났고, 이제 아침밥을 차리러 가야 한다. 아이들이 깨어날 시간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SF와 봉준호, '지금/여기'에 대한 먼 곳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