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쓰다
요즘 이수지의 콘텐츠가 이슈이다. 대치동 라이딩맘의 일과를 다룬 영상인데, 2탄까지 나오더니 이제는 대치파파 버전의 콘텐츠까지 나왔다. 이수지와 관련 없는 연기학원 원장이 만든 영상물이라 더 놀랍고 신기했다.
영상물의 성격은 명확한데, 풍자와 골계이다. 어째서 ‘골계’라는 어려운 말을 쓰냐면 이 용어는 고전문학의 미적 범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숭고미/우아미/비장미/골계미-이 분류법은 내가 입시를 치르던 때에는 없던 것이다. 근래에 나는 이것을 발견하고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지식이란 얼마나 유한한가.)
그러니 비꼬고 과장해서 웃기는 수사법이 저급한 대중문화의 특성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판소리, 탈춤, 한문학, 노벨상을 수상한 소설가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비꼬고 과장하고 비웃으면서 진실을 알려주는 예술은 무수히 존재해 왔다. 파급력이 큰 콘텐츠라면 모두 그렇듯이 이수지의 콘텐츠 역시 ‘웃고 즐기는’ 것 이상의 지점으로까지 번져 나갔는데, 문제는 이수지의 콘텐츠가 골계미를 추구했다는 것도 아니며 대중문화 콘텐츠라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들 마음속에 있었다.
이수지 콘텐츠에서 특정 여자 연예인의 콘텐츠를 연상한 키보드 워리어들이 특정 연예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공격을 두고 여혐이니 중상류층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격성 표출이니 하는 비판들이 나온다. 일부 표현들은 그런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그 공격의 근원에 든 반감은 정말 ‘근거 없는’ 것일까? 하루 일과를 자식에게 바치는 부유층 여성에 대한 혐오일 뿐일까? ‘상대적 박탈감’이란 고래로부터 있어온 불평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속 좁은 하층민들의 열등감일 뿐인가? 정말 그런가? 역사에는 계급 고착이 심해지는 순간 ‘민중 봉기’가 있어 왔다. 민중은 언제 화가 나는 것일까?
이 모든 고민들은 나의 당면한 문제에서 출발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그러니까 ‘예비’ 중학생에 들어서면서부터 대한민국 교육 현장의 현실과 입시 현실에 대해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아들이 모두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대한민국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자는 비영리단체에 후원을 하기도 하면서 더 크고 몽롱한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사회가 바뀌면 나의 삶과 내 아이들의 삶도 바뀐다는 모호한 기대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사실 그 단체를 후원할 때조차 나의 ‘순진함’에 대해 자각한 적이 있었다. 그 단체에서는 소설가들을 섭외해 작가와의 만남 자리를 만들었는데, 아이 없는 삶을 꾸리는 어떤 작가가 학부모들을 향해 그런 말을 했다.
“계급이 고착되어 유동성이 없어 유소년들의 경쟁의식도 없는 몇몇 서구사회와 다이내믹하고 경쟁이 치열한 우리 사회 중 뭐가 더 나은지, 그건 모르지 않나.”
솔직히 저 말을 들으며 기가 막히고 한심했다. 정말 우리 사회가 아직도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의 그런 ‘다이내믹한’ 사회라고 믿는 건가?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정말로 ‘실력’을 키우고 있다고 믿는 건가? 우리 사회 교육 경쟁력의 대부분이 ‘돈’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정녕 모르는 건가?
그 행사를 기점으로 단체의 탈회를 진심으로 고민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고심 끝에 후원을 끊었다.
단체에서는 교육 문제를 고민하는 학부모들을 위해 누구를 섭외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 작가의 와이프가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고 단체와 조력해 왔다면 그 작가가 아니라 그 와이프를 섭외했어야 한다고 본다. 사실 그 작가의 말을 들어서는 그 와이프조차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여자 연예인의 라이딩 영상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박탈감에 대해 나는 잘 안다. 그 여자 연예인은 해명이랍시고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원해서 하는 교육이라고 항변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무수한 아이들이 ‘하고 싶은데’ 못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 건가? 그런 라이딩이 가능한 삶과 나 같은 사람의 삶 사이에 어떤 장애물들이 놓여 있는지 알고나 있는 건가? 그런 삶을 '자유부인'이랍시고 콘텐츠로 만들어 유포할 생각을 한 사람들은 그런 삶이 '보편적 공감'에서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한 것인가? 안티 양성의 노이즈 마케팅이 될 거란 예측은 못한 것인가? 그들은 대체 어떤 성장환경에서 자라서 어떤 기준으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일까? 그들만의 리그란 어떤 것일까?
이수지의 영상물을 접하기 전에 나는 이미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 그 영상물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은 사교육업체에서 일하는 어느 선생님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 전화를 왜 걸었느냐면, 한 푼이라도 벌고 싶은 욕심에 그 선생님에게 구직을 문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그때 이미 나는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자각하고 위기감과 약간의 우울을 머금은 상태였다. 내 서재를 채우던 중고책 280여 권을 등록해 두고 매일 하나둘 찍히는 5천 원, 6천 원의 중고책 판매 금액을 확인하면서, 이걸로 아이 참고서를 몇 권이나 살 수 있을까 셈하던 중이었다. 그때마다 입술을 깨물었다. 이 책들을 안 사고, 이 책들을 읽느라 시간 허비를 하지 않고, 착실히 직장이나 다니면 돈을 모아뒀다면 아이들에게 ‘멀쩡한’ 부모 노릇 정도는 할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하고 미안했다. 현실을 모르고 몽롱한 꿈 속에 산 엄마라서 너무 미안했다.
하루는 그런 미안한 마음을 직접 아들에게 표현했다. 침체된 엄마 기분에 대해 아들이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해명을 하고 싶었다. 주말에 등산을 가자고 꼬드겨 집 근처로 산행을 가면서 말했다.
“수학학원 못 보내줘 미안해. 프랜차이즈 영어학원 겨우 하나 보내주고 자꾸 공부하라고 다그쳐서 미안해. 다른 아이들은 돈으로 쉽게 하는 걸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집에서 문제집 풀며 공부하는데, 이렇게 스스로 혼자 할 줄 아는 기특한 아이들인데, 누구보다 영리하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인데, 못난 엄마를 만나서 뒷받침을 못해주는 것 같아서 엄마가 미안해. 그래서 그래. 너희가 핸드폰 보거나 할 때 짜증 내고 화낸 것도 그래서야. 너희들은 더 잘 될 수 있는데, 환경이 못 따라주니까, 그 환경을 극복하려면 남보다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들었거든. 그런데 그건 사실 너희들이 싫어서가 아니고 엄마 자신이 싫어서야. 나는 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못해줄까.”
아들은 대꾸가 없었다. 그런데 이삼일 뒤에 저녁을 먹고 분주히 집안일을 하는 엄마 곁에 쓱 다가오더니 아들이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내 주변에도 학원 여러 군데 가는 애들 많아. 그런데 그 애들 다 공부 잘하는 거 아니야. 나보다 못하는 애들 진짜 많아. 그리고 있잖아. 그 애들 거의 대부분이 공부하기 싫어해. 그런데 나는 적어도 공부하고 싶어 하잖아.”
그리고는 씨익 웃었다. 나 같은 못난 부모가 무슨 복이 넘쳐서 이런 아이를 선물 받았을까. 자려고 누워도 생각이 나고 미소가 지어졌다. 성적은 전부가 아니지. 성격은 전부일 수 있어. 삶은 길고 학령기는 지나가니까.
좋은 성격을 지닌 우리 아이를 생각하니 서울대 가는 아이, 의대 가는 아이가 하나도 안 부러웠다. 우울증이 가라앉았고 신과 삶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그렇다고 나에게 세속적인 욕심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이 된 아이는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했는데, 예전처럼 EBS로 해결하기도 역부족이었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고교 동창이 마침 수학학원 원장이라서 상의해 봤더니 온라인 동영상 강의 사이트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오프라인 학원보다 훨씬 쌌지만 만만치 않은 지출이라 고민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결제했다. 학습 태블릿도 주고 일주일에 한 번 담임이 상담전화도 해준다는 말에 솔깃하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전부 이른바 ‘학습지’라고 불리던 교육업체들이 진화해 간 결과였다. 나는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그런 학습지 시스템을 접한 것이다. 내가 가입한 사이트는 학습지에서 진화한 것은 아니고 고등 인강에서부터 확장해 간 곳이었지만, 시스템은 어디나 비슷비슷해져 있었다.
그런 기업형 학습 관리 시스템에 가입해 보고서야 나는 대한민국 사교육이 얼마나 발전해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아이의 정보를 입력하자 모든 것이 관리되었다. 교과서별 강좌, 교재, 아이의 사이트 접속 횟수, 강좌 청취 기록 등을 담임과 학부모가 공유했으며, 사이트 접속시에는 학부모에게 그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송되었다. 입이 딱 벌어졌다.
어제는 농담 삼아 아이에게 그 상황에 대해 말을 건네 보았다.
“너 요즘 엠*** 자주 해? 엄마가 허리띠 졸라매고 매달 큰돈 쓰고 있는데 열심히 안 하는 거 같더라?”
“무슨 소리야. 공부하고 있어.”
“일주일에 한 번 접속하던데?”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긴. 나는 다 알아. 네가 접속하면 엄마한테 문자 오지롱.”
내가 휴대폰을 흔들어 보였다. 그랬더니 아이가 정색을 했다.
“무섭네.”
나는 말을 잘 못 꺼냈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화제를 돌려 상황을 수습했다. 그랬는데 저녁에 아이가 나에게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엄마 내가 사이트 담임이 담아준 강좌들을 보고 계획을 세워봤거든? 담아준 강좌를 다 들으려면 물리적으로 72일이 필요하더라. 하루도 안 쉬고 모든 강좌를 매일 다 들어야 해. 나는 방과후로 코딩도 하고 영어학원도 가야 하는데 이건 말이 안 돼. 그래서 최대한 문제집으로 풀고 안 풀리고 막히는 것만 강좌를 찾아서 봐. 그러니까 지난주에는 한 번 접속한 걸로 나오는 거야. 나 이 사이트 잘 사용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
또 나는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아들 삼 형제를 모두 서울대에 보냈던 여성학자 박혜란은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고 했다. 그 시절과 지금의 교육환경이 많이 달라졌지만, 아이들 마음이야 뭐 그리 많이 변했을까.
인구가 소멸해 가는 지방 거주민으로, 아이가 원하는 교육을 위해 라이딩해 줄 시간도 여력도 없는 엄마에게는 단 하나의 무기만 있을 뿐이다.
믿고 있는 것. 다그치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