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야자 아니고 테이블야자
우리 집에는 중간 크기의 식물 하나와 소형 식물 두 개가 있다. 식물 키우기가 취미라고 말하기엔 화분 세 개는 부끄럽기도 하고 실제 취미가 아니기도 하지만, 식물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 말하면 어떻게 세 개나 키우냐는 말을 듣는다. 여러모로 모호해서 맘에 드는 숫자다.
중형짜리는 테이블야자라는 식물인데, 본가에서부터 방에 뒀던 걸 그대로 가져왔다. 좁은 방에서 같은 공기를 나눈 사이인데 두고 오기가 좀 그랬고, 이사할 자취 방이 리모델링한 지 얼마 안 된 탓에 새집 냄새가 나서 공기 정화 좀 해달라고 부탁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얘가 혼자 싸우느라 기세가 밀리는지 점점 초록빛을 잃어가는 것 같아 작은 화분 하나를 더 들이게 되었고, 다른 하나는 훗날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선물로 줬다. 그렇게 세 개가 되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생긴 새로운 습관이 있다. 테이블야자에 은근슬쩍 말을 건다는 것이다. 사실 ‘혼잣말이지만 들어주면 좋고.’에 가깝다. “아니 왜 이렇게 갈색 잎이 생기지?”, “햇빛만큼 중요한 게 통풍이라더라.”, “새순이 또 나왔네? 참 신기해…” 등등, 한 공간 안에서 숨 쉬고 있는 나 이외의 존재에게 안부 묻듯 중얼거린다. 본가에서 지낼 때는 직접 물을 주지 않았던 터라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옆에 두고서 때에 따라 물을 주며 지켜보다 보니 식물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게 된다. 새순이 생기면 서서히 키가 커지며 굵은 줄기가 되고, 이내 깃털처럼 길고 가는 잎들로 갈라진다. 느릿하지만 또렷하게 자라가는 이 과정에서 내가 하는 일은 아침마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어주고 1⁓2주에 한 번씩 물을 주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하다는 듯 식물은 죽지 않고 싹을 틔워낸다.
식물은 인간의 말을 할 수 없고 표정을 지을 수도 없지만, 흙과 뿌리, 줄기, 잎,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생에서 푸르고 촉촉하게, 곧고 깊게 자연의 언어로 나에게 인사를 한다. 그러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흙이 마른 건가? 안 마른 건가?”, “색이 좀 짙 어졌나?”,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해서 창문을 못 열겠다.” 등등의 말로 또다시 중얼중얼 은근슬쩍 안부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