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대부분의 양육자는 본인 스스로 성 지식이 없고, 어떤 확고한 가치도 정립하지 못했으며, 터놓고 이야기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성에 대한 자신의 지식, 태도, 가치관에 계속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동시에 자녀의 지식과 태도, 가치관에도 의문을 던졌다. 과연 궁금해하긴 할까? 아직 호기심도 없는 건 아닐까? 알려준들 제대로 이해하기나 할까? 왜곡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혹은 관심 없고 지루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까? 등등. 체크 리스트의 결과만 보면, 성교육은 양육자와 자녀,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준비되지 않은 거로 보인다. 그러니 성교육은 양육자에게 불편한 주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각자의 경험은 다양했지만, 양육자와 대화를 통해 공통적인 세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첫번째는 성에 대한 양육자의 인식이 보수적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많은 양육자들은 성을 곧 성관계(섹스)로 이해하고 이성 배우자와 성관계만 ‘정상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반대로 결혼 바깥의 성은 문제적이고 위험한 것으로 인식했다. 미성년자인 자녀에게 성에 대해 알려주는 것을 꺼리는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는, 우리 양육자가 아동‧청소년을 성적 존재로 보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었다. 그들은 사춘기의 성은 불안하고 충동적이어서 부모의 통제가 꼭 필요하다고 보거나, 초등 저학년이 성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 이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여성 양육자에게 한정되는 얘기지만) 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이 곧 수치심과 연결되는 데 있었다. 실제로 어떤 여성 양육자들은 성기 명칭을 알려주는 것도 수치심을 느낀다고 얘기했다. “저도 여자인지라..” 말끝을 흐리는 모습에서 이들에게 성이 갖는 무게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양육자들의 생각과 달리, 성은 성관계(섹스)만을 이르지 않는다. 성 담론은 양성 관의 관계, 성에 대한 가치‧권리‧문화, 젠더에 대한 인식, 폭력과 안전, 건강과 복지, 인간의 신체와 발달, 성적 행동, 성 건강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무엇보다 성은 나는 어떤 존재인지, 다른 사람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이 전제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성교육은 결국 ‘뭐가 됐든 하지 마’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접근해서일까. 양육자 성교육을 하다 보면 늘 “우리 아이는 아직 성에 대해 눈뜨지 않았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조금 더 대화를 나눠보면 자위, 발기, 월경 등 사춘기와 관련된 직접적인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그들 자녀는 자신의 몸과 정체성, 타인과의 경계 등에 관련된 많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관심이 없다면 질문도 없다. 자녀가 아직 성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보는 건 어쩌면 양육자의 희망 사항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여자기 때문에 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불편한 건지, 아니면 이 사회가 성에 대해 얘기하는 여자를 불편해하기 때문에 내 입이 떨어지지 않는 건지 생각해 보자.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성은 곧 남성의 것이다. 성욕은 남성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남성의 성욕은 어떻게든 해소해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되었다. 반면 기껏해야 여성은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성적 실천의 전부였다. 반대로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에겐 사회적 차별과 배제가 뒤따른다. 우리는 성장 과정을 통해 이를 목도해 왔다.
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이 단순 부끄러움이 아니라 수치심과 연결되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드러내고 욕망하는 순간, 규범적인 여성이 아니라 간주하고 받은 폭력의 경험들이 쌓여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성이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의 성 또한 마찬가지다. 나의 성적 욕망이 무엇인지 탐색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때문에 이를 파트너와 자연스럽게 나누기도 힘들다. 터놓고 얘기한 경험이 없으니 이제 와 자녀에게 시도한들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성적 욕망을 가진 여성을 혐오하고, 여성을 성의 주체적인 영역에서 배제하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행동만 허용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다. 그렇다면 성교육에 대한 불편함은 바로 성차별의 효과인 것은 아닐까? 많은 여성 양육자들이 자녀 앞에서도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이래야 설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