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함은 왜 항상 화가 될까
“왜 나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만 이렇게 화가 날까?”
재밌는 영상을 보다가 문득 그 사람이 떠올랐다.
우리는 늘 웃긴 영상을 주고받으며 함께 웃던 사이였지만, 지금은 다툰 뒤였다.
망설이다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뭐해”
30분쯤 지나 답장이 왔다. BTS 영상을 보려 한다고 했다.
나는 “그렇구나”라고 답했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같이 볼까?”
라고 한 번 더 손을 내밀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싸우고 싶지 않다는 말, 그리고 내가 무섭다는 말.
나는 화해하고 싶어서 말을 건 것이었는데, 마치 내 마음이 닿기도 전에 밀려난 것처럼 느껴졌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감정을 참지 못하고 모든 연락을 끊어버렸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곰곰이 들여다보니, 단지 거절당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는데, 왜 잡아주지 않았을까’
그 서운함 속에는, 내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은 것 같은 외로움이 숨어 있었다.
감정이 너무 급격하게 변했다. 나는 감정 조절이 어려운 사람일까.
‘전두엽이 감정을 조절한다’는 글을 읽었고, 순간 내 문제를 거기서 찾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히 감정이 많은 탓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감정을 다루는 방식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그랬다.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내가, 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 솔직해지고, 더 서툴러질까.
엄마의 연애를 떠올려본다.
사랑하면서도 아이처럼 감정을 쏟아내던 모습.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던 장면들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건 어쩌면 미숙함이 아니라, 사랑 앞에서만 드러나는 '가장 솔직한 얼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도 나를 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까.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버거웠을까.
화가 난 감정은 어디로 가고, 여전히 보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그럼 나는, 이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화가 난 기억과 그리운 마음이 동시에 남아 있다는 건, 이 관계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관계가 계속될지 아닐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서로를 통해 무언가를 배웠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가 어떤 순간에 무너지는지 알게 되었고,
어떤 말이 나를 아프게 하는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만약 다시 대화를 하게 된다면, 예전처럼 감정이 먼저 터져 나오기 전에, 한 번쯤은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말한 시간보다 늦어져서 다른 계획도 못 잡고 기다리게 됐을 때, 나는 조금 서운했어.
그래서 괜히 더 세게 말했어.
사실은, 보고 싶었어.
완벽하게 달라지지 않더라도 '조금 덜 상처 주는 방식'은 조금씩 연습해볼 수 있을 거 같다.
지금은 잠시 멈춰 있는 시간일 뿐이라고 믿어보려 한다.
감정이 가라앉고 나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때 우리는 다시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아니면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조용히 놓아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번처럼 감정에 휩쓸리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색 바랜 누더기처럼 되어 버린 인간과 인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이 문장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사랑은 완벽해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조금씩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금, 끝이라고 단정 짓기보다 가능성을 남겨두려 한다.
다시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혹은 더 나은 내가 되어 새로운 관계를 만날 가능성.
어느 쪽이든, 지금의 나는 그 방향으로 조금씩 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걸로, 오늘 밤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