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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운 Dec 28. 2024

딸의 사춘기를 만나는 책대화

독서감상문을 어떻게 쓸까 : <죽이고 싶은 아이>, 이꽃님






"엄마,  이렇게 인생에 쉬운 일이 없을까."    

" 엥? 무슨 말이야?"

"아니, 책을 그냥 재미있게 읽으면 되지, 꼭 감상문을 써야 해?"

"하하. 뭐 읽었는지 기록도 되고 좋지."

"근데, 꼭 이렇게 힘들게 써야 하냐고. 아~ 빨리 졸업하고 싶어."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은 매주 독서 감상문을 쓴다. 학교 과제라서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마지못해 한다.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가 책도 읽고 글도 쓰니 본인이야 싫든 좋든 흡족했다. 다만 딸이 나를 자기 앞에 앉혀 놓고 쓴다는 게 문제다. 나에게 써 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조언하는 대로 쓰지도 않으면서 붙들어 둔다. 자기에게 아이디어가 떠오르도록 대화를 하자는 거다.




"그냥 예전처럼 편하게 쓰지 그래.(엄마 괴롭히지 말고)"

"그러면 남아서 다시 써야 해."

"안 남을 정도로만 적당히 쓰면 되지 않아?"

"싫어, 잘 쓸 거야."

"쓰기 싫다며."

"쓰기 싫긴 한데 잘 쓰고 싶어."

"오~, 그럴 수도 있어?"

"엄마가 도와주면 돼."

"나도 독서 감상문 쓰는 거 싫은데?"

"누가 엄마한테 써 달래~. 어떻게 쓰는 건지만 알려 줘."

"대충 써."

"엄마아~!!"

"챗 GPT한테 물어봐."

"이상한 말만 해. 그리고 너무 많이 말해."

"질문을 잘 해야 한다던데 잘 물어봐."

"엄마아!!"




 처음에는 초등학생용 23줄 공책의 반 쪽 정도 작성해서 갔다. 저학년 때부터 독서 감상문 쓰기는 줄곧 학교 과제였는데 이 책을 왜 읽었는지 한 줄, 줄거리 7~8줄, 자기 느낌 1~2줄 정도 쓰면 선생님께서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 주셨다.  아이는 부담 없이 늘 그 정도 써서 가져갔다. 그런데 6학년 선생님은 처음 작성한 독서 감상문에 '검'이라고 읽었다는 체크만 주셨다. 그리고 딸을 포함해 '검'을 받은 여러 아이들 앞에서 한 아이를 폭풍적으로 칭찬해 주셨나 보다. 딸이 슬쩍 보니 그 아이 공책에는 엑셀런트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엄마, '검', '굿', '베리굿', '엑셀런트' 이런 순서인가 봐."

"그렇구나. 굳이 엑셀런트 안 받아도 되지. 책 읽는 것도 좋은 거고, 글로 쓰면 기억에 남으니까 더 좋은 거잖아."

"아냐, 엑셀런트 받을 거야."

"그래? 굳이?"

"응, 내가 승부욕이 있었나 봐."

"음..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고, 그렇게 얻어맞는데 계속 겨루기에 나가는 거 보면."

"히히, 내가 좀. 그래도 결국 금메달 땄잖아."




엑셀런트를 꼭 받아야겠다며 아이는 나에게 독서 감상문 쓰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선생님께서는 작가와의 대화를 쓰라고 하셨다는데 그게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한 때부터만 따져도 30년 가까이 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챗GPT에게 "독서 감상문 쓰는 법을 알려줘."라고 물어보았다. 정말 아이 말대로 '많이' 말했다.  나는 독서감상문에 들어가야 하는 요소를 아이 수준에 맞게  다섯 가지로 정리해 주었다.








첫째, 책을 읽은 동기를 쓴다.


보통 초등학생 정도 아이가 쓴 독서 감상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은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제목이 흥미로워서 읽게 되었다." 등이다.  글의 첫 시작이 어렵기 때문에 무난하게 글을 시작하기 위한 방법이지만 꼭 책을 읽은 동기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난 딸에게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책에서 받은 첫인상을 써 보라고 했다.  내가 아는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주듯이 책에 대한 정보, 즉 작가는 누구인지, 언제 지어졌는지 등을 쓰면 첫 문장을 무난히 시작할 수 있다.



아이는 이렇게 썼다.


   "이 책은 <죽이고 싶은 아이>라는 제목이 흥미로워서 읽게 되었다. 표지에는 두 여학생이 그려져 있다. <죽이고 싶은 아이>라는 제목과 표지의 그림을 봤을 때, 이 학생들과 관련된 살인 사건을 다룬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둘째, 간략한 줄거리를 쓴다.


 아이는 머리에 있는 생각이 글로 만들어지지 않자 짜증을 냈다. 나는 '사춘기에는 편도체가 예민해져서 감정적 과잉반응이 일어나고, 전두엽의 미발달로 판단력과 자제력이 미숙하다'는 뇌과학 책을 읽으며 마음 수양을 해둔 터라 의연하게 대처했다. '저 아이는 외계인이다. 나는 지금 외계인과 대화하는 중이다. 나는 성숙한 지구인이다.'



"인기 작품이니까 챗GPT에  줄거리 요약이 있지 않을까?"

"선생님이 베끼면 안 된다고 하셨어."

"안 베끼면 되지. 힌트만 조금 얻어서 자기 말로 쓰면 되잖아."

"그, 그럴까?


"엄마, 챗GPT는 이 소설을 모르는 거 같아. 이상한 얘기만 해. 주인공 이름도 몰라."

"그래? 그럼 그냥 누가 나오고,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되었는지만 쓰면 되지 않아?"

"아, 진짜, 너무 어려워. 우리 00 선생님 때문에 늙은 것 같아."

"엄마한테 말로 이야기해 줘 봐. 그걸 글로 옮기면 되지, 녹음을 하든지. 내용이 뭔데?"

"아, 진짜 00쌤!!!"

"그럼 이번에는 '굿'만 받는 게 어때?"

"싫어!!! 으아악 00쌤!!"


외계인과의 대화를 무사히 마쳤다.



아이가 쓴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날 주연이의 단짝 친구 서은이가 학교 뒤 공터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유력한 용의자로 주연이가 지목되었고 주연이는 그 당시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세상은 처음엔 주연이를 욕하는 사람과 감싸 주는 사람으로 나뉘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모두 주연이를 범인으로 몰아간다. 주연이 자신조차 내가 죽인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 다른 학생의 실수로 서은이가 죽었다는 사실이 독자에게만 밝혀지며 이야기가 끝난다."







셋째, 인상 깊은 구절을 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아이에게 글의 분량 늘리기 꿀팁을 알려주었다.  아이는 공책의 한 쪽이나 한 쪽 반 정도 양을 채우기도 힘들어했다. 방법은 이러하다. 작품을 읽으면서 인상 깊은 부분에 붙임 쪽지를 붙인다. 해당 구절과 간단한 생각을 메모해 둔다. 책을 다 읽은 다음 메모한 부분에서 가장 괜찮은 문장을 그대로 옮겨 쓰고, 거기에 대한 자기 생각을 덧붙이면 글의 분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두 군데 정도만 인용해도 공책 반 쪽은 채울 수 있다.



아이는 이렇게 썼다.


" 나는 103쪽 "너는 그냥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이라 좋았어."라는 주연이의 마음을 나타낸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이유는 '나도 언젠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친구가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또 마지막 페이지에  "사람들은 자기가 다 안다고 믿어요. 사실 아무것도 모르면서."라는 문장을 읽고 소름 끼쳤다. 친구가 나에 대해 잘 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잘 모르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굳이 쪽수를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써도 상관없기도 하고  조금 지친 터라 이 단계를 빨리 넘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넷째,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쓴다.


담임선생님께서 중요시한다는 '작가와의 대화'를 쓰는 부분이다. 책의 뒷부분 '작가의 말'을 참고하면 작가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 부분을 아이는 가장 어려워했다. 나는 아이에게 작가가 이 글을 쓰면서 고려했을 법한 질문을 해 주었다.  왜 사람들이 주연이가 범인이라고 생각했어? 주연이는 어떤 아이였어? 그걸 어떻게 표현했어? 등의 질문을 하면서 아이가 작가 의도를 파악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어떤 글을 분석해서 쓸 때는 '내용면'과 '형식면'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면 쉽게 쓸 수 있다는 꿀팁도 알려주었다.



아이는 이렇게 썼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진실과 믿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한다. 이 작품의 진실은 주연이가 서은이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실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러 정황들이 주연이를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기 문이다. 예를 들어 주연이가 아이들을 괴롭히는 장면을 봤다는 몇몇 사람들의 증언과 서은이의 죽음의 원인이 된 벽돌에서 주연이의 DNA가 나온 점 등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사람들이 진실을 추구하기보다는 보이는 대로 믿는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혹시 나도 보이는 대로 믿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것이다.

   작가는 이런 진실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독특한 구성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방식은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연이의 관점으로 주연이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고 주연이를 싫어했던 동창의 관점으로 주연이를 비난하는 장면있다. 밖에도 주연이의 부모님, 변호사, 서은이의 엄마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 방식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다섯째, 자신의 느낌과 추천하고 싶은 이유나 추전 하고 싶은 사람을 쓴다.


작가의 말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쓰는 것이라면 이 부분은 자기 느낌을 그대로 쓰면 된다. 추천하고 싶은 이유나 추천하고 싶은 사람을 꼭 쓰지 않아도 되지만 쉽게 글을 마무리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나처럼 아이도 기운이 빠졌는지 서둘러 마무리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이 생생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믿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죽이고 싶은 아이>를 한 번쯤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아이는 원하는 대로 엑셀런트를 받았다. 한번 엑셀런트 맛을 보고 나더니 더 잘 쓰고 싶어 했다. 여전히 빨리 졸업하고 싶다느니, 담임 선생님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졌다느니 징징거렸지만 자기가 쓴 글을 읽고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며 뿌듯해했다.



지금까지의 독서 감상문 쓰기를 통해 아이에게 일어난 긍정적 변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쓰기 효능감'이 높아졌다. 국어 교육에서 '쓰기 효능감'이란 '쓰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필자의 기대와 믿음'으로 정의된다. 매주 마감을 앞둔 작가처럼 글쓰기의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독서 기록장에 '엑셀런트'가 하나씩 늘수록 아이는 자기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인가 보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둘째, 쓰기 수행과 관련해서 '상위인지'능력이 향상되었다. '상위인지'란 자신의 인지 활동에 대해 알고 이를 조정하는 능력을 뜻한다. 아이는 글을 쓰면서 자기가 사용한 어휘나 문장, 단락을 나에게 읽어 주고 어떤지 물었다. 내가 독자로서 드는 의문을 말하면 자기가 왜 그런 표현이나 내용을 썼는지 설명하려고 애썼다. 글에서 한 번 사용한 어휘는 다른 말로 바꾸려고 노력했고, 한 단락에 여러 내용이 뒤섞여 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 고민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아이에게 작가를 해도 괜찮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정확하고 적절단어를 찾기 위해서 얼마나 머리를 쥐어뜯어야 하는지 톡톡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에게 자랑하듯 전해준 것을 보니 그 말씀이 싫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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