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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주 속에 살고 있다, <천상의 몸> 리뷰

알리체 로르바케르 <천상의 몸> (2011)

by 이수미

<천상의 몸>(Corpo celeste, 2011)은 <키메라>, <행복한 라짜로>를 연출한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했고, 주인공이 작은 마을에 사는 어린 소녀다 보니 처음에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천상의 몸>이 자전적인 작품이 아님을 강조했다.


<천상의 몸>이란 제목은 이탈리아 작가 안나 마리아 오르테제의 에세이 모음집 '천체(천상의 몸, Corpo celeste)'에서 따왔다.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지구가 우주에 속한 천체라는 오르테제의 이미지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학교에서 하늘에 있는 천체에 대해 배우지만, 우리가 천체 속에 살고 있다는 건 잊습니다. 저에게 마르타의 이야기는 (중략) 우리가 사는 지구가 우주에 속한 천체임을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We read at school about celestial bodies being up in the heavens and forget that we ourselves are living on a corpo celeste. For me Marta’s story is about making that discovery, as she finds a way through her world in this new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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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말을 영화에 대입해 보면 마르타는 공동체(우주)에 속한 천체, 천상의 몸 자체로 볼 수 있다. 지구가 우주의 영향을 받듯, 개인 역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천상의 몸>에서는 교회가 공동체의 공간이다. (감독은 교회 비판의 목적은 없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교회가 경건하고 신성한 공간이라 말하지만, 관객과 마르타가 마주하게 되는 건 강압적인 어른들과 정치 욕심을 부리는 신부의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두 손으로 맹인의 눈을 뜨게 했지만, 교회의 어른들은 아이들의 눈을 천으로 가려버린다. 아이들이 눈앞의 진실을 보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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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가장 신성한 존재와 가장 불경한 존재가 등장한다. 전자는 예수를 상징하는 십자가상이고, 후자는 창고에서 발견된 새끼 고양이다. 어른들에게 정반대의 대우를 받는 두 존재는 같은 최후를 맞는다. 교회의 어른에 의한 물 속으로의 추락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 추락을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물 위에 뜬 십자가상은 오히려 자유를 되찾은 것처럼 보이고, 고양이의 꼬리는 마르타의 손 위에서 생명을 꿈틀거린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탈리아 변두리 도시의 교구(parish) 생활이었다. 마르타는 이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내부와 외부, 소속과 소외 사이의 경계를 걷는 존재, 그게 바로 마르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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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는 아이에서 성인 여성이 되는 과정(생리, 발육)에 있는 인물인 동시에 종교적 성인식인 견진성사 준비를 하고 있는 인물이다. 신체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경계에 서 있는 마르타는 주체적인 선택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손으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스스로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영화의 마지막 우리는 마르타의 손에서 재생되는 기적을 목격한다. 마르타는 교회의 어른들과는 다른 어른으로 성장하리라는 희망의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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