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스틸러 <청춘 스케치> (1994) / 아트나이너 19기
방송국에서 일하는 리레이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꿈이다. 세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일을 하며 틈틈이 자신만의 다큐도 준비 중이지만, 세상은 그녀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직장 상사는 그녀의 다큐를 인정해 주지 않고, 새 직장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녀의 부모님도 그녀에게 눈을 낮추라고만 한다. 차가운 현실이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기에 괜찮다. 리레이나의 옆에는 그녀를 아무 생각 없이 웃게 하는 친구 트로이와 비키, 새미가 있고, 그녀의 가치를 알아주는 어른 마이클이 있으니.
마이클과의 인연은 누가 봐도 명백한 리레이나의 잘못으로 시작됐다. 고소까지 갈 수도 있던 상황에서 마이클은 리레이나를 용서한다. 마이클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가 예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알게 된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리레이나의 실수를 덮어주고 아낌없이 그녀의 꿈을 응원해 주는 마이클의 모습은 <청춘 스케치>를 보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들의 '청춘'을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예민하고 날이 선 인물들의 행동은 미성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그들은 젊기에 실패로부터 성장하며, 리레이나의 카메라에 담긴 영상은 하나같이 감각적이고 아름답다. 우리의 청춘은 <청춘 스케치>처럼 아름답지 않았을지라도, 영화를 통해 우리는 그들의 낭만적인 청춘을 대리로 경험하게 된다.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든 한없이 예뻐 보이고 마이클처럼 그들을 응원하게 될 수밖에 없다.
리레이나의 친구 트로이는 리레이나를 짝사랑한다. 트로이는 철학적인 말을 하고 인생을 다 깨우친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리레이나와 마찬가지로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인물이다. 리레이나에게 애인이 생기자, 어린아이처럼 질투하고, 정작 그녀의 마음을 얻게 되자 무서워 도망친다. 트로이가 하는 말과 행동은 일종의 방어기제로 느껴진다. 그가 실없는 농담을 자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진짜 속내를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게 두려워서가 아닐까.
필자는 리레이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이 트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진짜 원하는 것은 마이클이 주는 안정적인 사랑과 응원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마이클과 다르게 트로이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직면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성숙한 마이클보다 미성숙한 트로이와 리레이나에게 끌리듯 그들도 불안정한 서로에게 이끌린다. 그들은 자신에게 하고 싶은, 듣고 싶은 말을 서로에게 내뱉는다. 트로이와 리레이나는 서로를 통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장하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언뜻 보기에 <청춘 스케치>는 그저 낭만적이고 영상미 있는 로맨스 영화로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여린 마음과 미래에 대한 불안,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고민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불안함과 고민은 우리의 인생과도 맞닿아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깊은 고민 하지 말고 그저 느끼면 된다. 그들이 하는 별거 아닌 농담에 함께 웃고, 그들이 춤을 출 때 함께 어깨를 들썩이고, 흔들리는 카메라 화면 속에 담긴 반짝이는 청춘을 경험해라.
* 윗글은 아트나이너 19기로 활동하며 작성한 글으로, 아트나인 공식 카페와 블로그에도 업로드 되어있습니다. 개인 아카이브용으로 브런치스토리에도 업로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