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겨울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by 노아
“그래도, 마지막 가기 전에.. 선배님한테 밥 한 끼 사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선배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진심으로요..”


선릉역에서 미소 짓는 얼굴로 멀어져 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나. 검은 아스팔트에 삭막한 콘크리트로 뒤덮인 빌딩 숲. 공기마저 빽빽이 메워버릴 듯한 이곳에서 손톱 끝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빛 한 줄기. 그 줄기로 인해서 그나마 이곳에서 버틸 수 있었다. 그 줄기에서 느껴지던 따스함이 있었기에, 그리고 언젠가 이곳을 떠나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껏 자유롭게 뛰노는 꿈을 같이 꿀 수 있었기에.. 그나마, 이곳을 우린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은 어느 날 이렇게 또다시 각자의 이정표 앞에서 엇갈리게 되고.

멀어져 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 사람의 앞날을 기원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허전함을 애써 억누른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이었던가..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나있었다. 지니 님을 마지막으로 봤던 시간이..

29살, 한과 함께 한 회사에 뛰어들어 온갖 차별과 수모를 겪어가면서 점점 사회화가 되어가던 때, 그때 같은 팀 신입으로 들어왔던 후배님들. 그 후배님들 중 지니 님이 있었다. 당시 나는 한과 함께 말도 안 되는 빌런들과 싸우고 있었고. 후배님들은 후배님들 대로 꼰대들의 현기증 나는 말들과 어이없는 지시의 향연을 매일 겪으면서 정신없이 지내던 나날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지니 님과 내가 약간 하나의 팀이 되어 하나의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으니. 그게 지니 님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첫 만남이었다.


나로서는 내 후임이 처음 생기는 거였고. 지니 님은 지니 님대로 웬 꼰대 한 명이 더 생긴 셈이 아니었을까? 이런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node js, express를 이용해서 데이터 대시보드 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나는 지니 님에게 물었다.


“지니 님.. 혹시 node js 아세요?”


지니 님은 한참 멍 때리다가 나를 보며 말했다.


“네? 저요? 네? 아니, 네! 죄송해요.. 모르겠어요..”


이 답이 없고도 막막함 밖에 없는 둘의 시작.

이후, 지니 님은 지니 님대로 node js 관련 서적을 봐가면서 구현을 시도했고. 나는 나대로 부딪히면서 무언가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선배님~ 하하하하하~ 다크 써클 생기셨어요~”


“하하~ 이거, 제가 칠한 거예요~ 하하하하하아.... 저희 할.. 수 있겠죠? ”


서로에게 닥친 이 상황이 너무나도 어이없고 막막해서 웃으면서 급 친해졌던 거 같다. 그렇게 막막해하며 웃고 울고 그렇게 같이 서로를 의지하면서 물어보고 토론하고~ 그렇게 보내기를 몇 달. 그 끝에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었으니, 그때 그녀와 내가 웃으며 이 기쁨을 만끽했던 순간. 그렇게 한 챕터가 끝나고, 여러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 순간 그녀는 퇴사를 하게 되었으니.


“선배님.. 혹시 이따 점심때 같이 밥 먹어요~ 한 님이랑 저희 팀원들 전부 같이 먹어요~”


그러나, 그때 난 내 상사에게 붙잡히게 된 상황이었던지라, 같이 점심을 할 수 없었고.. 이에 지니 님은 실망하면서 낙담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어떻게 안.. 될까요..? 마지막인데..”


그러나, 나를 붙잡는 그분과 지니 님 사이에서 꽤나.. 갈등이 되었으나 그분이 내 상관이었기에 나는 상관의 말을 안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과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고. 지니 님은 남은 팀원들과 같이 점심 식사를 하였으나, 야근! 나와 지니 님의 야근 때문에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었으니.


“선배님~ 저녁 같이 먹어요~ 다행이에요~ 가기 전에 같이 먹을 수 있어서요~”


많은 대화를 하고 나서, 역 앞에 선 우리. 나는 미소 지은 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지어 보였다. 그리고 지니 님을 보며 말했다.


“지니 님은 다음 회사에서도 잘하실 거예요~ 성실하실 테니, 반드시! 잘하실 거라고 믿어요~”


지니 님은 웃으며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마지막 가기 전에.. 선배님한테 밥 한 끼 사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선배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진심으로요..”


그 모습으로부터 3년 정도가 지나 다시 만나게 된 지금. 당시, 나는 2달째인가? 하루에 3~4시간씩 자면서 밤샘 업무를 일상처럼 했던 지라, 피골이 상접이 된 상태였으니..

“선배님, 저 한 7시쯤 올 거 같아요~”


그.. 그래요.. 자고 시.. 아니, 만나야지. 만나서 책 줘야지.. 쉽게 떨어지지 않는 다리와 지어지지 않는 미소를 애써지어 보인 채 약속 장소에서 창가 쪽에 기대앉아 있던 나. 이윽고, 지니 님이 들어와서 창가에 기대앉아있던 나를 보며 놀라 외친 말.

“어머, 선배님! 아니, 너무 피곤해 보이세요~~ 괜찮으세요?”


기분 탓인지, 내가 지니 님을 보는 건지 먼 허공을 보는 건지 전혀 분간을 못할 만큼 내 두 눈에 초점은 흐려지고 있었다. 창에 내 몸을 기대고 있었는데, 그런 내 모습에 문득 내가 요즘 너무 지쳐있구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안심시켜주는 것이 좋으니~


“저.. 전 괜찮아요~~~ ”


"회사에서 선배님 잠 안 재우시는 거 아니에요??? 어떡해~~"

걱정어린 눈으로 날 보는 지니 님을 향해 난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인 채, 바로 시작된 근황 토크를 가장한, 내 하소연이 쏟아졌으니.


“저는 지금 잠 안 자는 대회에 참가 중입니다.. 하하하.. 제가 입사한 지 1달 만인가요?? 그때부터 하루에 3~4시간씩 밖에 못 자고요~ 주말은 반납이에요. 주말에 제가 여자친구랑 집에서 같이 창 밖을 바라본다니까요? 무슨 취준인 줄?? 저 이러다 쓰러지는 거 아니에요? 아니 그리구요~~”


나의 하소연에 지니 님은 놀란 표정으로 걱정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다가도 웃고 웃고 또 웃었다.


“선배님, 선배님은 모르셨죠? 저, 선배님 처음 봤을 때 조금 무서웠잖아요. 선배님, 안 웃고 있으시면 뭔가 차갑고 냉철해 보이셔서.. 어떤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 무서웠어요~”


“아 그러셨어요?? 그 말, 제 여자친구도 했어요. 너, 무슨 생각하냐? 그럼, 저는 늘 대답하죠. 밥 뭐 먹을지 생각한다고. 제가 꽤나 차도남 스타일인가 봐요~~ 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지니 님과 회사 관련 얘기도 하였다.


“저, 요즘 고민 있잖아요.. 회사에서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상사들에게 다가가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다가가고 싶은데, 다가가자니 두렵고..”


이에 나는 한동안 생각하고선 말을 이었다.


“확실히.. 이전 회사에서 저는 혼자 지냈었어요. 물론, 업무 할 때는 팀원들이나 다른 팀 사람들과 얘기는 했지만, 팀원들끼리 커피 마시러 간다거나 할 때 안 따라갔고요. 왜냐하면 저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담배 피우러 간다고 할 때도, 당연히 안 따라갔었고요.. 저는 비흡연자인데 갈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남는 게 없더라고요.. 제 곁에 아무도 없었어요. 제가 힘들 때 도와주는 사람도, 제 고충을 알아주는 사람도, 챙겨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후회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혼자서 있으려 했던 시간들이요..


그래서, 이번 회사에서는 저를 버리고자 노력했어요. 이전 회사에서 팀장님이 제게 해주셨던 말인데..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 모습을 버리고 그 회사에 맞는 모습으로 임해야 한다..

매일매일 커피 한 잔과 밥 한 끼가 쌓이고 쌓여서 관계라는 걸 만들고, 그 관계라는 게 업무 할 때나 내 인생에도 나비효과처럼 영향을 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 회사에서는 이전까지 제가 안 할 법한 일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매일 아침 같이 커피 마시는 거라든가, 같이 누군가와 밥을 먹는다거나 하는 거요.


그렇게 하루 이틀.. 하고 나니까, 어느새 관계라는 게 형성되면서 누군가의 고충을 듣고, 정보를 알게 되고, 회사에서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게 되더라고요.


회사 적응도 빨리 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저로선 지니 님도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버리진 않더라도, 다가가고 관계를 잘 형성하려는 노력을 하셨으면요.. 제가 아는 지니 님은 잘하실 거라 믿지만~”


그렇게 밤은 깊어만 갔고. 식당을 나온, 우린 밤길을 걷고 있었다. 이때, 지니 님이 나에게 말했다.

“선배님, 뭔가 예전과 많이 달라지신 거 알아요?? 예전과 달리, 뭔가 유해지셨어요~ 말씀도 되게 잘하시고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이게 다 여자친구를 잘 만나서 그래요~ 밤마다 여자친구가 멘트 공부시켜 주거든요~”


지니 님은 웃다가, 잠시 머뭇대며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응시하며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아닌 듯이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다 이내 나를 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선배님.. 선배님도 더 이상은 모든 짐을 선배님이 혼자 떠안은 채 하려고 하지 마세요.. 힘드시니까.. 아셨죠??”


나는 미소 지으며, 멀어져 가는 지니 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지니 님은 그런 나를 보았고.


“선배님! 책 잘 읽을게요~ 감사해요~”


생각해 보면 나는 늘 혼자였었다. 포지션 탓인지, 내 운명인 건지 모르겠지만. 나와 항상 무언가를 같이 하는 사람들은 찰나에 내 곁에 머무를 뿐, 이내 나를 떠나곤 했었다. 그런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늘 고독했었고. 순간의 우정과 그 우정이 떠나고 남은 자리에서 오는 허전함과 추억에 그리움에 괴로워했었다. 이 괴로움에 익숙한 지 오래. 이런 내게 어떠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었다는 동료가 있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소중하고도 귀중한 의미인지를..


한동안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홀로 다시 회사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사무실로 가는 길이 허했다. 긴 허전함 만큼이나 길어진 그림자 하나만 드리우는 조명. 그 조명을 바라보며 문득 지난날을 떠올려보았다. 따스했고도 가슴 뭉클했던 순간들. 적어도 혼자가 아니었던 시절. 그때와 확연히 다른 지금. 그리고 그때보다 조금은 미생이 아니게 되어버린, 그 어느 위치라고 단정 짓기 애매한 위치에 올라있는 내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그 어느 하나에도 속해 있지 않은 느낌..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성이었다. 익숙하고도 썩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었다.


그러나, 이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찰나의 우정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허전함과 추억이 다시 남겨지게 될 것이라고는.. 올해 2025년이 지나가기 전에, 나를 스쳐 지나 떠나게 될 인연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음을...

그날의 나는 그저, 홀로 날 비추고 있는, 아직은 따스함이 머물러있는 조명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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