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럼 좀 어때서

1부 제자리만 걸어도 자란다

by 애순희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다. 틀렸다고.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나는 늘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계획만 잘 세우면 인생도 따라올 거라 믿었다. 하지만 삶은 그런 기대를 비웃듯, 번번이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고등학교 3학년, 그토록 원하던 학과의 수시모집에서 떨어졌을 때도 그랬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계획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정시는 자신 없었고, 그렇다고 재수를 선택할 만큼 용감하지도 못했다. 나는 내 주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한계의 범위를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었달까. 그래서 견딜 수 있는 만큼만 꿈꾸는 게 현명하다고 여겼다. 지극히 어리석은 오만이 아니길 바라면서.


결국 난 엄마의 권유대로 “취업 잘 되는 간호학과”를 선택했다. 내가 원해서라기보다, 그저 선택지 중 가장 덜 아픈 길을 택한 셈이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딱히 다른 길도 없었다. 그래서 이왕 간 거, 열심히 했다. 과대표도 하고, 기피하던 발표도 도맡고, 장학금도 받아가며. 그러다 졸업도 하기 전에 덜컥 붙어버렸다. 그것도 다들 가고 싶어 하는 이름난 대학병원에. 오래전부터 간직해 온 꿈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취업에 애쓰는 친구들 사이에서, 내 자리는 묘하게 안정되어 보였다.


그러나 대학병원의 하루는 예상보다 훨씬 혹독했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 병동 복도를 들어서며 나는 중얼거렸다.


오늘도 버틸 수 있을까.



발걸음은 무거웠고,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들이 끝없이 늘어섰다. 선배 일은 내 일처럼, 내 일은 선배처럼 능숙하게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물 한 모금 들이킬 틈도, 방광 한번 제대로 비울 여유도 없었다. 함께 입사한 동기는 첫 월급날 자취를 감췄고, 나는 거즈 캔 뚜껑 개수가 신데렐라 구두소리처럼 딱딱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병동 한가운데서 수선생님께 혼이 났다.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내 한계는 현실에서 훨씬 더 가까이 와 있었다. 숨 막힐 듯한 압박감이 서서히 나를 짓눌렀다.


그나마 버티게 해 준 건 월급과 안정성이었지만, 그것조차 점점 무의미해졌다. 잠들기 전에도 일이 떠올랐고, 쉬는 날조차 마음은 병동에 남았다. 커피로 버티고, 울음으로 버티며, 몸과 마음은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한 번도 크게 혼나 본 적 없이 자라온 나는, ‘열심히 하면 된다’는 믿음으로 대학을 졸업한, 뭐든 잘 해내고 싶었던 20대 새내기 간호사였다. 하지만 직장은 달랐다. 아무리 애써도 잘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이제 더는 내게 ‘ 괜찮은 척’ 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치워도 치워도 쌓이는 가을 낙엽처럼, 매일 마주하는 무력감은 감당하기 버거웠다.


그 무렵, 오래 곁에 머물던 사람이 있었다. 버티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던 일상에서, 그 사람만은 유일하게 ‘쉬어도 되는 자리’였다.


그래서였을까.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을 더는 숨길 수 없던 때, 나는 그 사람에게 기대는 쪽을 선택했다. 그렇게 결혼을 했다. 내 인생에 다시없을 것 같던, 능력 있는 남편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가정을 꾸렸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인간을 24시간 돌보고, 사랑으로 성장시키는 일도 나는 또 최선을 다했다. ‘열심’은 여전히 내가 가장 잘하는 것, 내 삶의 기본값이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그렇게 그냥 묵묵히 이어가면 될 줄 알았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인생은 참 얄궂다. 먹고살기 위해 다시 일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줄이야. 거절에 서툰 내가 스스로에게 “너 멋져, 괜찮아” 셀프 가스라이팅을 하며 다독이게 될 줄이야. 정말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면, 5년 일하고 10여 년을 쉰 ‘경력단절 아줌마’가 되는 선택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선택권은 없었다.

그저 움직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내 시간을 시작했다.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지 않는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