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자리만 걸어도 자란다
입사한 지 서너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입사동기였던 친구가 내게 말했다.
여기에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너랑 나, 둘 뿐인 것 같아.
오랜만에 나란히 걷는 퇴근길이었다. 무슨 말을 꺼내도 괜히 더 웃음이 났지만, 그 말만큼은 쉽게 웃어넘기지 못했다. 정말이었다. 지하철이 곧 떠날 시간이었는데도,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원래부터 이상한 사람들이 이곳에 모인 걸까, 아니면 우리처럼 멀쩡히 들어왔다가 하나둘씩 그렇게 변해가는 걸까. 20대 새내기 직장인들이 처음 마주한 세계는 생각보다 거칠었다. 그리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자연스레 알게 됐다. 학교에서 배운 도덕의 정석대로 일하려다가는 제시간에 퇴근하기는커녕 바보취급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것을.
그래서였다. 그 지역 간호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부러워할 만한 곳이었지만, 퇴사를 결심하는 데에는 단 한 톨의 미련도 없었다. 정말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다시 간호를 하면 인간이 아니다하면서.
직장을 나오고 나니 세상은 놀라울 만큼 평화로웠다. 출근길 경적도, 전화벨도, 쉬지 않고 나를 찾는 선배의 목소리도 점차 잊혀갔다. 비로소 숨이 길어졌다. 더 이상 쫓기지 않았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조금씩, 느리지만 천천히 나는 '나의 자리'를 다시 찾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다. 오래 머물 것 같던 고요는 어느새 걷혔고, 나의 하루는 다시 누군가의 곁에 서기 시작했다.
손이 닿기 쉬운 서랍장 안에는 어느새 가족을 위한 약들이 자리했다, 증상별로, 종류별로, 유통기한 순으로도. 그래야 알맞은 약을 망설이지 않고 꺼낼 수 있었다.
바람과는 달리 증상이 길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시작일부터 분비물의 색과 상태를 기록해 병원에 데려갔다. 처방약을 먹이며 수분섭취를 챙겼고, 열보초를 서면서도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체온을 내렸다. 잠든 아이를 깨워 뭐라도 먹일 때면 잠시나마 상체를 세워 소화를 도왔고, 혈당관리가 필요한 남편에게는 공복이나 식후 혈당을 기록해 건강을 살폈다.
친구나 지인들도 아프기 시작하면 여전히 나를 찾았다. 아는 건 아는 대로, 모르는 건 공부를 해서라도 도움을 주는 내 자리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집에서 무급근무 중인가?'
'병원 그만 둔지가 언젠데, 왜 계속 일을 하는 느낌이지?'
그러고 보니,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도, 돌보는 일은 한 번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혈압 대신 체온을 재고, 병동 대신 집에서 기록을 남기며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살피고 있었다. 다만 내 단골 환자가 조금 더 작고, 예쁘고, 때로는 반항적이었을 뿐.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역할이 하나도 싫지 않았다. 누군가를 돌보려는 마음, 위험 앞에서 침착해지는 손. 그게 나였고,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었다는 걸, 현장에서 쫓기듯 바쁘던 손이 멈추자, 그제야 이 모든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직장은 진즉 떠났지만, 간호하는 일의 마음만큼은 나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아이의 그림이 눈에 띄었다.
‘우리 엄마는 간호사.’
삐뚤빼뚤 쓰여진 문장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간호사는 단순히 ‘직업’이나 ‘기술’만을 뜻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지나며 배운 간호는 이전과 달랐다. 직장에서는 늘 빠른 속도와 정확함이 중요했지만, 집에서는 정성과 기다림이 전부였다. 그 느린 시간 속에서 내가 알게 된 것은, ‘간호’는 마음의 일이자, 한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감각이며 생명을 향한 태도라는 것이다.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갈 때는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오직 제자리를 걸으며 같은 곳을 진득하게 바라봐야만 찾아오는 비밀의 시간. 그때는 몰랐지만, 그 시간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간호사였다. 그리고 지금도, 내 안에는 여전히 누군가를 돌보고 싶은 사람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