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기를 빠는 입술과 아내를 베는 칼
올겨울 추위는 유난히 집요했다. 바깥에 나갈 마음이 쉽게 꺾였고, 자연스럽게 나는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때 손에 들어온 책이 민음사판 『사기열전』이었다. 다만 책을 펼치기 전부터 한 가지 망설임이 있었다. 두 권을 합쳐 1776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은 결코 가볍지 않았고, 고전 특유의 거리감 또한 쉽게 다가서기 어렵게 만들었다. 과연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주저함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첫 장을 넘기자 생각보다 빠르게 이야기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수천 년 전의 기록임에도 인물들의 욕망과 선택, 권력의 흐름과 인간의 약함은 놀랍도록 생생했다. 한 인물의 삶을 읽고 나면 다음 인물이 궁금해졌고, 한 시대의 결말을 보고 나면 또 다른 시대의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부담으로 느껴졌던 두꺼운 페이지가,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세계가 되어 있었다. 특히 내 마음에 오래 남은 인물은 오기(吳起)였다. 그는 뛰어난 재능과 냉정한 전략으로 나라를 강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 능력만큼이나 논쟁적인 삶을 살았다. 충성과 성공을 위해 스스로의 감정까지 잘라내는 듯한 모습은 감탄을 불러오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과연 그가 얻은 명성과 승리는 인간으로서의 행복과 맞바꿀 만한 것이었을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종기를 빠는 입술과 아내를 베는 칼날’
이 책을 읽은 후 역사상 가장 ‘극단적으로 효율적인 인간’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오기(吳起)를 선택할 것이다. 그는 인생이라는 경영판 위에서 철저하게 '승리'와 '성과'만을 계산했던 인물이다. 사마천의 《사기》 속 오기의 기록을 읽다 보면, 서늘한 소름이 돋다가도 이내 뜨거운 질문 하나가 가슴에 남는다. "성공이란 무엇을 제물로 삼아 피어나는 꽃인가?"
오기에게는 두 개의 상징적인 도구가 있었다. 하나는 ‘병사의 종기를 빨아주던 입술’이고, 다른 하나는 ‘출세를 위해 아내를 베었던 칼’ 이다.
먼저 그의 '입술'을 보자. 천하의 명장 오기는 병사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잠자리를 같이했다. 심지어 병사의 몸에 난 고름 섞인 종기를 제 입으로 직접 빨아냈다. 현대의 리더십 이론으로 보자면 '감동 경영'의 정점이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본 병사의 어머니는 통곡했다. 장군의 자애로움에 감동해서가 아니라, 내 아들이 이제 장군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다 죽겠구나 하는 공포 때문이었다. 오기의 입술은 따뜻한 사랑이 아니라, 타인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게 만드는 고도의 '정치적 기술'이었던 셈이다.
반면 그의 '칼'은 너무나 차가웠다. 노나라에서 장군이 되고 싶었던 그는, 자신의 아내가 노나라의 적국인 제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아내가 걸림돌이 되자 망설임 없이 그녀를 죽였다. 그에게 아내는 반려자가 아니라 승진을 방해하는 '결격 사유'에 불과했던 것 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는 고향으로 향하는 대신 책장을 넘겼다. 재상이 되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 즉 '목표'가 천륜보다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오기의 삶은 눈부셨다. 가는 곳마다 승전보를 울렸고, 초나라를 일약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전적 뒤에는 지독한 외로움과 원한이 쌓여갔다. 그는 세상의 모든 관계를 '거래'와 '효용'으로만 보았다. 병사는 '나를 위해 죽어줄 도구'였고, 가족은 '나를 증명할 장식'이었으며, 군주는 '나의 재능을 살 도구'였다.
결국 오기는 그가 만든 효율성의 칼날 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자신을 지켜주던 왕이 죽자마자 원한을 품은 귀족들의 화살 세례를 받은 것이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는 왕의 시신 위에 엎드려 자신을 쏜 자들을 반역죄로 엮어 동귀어진(同歸於盡)했다. 마지막까지 그는 '복수'라는 효율적인 계산기를 두드렸던 셈이다.
우리는 오기의 삶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 현대 사회는 어쩌면 우리에게 '오기가 되라'고 강요하는지도 모른다. 성과를 위해 사생활을 희생하고, 인맥을 관리하며, 타인의 마음을 얻는 기술을 익히라고 말이다. 하지만 오기의 최후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진심이 빠진 기술은 결국 자신을 찌르는 칼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종기를 빨아주는 다정함이 오직 목적을 위한 연기일 때, 그 관계는 아름다운 신화가 아니라 서글픈 비극이 된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얼마나 높이 올라갔느냐'가 아니라, '올라가는 길에 누구의 손을 진심으로 잡았느냐'에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나는 나의 목표를 위해 누군가의 마음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성장의 방해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사기 열전을 덮으며, 많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