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도마에 올려놓는 일
한국에서 이직을 준비하던 시기까지 포함하면 300곳이 넘는 곳에 이력서를 썼었고,
유럽에 와서도 일자리를 알아보며 200곳이 넘는 곳에 지원했었다.
프리랜서가 된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춤 수업자리를 위해 학교와 학원에 100곳 이상, DJ 공연자리를 위해 에이전시와 클럽, 레이블에도 100곳 이상.
나는 계속해서 나를 던지고, 알리고, 그 응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끝없는 기다림 속에서 다시 나를 성장시키고, 또 굴리는 일을 반복해 왔다.
인생은 각자가 서로 알지 못하는 시험과 어려움을 견뎌내는 과정이라고들 하지만,
한국이든 외국이든 상관없이 떡 하니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1제곱센티미터라도 좋으니
내 자리를 조금씩 넓혀가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그 과정은 마치 데뷔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매일 경쟁하는 연습생,
무명 배우, 작가들의 삶과도 비슷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작은 기회에도 감사해야 했고,
때로는 굽신거리며 내가 등장할 수 있는 조각들을
누가 먼저 가져가기 전에 빠르게 주워야 했다.
특히 ‘대가’, 즉 돈이 걸린 자리라면
그 무엇보다 치열했고, 모두가 매우 잽쌌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던져야 하는 이 상황,
부딪힘, 작은 희망과 좌절,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반복.
이 루틴은 때로 끔찍하게 느껴졌고,
아무리 시장의 원리(즉, 수요와 공급의 밸런스대로)라지만 때론 지나치게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장의 반응과 세상의 기준에 귀를 기울여야 했고,
그럼에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 기회를 향해
적은 가능성들을 계속 던져보는 일.
(차라리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정신 건강에 이롭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결과가 씁쓸할 때면,
그 감정을 쉽게 목 넘기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제는 나에게 더 잘 맞고 승률이 높아 보이는 기회를
조금씩 포착할 수 있는 노련함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힘이 되어주는 내 작업물과 결과물들이 그 과정에서 조용히 쌓이고 있다는 사실.
나는 이제 그 씁쓸함과 분노를 연료로 삼아
다음 창작과 다음 시도에 태워 넣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결과에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되었고,
삶 전체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나만의 방어막도 생겼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결과에 따라 나의 가치를 올리고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끝없는 ‘투구’ 속에서
나는 분명히 무언가를 얻고, 캐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향해 나를 던진다.
하지만 이제는
그 결과가 더 이상 내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의 가치가 그 시장의 반응에 따라 정죄되거나
저울질에 의해 정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 결과에 의한 타격감이 없기에 더 이상 나를 던지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또한, 이 일련의 과정 자체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피와 살이 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마치 매일 달리는 것처럼,
비록 나는 투포환 선수는 아니지만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나를 세상에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