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걸 아니라 말할 수 있는 힘
우리가 사회적 동물인 이유는 분명하다.
사회적 규범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가정에서, 마을에서, 아파트와 빌라와 주택이라는 생활 공동체 안에서,
특히 도덕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무려 12년 동안 이어진 규범화된 의무교육 과정을 통해
수많은 사회적 규칙과 양식이 우리의 뇌 속에 깊이 자리 잡는다.
그 규범들은 마치 우리 뇌 속 안방마님처럼 존재한다.
애플 iOS가 사용자의 취침 시간까지 고려해
매너 있고 고상한 방식으로 자동 업데이트되는 사이,
우리 뇌 속에도 어느새 규범과 시선이 설치된다.
그 시선은
조지 오웰의 『1984』 속 빅 브라더처럼,
혹은 파놉티콘 감옥의 수감자처럼,
누가 실제로 보고 있느냐와 상관없이
항상 ‘보고 있는 것 같은’ 감각으로 존재한다.
좋게 말하면 우리를 가다듬는 장치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아비판의 씨앗이 되는
마음속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은
꽤 오래전에 이미 설치되었다.
그것이 2025년 현재까지
각자 어느 사회, 어느 장소에서
어떤 방식으로 업데이트되어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규범과 어긋나는 일이 벌어질 때
우리는 쉽게 당황하거나, 무너지거나,
때로는 타인과 자기 자신을 향해
분노를 넘어 혐오까지 느끼게 된다.
그중 가장 큰 충돌 지점 중 하나는
타인에게 쉽게 ‘아니’라고 말하는 일이다.
‘아니’라는 말은 꽤나 칼같다.
특히 상대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말미에서 바로 부정어로 답하면
예의 없다고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보통
완곡한 표현을 권유받는다.
독일에 와서 느낀 큰 문화 충격 중 하나는,
지금 들어도 여전히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타인의 질문이나 부탁에
감정을 덜어낸 채 부정어를
굉장히 자주, 그리고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Nein.”
(독일어로 ‘아니’라는 뜻이며,
영어 숫자 ‘나인’이 아니니
독일어권에 가신다면 놀라지 마시길.)
이 ‘아니’는 인상을 쓰며 던져지는 경우보다
오히려 웃으면서 말해지는 경우가 많고,
부정적인 대답을 들은 요청자 역시
크게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
서로가 짊어지고 있던 애매한 기대나 부담을 내려놓는
묘한 해방감이 흐르기도 한다.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관할이나 책임이 아닌 일에 대해서는
지체 없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아시아권 사람들에게는
이런 태도가 ‘융통성이 없다’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명확함은 오히려 효율적이다.
처음에는 꽤 당황스럽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새 익숙해지고,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게 된다.
처음 독일 문화를 접했을 때는
솔직히 예의가 없다고 느끼기도 했다.
심지어 한때는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는 능력이 덜 발달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이런 생각의 배경에는
유아 인지 발달 실험 중 하나인
**샐리-앤 과제(Sally–Anne test)**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실험에서
5~7세 유아에게
‘엄마가 곰 인형을 상자에 넣어두고 나간 사이,
아이가 곰 인형을 옷장으로 옮겼다면
엄마가 돌아와서 인형을 찾을 때
어디를 먼저 열까?’라고 묻는다.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마지막으로 본 장소,
즉 옷장을 연다고 답한다.
그 실험을 떠올리며
‘혹시 이 사회는
타인의 시선을 진짜로 고려하지 않는
개인주의를 넘어선 이기주의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그것은 배려의 부재가 아니라
경계의 명확함이라는 것을.
사교 모임이나 약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종종 어물쩡 대답하거나
미루거나, 심지어 아무 말도 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못 가.”
라는 명확한 거절을
무응답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다.
서로의 시간을 아껴주기 때문이다.
이 문화는
우유부단하거나
타인을 지나치게 염려하느라
자기 마음을 억누르던 사람들에게
하나의 탈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상대가 느낄지도 모를
언짢음이나 당황보다
먼저 내 마음의 진실함과 상쾌함을
존중하는 것.
길게 보면
그 편이 오히려
서로에게 더 이득이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상쾌하고 산뜻한 마음의 창문 사이로
바람이 솔솔 통과하듯,
막힌 체증 없이
타인의 통제와 시선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워진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